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교의 미래 - 반종교와 무신론을 넘어서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1
이태하 지음 / 아카넷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종교의 미래』의 부제목은 「반종교와 무신론을 넘어서」입니다. 저자는 ‘종교에 대한 부정’과 ‘신이 존재함에 대한 부정’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종교’라는 단어의 범주가 신이 존재함을 전제하는 특정한 믿음에 국한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종교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입니다. 저 또한 평소 종교를 ‘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의례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정의는 공통적으로 종교가 ‘신(또는 초자연적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함을 지적합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종교라는 체계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부정하는 것은 종교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저자는 종교에 대한 우리 시대의 논의가 이보다 더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종교 없는 신’, ‘신 없는 종교’, ‘종교 없는 종교’ 등의 용어로써 설명합니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자는 신이 존재함을 종교의 구성요소에서 분리하여 각각을 개별적 대상으로서 논의합니다. 이러한 분리는 이후 저자가 참된 종교의 모습으로서 에토스에 기반 한 신비주의 종교를 제시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은 어떤 사물이 시공간의 제약 속에 있는 것처럼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시공간에 속하는 것은 인식 가능하며 물리적 경험의 대상이 됩니다. 저자는 신이 존재함은 인식의 영역 밖에 있으며 성숙한 신앙인은 신의 존재를 마음으로 수용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가 ‘마음으로 다가간다’, ‘가슴의 문제’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신이 인식 대상이 아님을 비유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48-52쪽 참조).
2장에서 저자는 주술적 종교와 실존적 종교를 구분하며 종교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저자가 엘리아데를 끌어들여 논의한 바를 살펴보면, 종교는 “인간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형성해온 두 가지 생존 양식인 성(聖)과 속(俗)중에서 성에 속하는 삶의 양식”(67쪽 참조)입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생(生)의 무의미함과 사(死)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존적 구원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진지한 관심과 성찰을 하는 양식이 종교인 것입니다. 이 양식에는 믿고 따라야할 교리, 신조, 의례 등이 포함됩니다. 저자는 종교(달리 말하면 성에 속하는 삶의 양식)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종교 없는 신’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사유방식이 있습니다. 뮈토스적 사고와 로고스적 사고입니다. 종교와 신은 뮈토스의 영역에 속합니다.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으로 대표되는, 뮈토스의 영역에 대한 로고스의 침투는 종교와 신이 지닌 신비적 요소를 제거하는데 기여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철학자 데카르트는 신을 “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자 외부 세계의 규칙적 운행을 설명하는 궁극적 원리”(80쪽)로 여겼습니다. 뉴턴은 자연에 대한 탐구로써 신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과학의 토대에 신을 정초하고자 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초자연적 계시, 교리 등 종교적 요소는 수용하지 않지만 세계의 인식 근거이자 존재 근거인 신이 존재함은 긍정하는 것이 ‘종교 없는 신’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은 학문의 근거로서 존재하는 신일 뿐 초월자로서 신앙의 대상은 아니게 됩니다.
‘신 없는 종교’를 주장하는 이들은 종교의 유용성을 긍정합니다. 그들은 종교를 통해 실존적 구원을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함과 동시에 그것이 반드시 신이 존재함을 전제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입장을 무신론적 도구주의라고 부릅니다. 무신론적 도구주의자인 푸아드뱅은,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교리, 계시 등은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에 주목합니다. 종교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우화는 우리에게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신 없는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도덕적 지향점을 제공하는 종교의 도구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 없는 종교가 인간에게서 종교적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반문합니다(132-133쪽 참조). 저자는 우리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신을 향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종교가 종교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입장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저자는 ‘종교 없는 신(이신론, 반종교적 입장)’과 ‘신 없는 종교(무신론)’를 변증법적 관계로 설명하며 양자를 넘어선 것이 ‘종교 없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접어들며 유일한 진리로서의 종교는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따르면 참된 종교란 절대적 교리를 암송하며 신의 존재를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종교적 교리, 제의를 인간의 작품으로 이해합니다. 구조화된 기성 종교의 구속성과 폭력성을 제거함으로써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종교적 진리로서 세우고자 합니다. 바티모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유일한 진리로서 주장하는 종교적 교리를 근간으로 하는 기성종교를 해체하고자 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성종교는 토대주의에 근거하여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바티모는 해석학을 바탕으로 신의 육화와 신의 죽음을 자기비움의 메시지로 해석합니다. 이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실천적 진리인 사랑과 자비를 도출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기독교를 인류의 보편적 종교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162쪽 참조).
‘종교 없는 종교’를 추구함은 기성종교의 담론을 해체함으로써 종교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하고자 한 노력의 소산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 없는 종교’에는 실천을 이끌어낼 동인인 신비가 없음을 지적합니다. 기성종교는 신의 신비에 근거하여 교리를 절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절대적 진리는 부정되었고 실천이 우선적 과제로 제시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하여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을 도입합니다. 타자의 존재가 나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그 타자의 뒤에 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타자의 어려움을 보고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 것, 타자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느껴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 윤리적 행위자로서 실존적 구원을 추구하는 것 등은 결국 우리가 신의 신비를 체험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신의 신비에 의해 사랑과 자비로써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종교적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과 종교는 이렇게 윤리적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종교 없는 종교’를 다시 넘어서는 ‘신비주의 종교’에 대한 논의를 제시함으로써 저자는 무신론과 반종교론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많은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그에 못지않게 많은 철학자, 신학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책만으로 그들의 이론과 개념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그들의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전체적 논의를 놓치는 것은 아마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닐 것입니다. 특정한 부분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부분에 얽매이지 말고 흐름을 따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