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의 미학 - 누워서 노닐다 그리며 노닐다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2
조송식 지음 / 아카넷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저자는 5장에서 송대(宋代)를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성행한 시대로 설명합니다. 이는 해당 시기의 정치, 철학, 예술의 주체인 사대부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대부들의 의식세계와 출사관(出仕觀)이 산수화에 반영되며 와유에 대한 관념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사대부는 끊임없는 자기수양을 통해 우주의 이치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 이치에 대한 앎은 사대부 개인의 삶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천으로써 사회에 적용되어 세상을 구원하는 앎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세상에 나아가서 벼슬을 하거나 자연으로 물러나 은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출사관은 사대부에게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대부는 두 자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산수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그 결과 송대에는 산수화가 와유 산수화가 성행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개인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자연에서 유람하고자 하는 마음과 사회로 나아가 벼슬하며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의 갈등. 사대부는 이 갈등 상황에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도리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자아를 충족하는 것 또한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은 산수를 그려 이를 감상함으로써 창신하고자 했습니다. 저자는 조선 초 「몽유도원도」를 사례로 제시합니다. 당시 안평대군은 자신이 직접 이룰 수 없는 꿈을 안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여 해소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처럼 자연에서 노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궐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의 상황을 산수화로서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화가가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고 말합니다. 첫째, 생동감을 구현하기 위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것. 둘째, 직접 그곳에서 ‘노닐며 지낼’ 수 있게 하는 체험 방식을 고려할 것. 셋째, 정신을 해방시켜 도(道)와 일치할 수 있게 할 것 등등. 이 세 가지는 산수화가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산수화는 시각적 감상물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정신이 그 안에서 소요(逍遙)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저자는 이를 “감상자는 산수화의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야 한다(245쪽)”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와유는 개인적 자아의 방종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사회 규범의 틀 안에서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던 것입니다.

6장에서 저자는 동아시아 회화를 문인화(여기화)와 화원화(직업화)로 구분하는 방식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문인화는 문장가, 학자들이 취미삼아 자신의 뜻을 그림에 의탁한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화가로 규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사대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여기(餘技)로서 문장, 서예, 회화 등을 즐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사대부들은 문인화로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직업화에 뒤지지 않는 수준의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송대에 들어서면 회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직업화가가 그린 ‘남을 위한 그림’과 그림을 통해 도덕적 완성을 추구한 ‘나를 위한 그림’입니다. 문인화는 ‘나를 위한 그림’에 해당합니다. ‘나를 위한 그림’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감상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창작자는 붓의 한 획 한 획에 자신의 뜻을 담아 펼쳐내며 그 자체로서 수양을 도모합니다. 획과 점이 모여 완성된 작품은 창작자의 뜻이 반영된 자연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3장에서 다루었던 ‘서화용필동론’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용필과 더불어 용묵도 창작자의 뜻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회화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자가 3장, 4장에서 각각 용필과 용묵에 대해 논의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3장, 4장을 꼼꼼하게 읽으신 독자는 6장의 논의를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석도의 예술론을 설명하며 와유 사상에 대해 다룹니다. 석도는 그림을 “우주 만물의 본체인 일획을 통해 자신 속의 일획을 활성화시켜 이를 펼치면서 필묵으로 소요유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방점은 ‘소요유’에 있습니다. ‘정신이 스스로 우주의 이치와 합일하며 자유롭게 노니는 것’으로서 산수화를 규정한 것입니다. 그에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 자연을 붓, 먹 등으로써 표현하는 일련의 실천은 곧 자아를 깨닫는 것에 다름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산수화는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유의 경계로 나아가는 수양이었던 것입니다. 석도가 ‘자신 속에 있는 일획으로서의 마음’과 ‘이를 펼쳐 소요유하는 실천으로서의 몸’이 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 속 일획을 깨달아 회화의 원칙으로 삼고 주체적으로 그려나간다면, 대상과 어리석음의 구속에서 벗어나 세속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곧 성인의 경지인 것입니다. 그에게 예술은 예술 자체로서 추구되는 것, 자아 완성의 수행, 성인이 되는 학문입니다. 석도에 이르러 산수화는, ‘나를 위한 그림’으로서 세상의 유한함 속에서 무한함에 이르는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곧 와유 산수화의 궁극적 의미라고 결론 내립니다.

『산수화의 미학』의 대략적인 논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도 많습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와유’에 초점을 두고 큰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반부에서 다뤄지고 있는 내용은 ‘와유’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으로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했던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