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올빼미
누쿠이 도쿠로 지음, 최현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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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소설 <미소짓는 사람>으로 우연히 알게 된 일본 작가 누쿠이 도쿠로. <통곡>과 <우행록> 등으로 더욱 좋아하게 된 소설가인데요. 이번에 <종이 올빼미>가 우리나라에 출간된다는 소식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작년 7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일본판 표지가 충격적이라, 우리나라 표지가 얌전해 보일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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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올빼미>는 사람 1명을 살해하면 사형을 당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런 사회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법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말이 많잖아요. 사람을 1명 죽여도 초범, 우발적 범행, 심신미약 등을 주장하거나 판사에게 '저 반성하고 있어요' 어필을 하면 감형을 받는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누구를 죽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도둑을 살해하게 된다면? 그것도 사형받아 마땅하냐? 라는 질문에 저는 NO라고 대답할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세상은 그러한 사람에게도 사형을 주는 사회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사람을 죽였으면 너도 사형 당해야지. 인과응보야'

'범죄를 줄이기 위해선 사형 제도는 꼭 필요해'

사형 제도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폐지 국가인 우리나라. 사람 1명을 살해하면 사형인 국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이 소설책은 다섯 편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어요.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 보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지어다(10-81)

2. 새장 속의 새들(84-149)

3. 레밍의 무리(152-221)

4. 고양이는 잊지 않는다(224-290)

5. 종이올빼미(293-463)


1. 보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지어다

피해자는 디자이너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눈, 손가락, 혀를 잃게 됩니다.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글을 쓰지도 못하고, 혀를 잃으니 말을 하지도 못 하게 됩니다. 육체만 살아 있는 잔혹한 상황. 피해자는 자신의 의견도, 생각도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이 됩니다.

범인은 누구인지? 왜 이런 가혹한 짓을 한 것일까?


화자인 형사 요시카와는 대학생 때 사랑스러운 조카를 살인사건으로 잃게 됩니다. 범인은 과거 범죄 이력이 있던 인물로, 잡혀 사형을 당하게 되지만, 이 사회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형제도가 존재하면 범죄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유가족의 슬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요시카와는 사형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형=만능해결책 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인물입니다. 형사이니 많은 범죄자를 보았겠지만, 사형에 대해 반대도 찬성도 쉽게 하지 못 하는 그의 내적 갈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2. 새장 속의 새들

남자 대학생 세 명과 여자 대학생 세 명이 외딴 숲속의 별장으로 놀러 갑니다. 그곳에서 어떤 부랑자가 여학생 한 명을 덮치려 하고, 남학생 한 명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부랑자를 실수로 살해합니다. 구해준 남학생은 가와치, 검사를 꿈꾸고 있죠. 가와치는 법과 윤리를 중시하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경찰에 자수하려 하지만, 친구가 사형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그리고 친구를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니) 나머지 친구들은 가와치를 말립니다.

부랑자를 땅에 묻기로 하고, 이 일은 없던 일로 되는가 싶더니, 별장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범죄 추정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서로 알리바이를 이야기하고, 이 중에 범인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이해불가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처음엔 범죄자의 동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어요. 그런 이유로? 정신이상자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을 다 읽은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범인 한 명 탓이 아니더라고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인간을 탄생시킨 사회의 시스템과 법의 문제가 아닐까. 책 뒤표지에 이러한 문구가 있습니다. '사회가 관용을 잃어버릴 때, 인간의 감정은 어디로 넘쳐흐르는 것일까?' 사람 한 명을 살해하면 무조건 사형이라는 단순 명료한 법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3. 레밍의 무리

레밍은 쥣과의 나그네쥐 속에 속하는 포유류입니다. 레밍효과 라는 말이 있는데,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집단적 편승효과를 뜻한다고 해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생각나죠?

빈발하는 학교 폭력. 그러나 어느 날, 학교 폭력 주동자인 중학생이 살해당한다. 경악할 만한 범인의 동기는 무엇일까?

조금 더 자세하게 쓸까? 하다가 제가 소설을 읽으며 느낀 충격을 여러분도 느끼셨으면 싶어, 내용을 추가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화자의 장인 어른에 대한 것이에요. 은퇴하기 전에 교사였던 장인 어른이 손자-화자의 아들-에게 하는 말에 한편으론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충격이었어요.


209_"상대에게 기대를 하니까 화가 나는 거란다. 상대가 인간쓰레기라면 진심으로 반성 따위 할 리가 없다. (중략) 쓰레기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인생의 한때일 뿐이란다. (중략) 속으로 맘껏 상대를 멸시하다 보면 1년은 금방 지나간다"


즉 가해 학생들은 반성 따위 할 리가 없고, 그냥 너(피해 학생)는 '똥 밟은 셈 치고'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1년 동안 버텨. 그러면 가해 학생을 볼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너는 네 손을 더럽히지 않으니 좋을 게다.

이런 뜻인 것 같네요. 물론 상대에게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건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맞나요? 그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문제들이 있는데도, 뚜껑만 덮고 외면하는 어른들의 모습이지 않나요?

학교나 담임 선생님에게 항의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진 않겠지만, 피해 학생에게 '그냥 눈 감고 1년만 버텨'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가해 학생의 교화 과정이 없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었어요.



4. 고양이는 잊지 않는다.

누군가에 의해 누나를 잃은 남성이 주인공입니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 주인공은 누나의 전 남자친구 스사카를 의심하고 있었죠.

또 다른 등장인물은 주인공의 여자 친구인데, 그녀는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주인공과 모든 것이 잘 맞지만, 사형 제도에 관한 의견만큼은 대립하였죠.

주인공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형을 피한 스사카를 용서하지 못 했고, 결국 복수를 계획하게 되는데..


5. 종이올빼미

책의 제목인 '종이올빼미'는 다른 네 작품보다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주인공 가사마는 유명한 작곡가인데요, 어느 날 여자친구 사야를 살인사건으로 잃게 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야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죠.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남자 친구와 직장에까지 자신의 존재를 속인 사야. 가사마는 사야에 대해 스스로 조사하고 알아가면서, 그녀의 비밀을 하나 둘 알게 됩니다. 그녀가 감추었던 가족 이야기, 그리고 과거 저질렀던 죄.

그리고 가사마는 사야를 죽인 범인을 용서하려 합니다.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사형인 세상에서 사회와 일반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 '사형제도 반대 표명'은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378_더욱이 사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의의 편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형제도가 정의라면 그에 반대하는 사람은 악이다. 악이라면 바로잡아야 한다. 악의 존재를 용인하면 안 된다. (중략) 만약 육친이나 소중한 사람이 살해당한다면 틀림없이 곧바로 사형 찬성으로 전향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성의 기회도, 사죄할 기회도 범인에게서 빼앗아 가는 사형 제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섭고 잔혹한 범죄가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사형 제도의 부활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참 어렵네요. 사형 제도를 찬성하기도, 반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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