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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 - 멸치를 통해 본 조선의 어업 문화와 어장 약탈사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3
김수희 지음 / 아카넷 / 2015년 12월
평점 :
3장부터 6장까지는 조선이 일본에게 ‘당했던’ 어장 약탈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당했던’이라는 말에 작은따옴표를 쓴 이유는, ‘당했던’이라는 말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러한 시각이 객관적인 것만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두 가지를 언급하자면, 하나는 역사라는 것은 실증으로서의 역사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역사는 ‘실제 있었던 그대로인 사실’에 입각하여 과거를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실제 역사가 그러한 방식으로 객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역사가 특정한 입장으로 편향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잘못된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하나는 역사가 역사가의 시각에 따라 해석되고 기술된 것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의 선택에 가치를 지니게 되며, 역사가의 기술에는 그 역사가의 가치관, 역사관 등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된 역사가 어떤 가치, 이념 등을 담고 있는지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역사를 중립적이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하여서 모든 역사적 해석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한 해석 간에도 ‘어떤 관점에서 사료를 선택했으며 그러한 선택은 타당한 것인지, 사료와 해석 간의 관계는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등’에 대한 담론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입장이 역사를 바라보는 진지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다케우치의 ‘개발 성장론’을 비판하는 부분(195-200쪽)에서 이러한 관점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저자는 이 절의 제목을 ‘개발 성장론의 논리 비약’이라고 하였습니다. ‘비약’에는 사전적으로 ‘논리나 사고방식 따위가 그 차례나 단계를 따르지 아니하고 뛰어넘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저자는 다케우치의 논리가 어느 부분에서 근거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저자는 “다케우치가 현재 한국의 남획적 어업 현상을 식민지 개발 원리로 해석한 발상은 적절한 지적”(197쪽)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총독부의 개발 정책이 해방 이후 한국 어업정책에까지 반영되어 무분별한 어장 개발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어장 개발의 주체를 일제강점기 명태어업을 경영한 조선의 어민으로 지적한 다케우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합니다. 다케우치는 남획의 주체가 조선인 자본가임을 주장하였으나, 저자는 일제강점기 명태어장을 개발하고 명태어업을 주도한 것이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수산정책이 ‘저임금 노동력인 조선인을 이용하여 일본 시장으로 값싼 수산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신문기사 등 여러 자료를 근거로서 제시합니다. 다케우치의 주장과 달리 저자는 ‘당시 어장을 독점한 것은 자본과 기술을 가진 일본인 자본가였으며 명태어장도 일본인 독점 어업’이었음을 책 내에서 설득력 있게 주장한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 이전에 남획적 어업 현상이 있었고 그러한 현상이 해방 이후 한국 어업정책에서도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해방 이전의 남획은 일본인 자본가(또는 총독부)에 의해 주도된 것이며 그러한 어업현상은 여전히 ‘수탈론’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남획적 어업현상을 해방 후 한국의 개발정책에 대한 원형으로 보는 것은(또는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입니다. 다케우치와 저자는 ‘해방 이전 어업을 주도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어업에 종사했는지’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저는 저자의 주장이 보다 더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다케우치의 ‘개발 성장론’은 ‘근대화론’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케우치가 말한 ‘식민지의 잔재성’(197쪽)이라는 것은, 약탈에 의해 이미 황폐화된 어장을 통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웠던 해방 후 한국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개념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책의 부제에서 ‘약탈’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원래 우리 것이었던 수산물을 억지로 빼앗겼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저자는 당시 조선의 어장이 실질적으로 일본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여러 사료들을 제시하였고 그 사료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지 보여주었습니다. ‘통어(通漁)’에 대한 해석도 한 예입니다. 저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저자는 ‘민란에서 드러나는 제주 사회의 종속성’, ‘멸치어구를 불태운 의병들’이라는 절에서 국가의 독립보다도 생계를 더 중시한 백성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숨기고 싶은 모습인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것은, 저자의 해석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식민어촌’, ‘통어’ 등 여러 문제들을 언급하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어장 약탈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성장 발전론’에 대한 저자의 반박을 중심으로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저자의 명확한 입장은, 그 입장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 그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였고 책의 내용을 보다 꼼꼼하게 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만약 저자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다면 ‘개발 성장론’의 함의 등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무거운 문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부록」처럼 가볍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글을 함께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의 긴장을 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긴장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책장을 넘기니,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독서에 의한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멸치에 대한 소소한 지식, 잡다한 이야기(부록), 식민시기 조선의 어업 문화, 일본이 조선의 수산물을 통제하고 이용한 방식 등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덧.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밝히려 한 저자의 논의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몰랐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알 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차후 다시 한 번 글을 쓰겠습니다. 그 때는 지금 놓친 부분들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