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네오픽션 ON시리즈 11
박해수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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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수 저자의 작품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를 짧게 표현하자면, '기이하면서 흥미롭다,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면서도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에 날카롭게 박힌다'라고 쓰고 싶네요. 단순히 자극적이고 무서운 내용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읽으면서 이토 준지가 떠오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쓰겠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자극적이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그의 일곱 가지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를 파헤치고 고발합니다. 저도 우리나라의 한 구성원으로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찔려서 반성하게 된 부분도 많았어요. 서평단 여부를 떠나, 평점을 준다면 5점 만점 중 5점을 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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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블랙홀 오피스텔 601호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

몰락한 나무들의 거리

신의 사자와 사냥꾼

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

작가의 말


 스토리를 어느 부분까지 쓸지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재미와 흥미를 어디까지 전달해도 될지, 스포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앞으로 이 소설을 읽을 독자들의 즐거움을 뺏는 것은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온라인 서점(알라딘)에 나와 있는 출판사 제공 카드뉴스의 내용들을 참고해서 조금만 더 내용을 추가하여 적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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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오피스텔 601호> 이토 준지의 작품을 읽는 느낌


 주인공은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오래된 블랙홀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하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을 구하다 보니,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도 변두리까지 오게 되었죠. 하지만 지방에 계신 부모님은 주인공이 서울의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줄 알고 계십니다. 월세가 올라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바깥으로 나오거나, 반지하 집에서 살 수 밖에 없는 2030이 참 많을 겁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집은 '바깥에서 일 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여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들어와 쉴 수 있는' 장소죠. 하지만 그 오피스텔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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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복잡한 감정(분노, 안타까움 등)과 재미를 한꺼번에 잡은 작품



 '두 번째 천국이라니, 무슨 뜻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읽어나가기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그리고 씁쓸함을 느끼며 읽은 작품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40대 중반으로 현재 미혼입니다. 부모님과 연락 두절, 즉 가족도 친한 친구도 없습니다. 그녀는 신약 실험 알바를 하다가 신장이 망가졌고, 화성행 크루즈선의 청소라는 노가다를 하며 건강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무직이라는 설정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세컨드 헤븐이라 불리는 천삼백하우스에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녀에게는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어요. 저는 읽으면서 가난한 입주자들을 착취하며 그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는 회사 CEO에게 먼저 화가 났고, 이 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의 심리 변화에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고,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자'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바깥도 지옥입니다. 저는 주인공처럼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걸 느낀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나라면 바깥으로 나갈 텐데. 주인공 바보 아니야? 이러한 취급 당해도 당연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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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이야기 설정과 재미까지 탄탄한 작품


 카드 뉴스에도 적혀 있네요, '시간을 역행하여 서술'한다는 내용이. 읽으면서 '저자는 왜 시간을 역행하여 썼을까? 시간 순서대로 썼다면 어떻게 변했을까?'라는 상상을 했는데요. 제 추측으론 시간을 역행하는 저자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다른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이 세상에 왔고, 왜 왔는지 등등이 하나하나 풀어지는 재미가 컸어요.


 114쪽_화영이 눈을 반짝이며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살고 싶은 집을 찾았다. 어떻게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꿈이 현실을 향해 무섭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또다른 '나'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란 자신의 꿈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존재인데, 뭐가 이기적이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자신의 꿈(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참 무서운 사고 방식이죠. 타인이 자신의 꿈을 위해 나를 헤치려 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노력과 의지는 상관치 않는다면요?


 제목 옆에 쓴 것처럼, 이야기 설정과 재미까지 탄탄했던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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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주인공 운정은 친구네 집에 갔다가, 친구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현장을 발견합니다. 첫 스타트 부분을 읽었을 땐 순간 고바야시 야스미의 작품을 떠올렸어요. 그의 작품에 잔혹한 장면들이 나오는데도, 읽으면서 상상하면 그러한 것을 느끼기 힘듭니다.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의 첫 부분의 장면도 그렇습니다.


 117쪽_침실은 피와 내장이 뿜어내는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고요하기만 했던 집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들은 덧없이 끝나버린 어느 인생의 최후를 살피고 있었다. (중략) 표정이 사라진 친구의 입 속에는 음식물이 쑤셔 넣어져 있었고, 반듯하게 눕혀진 채 배가 꽃처럼 갈라져 있었다.


