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김선주 지음 / 삼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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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라고 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에게 이런말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예수는 좋아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당신들은 싫어합니다. 라고~~ ,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잘못하면 예수까지 싫어할 상황이다. 그때보다 더한 상황이 지금 이시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기독교인인 나도 한 몫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본서 “한국 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이라는 책과 같은 부류의 책들이 인터넷 상에, 그리고 서점가에 하나씩 늘어남을 볼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실망과 자기반성으로, 그것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실체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거기에는 기독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것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먼저 큰 틀에서 보았을 때에,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아 심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 삶의 자리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까지 한국의 기독교가 이지경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나도 한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말씀하신 글에서, 교도소에 가서 재소자들을 만나보니, 그들과 나와 다른 점은 별반 없더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그들은 죄를 짓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교도소 안에 있는 것이고, 나는 발각되지 않아서, 밖에 있는 것이라고,


거기에 나는 동감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사회와 윤리에 크게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밖에서 생활하는 것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처음 선교사(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 그들은 그들 스스로 호칭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비판이 아닌 칭찬이었다. 그들의 언행이 본이 되었기에, 칭찬받을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반열에 오를 뿐만 아니라,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2천이 지난 한국 땅,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일도 없다. 거기에는 저자가 지적한 많은 죄된 요소가 자리잡고 부족하고 잘못된 길로 기독교가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한국교회의 삶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한국교회에 복음이 전파될 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구한말 한국에 소망이 없는 시대에 선교사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억압을 받으면서, 소망이 없는 이 나라와 민족의 백성들에게 유일한 소망과 민족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곳으로 한 몫을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제 통치 35년을 지내고, 다시 한국전 전후 좌우익으로 말미암은 이념 논쟁, 1960년대의 정치적 혼란기, 1970년대의 유신시대, 1980-1990년대의 혼란기, 2000년대의 경제적 안정기를 지나오면서, 어쩌면 양적인 성장을 많이 가져오기는 했으나, 질적 성장에 많은 관심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상누각의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가 약 120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다 보니 신학적인 반성이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관계성에 정확한 확립이나 흐름도 없었다. 다만, 현실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의 뿌리와 기반을 바로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이념논쟁에, 정치, 경제, 군사적 상황에서 분명한 연구도, 또한 바른 길도 제시하지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적 상황에서 비전을 제시하지도, 분명한 대안도 드러내지 못한 체 오늘까지 이른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이다. 그러다 보니 저자와 같은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역사 한 가운데서 어지럽고, 때로는 소망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영향력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의도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 한군데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잘못된, 죄악된 부분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당연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양면성을 살피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기록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중소형교회들이 이름 없이 헌신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수고와 헌신은 도외시 하였다. 마치 모든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것 처럼 비추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떠한 곳이든 자기 성찰이나 자기 반성이 없이는 결코 발전이나 성장, 성숙은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저자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거나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저작 의도가,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고, 다음은 한국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충심에서 쓴 부분이기에 대체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사명은 끝났는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바르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국교회에 많이 남아있지만, 이러한 책들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직도 소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의 조그마한 바램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 책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냉철한 자기 반성을 통하여, 자신들을 돌아보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기독교 비판의 도구로 삼기 위한 근거로 삼아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저자가 기록하지 않은 한국교회의 순기능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양면성을 가지고 두루 살필 수 있는 혜안도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과,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그리고 한국교회의 건강한 앞날을 위하여 좋은 방향을 제공해준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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