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에 묻히다 -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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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 이 단어가 주는 생명력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책이 세상이 나오던 시점과 공간에서 전범으로 몰린 조선인 군무원을 추적하겠다는 발상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저자들의 노력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범주에서 시작했다는 점은 이 책을 느끼는 데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자신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식민지를 살아가는과정에서 군무원이 되었고, 다시 전범으로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사형을 당했고, 누군가는 타국의 독립투사로 추앙받았다.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한 누군가는 아주 먼 훗날 국가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고, 누군가는 그냥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제국과 식민지 체제로 본격화된 근대가 개개인의 삶에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놓았는지 아주 조금은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들이 이 책을 통해 성공한 것을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국가는 과연 인간 존재의 필연적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이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 소속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신민이거나 전범이 되고, 또는 아예 망각되는 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이 책의 저술동기가 국가를 대신해 국가’(한국과 일본)로부터 버림받은 개인들을 추적한다는 것임은 오히려 이런 슬픈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 상황에서 저자들이 제기하는 국가의 폭력성, 편의적 기억 선택, 그로 인한 대중들의 망각과 관련된 것들은 국가 물신주의에 빠진 오늘 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유효할 수 있다. 국가를 인식하기 이전에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국가를 세우기 위한 전장의 한복판이었다면, 또한 그 유산들이 주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면, 따라서 그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걸까. 전장에서는 누구라도 범죄자’, ‘독립투사’, ‘애국자’, ‘매국노’, 심지어 존재하지 않았던 것등이 될 수 있다.

그들로부터 나를 투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꽤 주옥같은 책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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