 꽃처럼 갈라져 있었다라..운정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면서도 '위화감이 느껴짐에도 잘 정렬된, 기묘한 질서의 감각을 느꼈다'라고 묘사합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으로 비유해서 그런지, 잔혹한 장면임에 틀림 없지만 기분이 불쾌해지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가져온 책의 내용을 읽고 '범인은 사이코패스인가? 아님 쾌락살인인가?'라는 추측을 하실 것 같은데요.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을 이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게 될 거에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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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나무들의 거리> 이토 준지가 떠오르는 작품으로, 글로 접하는 즐거움이 크다

 '이건 해수의 잘못도 아닌데, 왜 비정상인으로 분류된 거야?!'라며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나는 작품이었어요. 가족인 아내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뼈가 자라나지 않는 해수를 비정상으로 여기거든요. 저급하고 천박한 글을 쓰지만 자라난 뼈가 아름다워서 인기를 끌게 된 작가(155p)도 등장하고요. 그런데 여러분,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맞아요! 주인공의 이름이 저자와 같죠!

 이 작품의 주인공 해수도 괴기환상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1년 전,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뼈가 자라는 괴현상이 일상이 되어버리자 그의 소설도 빛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물론 공포문학의 '공포'도 빛을 잃었죠. 공포소설보다 현실에 일어난 괴현상이 더 공포였던 거죠.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있어서 또다시 이토 준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만화나 영화 같은 영상으로 보는 것보단 글로 내용을 접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160쪽_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형사의 말에 해수는 기가 막혔다. 형사는 뼈가 자라지 않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월등히 높다는 설명을 해가며 해수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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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자와 사냥꾼> 죽음이 있기에 치열하게 산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 읽을 땐 '죽음이 사라진 세상'이 부러웠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영생을 얻으면 두려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그만큼 영원히 빈곤층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 또한 늘어갑니다.


205쪽_정말 더 이상 치고 올라갈 틈이 없는 걸까? 어떻게든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난 평생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와 상관 없는 사족이랄까, 궁금증을 잠깐 쓰자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태기'이고 동료의 이름은 '양정'인데요. 205쪽과 206쪽에 '운정'이 등장합니다. 네 맞아요,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의 주인공이요.

 '운정은 순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정은 복잡한 생각들을 뒤로한 채 (중략)' 등 몇몇 문장에 등장하죠. '운정'을 주인공 '태기'로 바꿔 읽었는데, 아마 '태기'가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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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상황 속, 진정한 '인간'이란?


 주인공은 28살 취준생이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러 여러 회사를 돌아다녔죠.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는 속보가 뜹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부산은 먼 곳의 이야기. 의료진 등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할 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현재 문제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270쪽_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진정으로 무언가를 선택한 적이 있었던가? (중략) 수많은 회사에 지원서를 낼 때도 정말 내가 원해서 그렇게 했던가?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불신뿐이지 않은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비겁함과 나태함을 달고 다니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쓴 글인가?'하는 슬픈 착각에 휩싸였습니다. 내 마음과 불안을 잘 표현하는 문장을 만난 순간이었죠. 자극적인 재미만 추구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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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해수

 한때는 미친 듯이 영화에 몰입했지만 지금은 텍스트가 영상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믿고 있다. 르 클레지오를 비롯한 프랑스 소설과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 백진스키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타고난 멜랑콜리가 더해지다 보니 지금과 같은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재즈와 데스메탈, 카레, 홍차, 울적한 기분으로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거대하고 괴기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어린 시절부터 괴물, 유령, UFO, 마법 등을 좋아했던 저자. 하지만 어른이 된 박해수 저자는 상상 속의 친구들 생각은 접어둔 채 평범한 삶을 살게 됩니다. 누구나 그렇듯 일과 저축, 대출, 약간의 취미 활동으로 삶을 보내다가, '이제는 뭔가 해야만 한다'라는 각오와 함께 글쓰기 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요.

 저자의 말대로 현실은 공포 영화보다 잔혹한 일들이 일어나고, 더 살기 힘들고 무서운 세상입니다. 이 소설은 박해수 저자의 첫 번째 책입니다. '새롭게 발굴된, 앞으로 국내 소설을 이끌어갈 저자 중 한 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이 더더욱 기대됩니다.


☆서평단 도서로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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