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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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평균보다는 조금 많이 읽고, 책에 대한 감상도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많이 남기는 편이다. 뭔가 좀 아이러니함.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이유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을 꼽을 수 있다.


어느 날 심심해서 교실 앞 자그마한 철제 캐비닛에 꽂혀 있던 책 한 권 꺼내 읽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향해 담임 선생님이 "책 많이 읽으면 머리가 이상해 진디."라고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은 약간 웃으며 말씀하셨는데, 평소 선생님이랑 1:1로 대화한 적도 거의 없는데 뜬금없이 선생님이 그런 말을 내게 건네니 엄청나게 충격이었다. 그날부로 책 읽기를 멈춰버렸다. 여덟 살, 세상 처음으로 책 읽기에 도전한 것일 텐데 도전 첫날 그렇게 허무하게 도전을 접은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려던 어린아이의 세계관이 싹도 트기 전에 사라진 것이다. 어쨌거나 이날 이후로 지금까지 학교 선생님들을 존경은 물론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책을 멀리했다. 물론 저 선생님의 말이 틀린 건 어린 나이 일 때도 알았지만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뒤좇아 왔고, 글을 읽는 게 겁이 났다(머리가 이상해진다는 말은, 어린아이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때부터 난독증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는 데에는 심리적인 요소가 큰데, 지금도 컨디션에 따라 난독증이 도진다.


독서라는 첫 단추를 잘못 맞춘 나는 그동안 오랫동안 책과 담을 쌓고 살았는데, 수능을 전후하여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책을 많이 읽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책을 많이 읽었던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가 중고등학생 때 무슨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 조곤조곤 말해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가 책을 읽는 모습과 그가 읽은 책의 내용들이 내 눈앞에 보이듯 생생했다. 나는 낭만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어쩌면 이때 책에 대한 낭만을 품게 되었고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선망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이때부터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시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가 말해준 책은 대체로 세계고전이었다. 마담 보바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적과 흑, 데미안, 달과 6펜스 등. 세계고전소설은 어딘가 매혹적인 부분이 있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 속에 내가 모르는 어떤 신비롭고, 어떤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을 것 같은 느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고 싶은 것이다. 그때 그 남자가 내게 말해주었던 어떤 신비로움과 낭만적인 느낌이 아련히 느껴지고 과연 이 상자(책)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진입장벽이 있다. 책은 확실히 현실과 다르다. 문체부터 일상에서 전혀 쓰는 않는 말투다. 이런 장벽 때문에 완독이 번번이 실패하지만 여러 시도 끝에 한 권을 성공적으로 완독하고 나아가 그 책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지금까지 나는 여러 개의 상자를 열어왔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책을 즐겨 있는 아이러니한 내가 태어났고, 지금의 내 소망은 여러 메이저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세계고전소설들을 모두 다 섭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많으며,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 관심이 많다.


이런 연장선에서 『살다, 읽다, 쓰다』를 읽었다. 이 책은 소설가이자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연경 박사가 쓴, 책에 대한 책이다. 총 일곱 카테고리를 나눠 여러 세계고전문학을 분류하고, 각 책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나 느낌, 내용을 썼다. 문학은 저자가 한평생 해온 공부이니 만큼, 짧은 소개의 글이나 깊이가 있다.


소개된 80여 권이 책들 중, 내가 안 읽은 책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읽는 책도 많았다. 그 책들에 대한 내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다른 것도 재밌었고, 내가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된 것도 유익하고 좋았다.


하나로 들 수 있는 책은 카프카의 『소송』이다. 소설 속 부조리하고 이상한 현실이 재밌고 흥미로운데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가던 책이다. 어느 정도 괴로운 요소도 있다. 불쾌하다 할지, 기다란 벽면에 똑같이 생긴 수없이 많은 문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문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는 심정이랄까. 진짜 문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그뿐만 아니라 내가 문을 열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설렘 반, 지루함 반을 가지고 문을 여는 것 같았다. 한 번 읽고 다신 안 읽겠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읽다, 쓰다』를 읽으니 다시 『소송』을 읽고 싶은 들었다. 밀란 쿤데라처럼 카프카의 작품을 낱낱이 해부하고, 그것을 내 자양분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모방 욕구' 때문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에 대한 책>은 나를 부추기는 뭔가가 있다. 책에 대한 로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희구. 혹은 그냥 무개성적이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는 내가, 개성적이고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사람을 따라 하고 싶은 욕구, 욕망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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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욕망을 다 채우려면, 그리고 옛날 그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정신이 이상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책을 더 책을 읽어야 할까. 『살다, 읽다, 쓰다』에서 제일 처음 다루는 『돈 키호테』의 돈 키호테처럼 그만한 책을 읽어야 할까(돈 키호테는 기사소설에 심취해 어마어마한 양의 기사소설을 읽고 정신이 이상해져 버렸다 / 참고로 나도 『돈 키호테』 읽었다. 완독했었다고 나도 자랑하고 싶어져서 ㅎㅎ). 어쨌든 아직까지 책 읽고 정신이 이상해질 기미는 없었다.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뭐, 이 책에서 다루는 80여 권의 책들도 다 읽지는 못했으니... 부단히 열심히 읽어야겠다.


(덧붙임 - 책 표지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젊었을 때 사진인데, 『살다, 읽다, 쓰다』에 사강의 작품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사강 사진은 낚시?! ㅎㅎ 어쨌든 이 책에는 사강에 대한 글은 없지만,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에세이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 때 책을 한가득 쌓아놓고 집안에서도, 마당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책을 정신없이 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락방에서인가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는 이야기 등등. 어딘가 낭만적이고, 책에 흠뻑 빠졌던 사강을 흠모했었다. 나도 그렇게 책에 빠지고, 책을 좋아하고, 똑똑해지고 싶다고... 사람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사랑도 동경의 대상이 되고 모방 욕구를 자아내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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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부자들 - 10년간 1,000명의 백만장자들을 통해 본 새로운 부의 공식 7
루이스 쉬프 지음, 임현경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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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작은 돈도 허투루 보지 않고 알뜰살뜰 아껴서 부를 이뤘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다룬 책에는 '절약'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루이스 쉬프는 '과연?!'이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루이스 쉬프는 부자학 전문가이자 재정 컨설팅 전문가로 20년 동안 부자들을 연구해 온 부자 전문가다. 세상에 많은 전문가들은 봤어도 부자 전문가는 처음 들어 보는데 어쨌거나 오랜 기간 부자들에 대해 연구했으니, 전문가는 맞는 거겠지.




베이비붐 세대는 "번영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즉 출구만 제대로 찾으면 '짠!'하고 성공이 눈앞에 펼쳐지는" 안정적인 사회 구조의 보호 아래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속도로가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 심지어 어디에서 빠져나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손을 놓아버렸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자식이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확신하는 성인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33쪽)

발췌한 글을 읽으면 꼭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문제를 진단하고 있는 글 같다. 하지만 위 발췌 글은 저자가 쓴 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현재 상황이 비슷하고, 특히나 고도성장기를 지난 나라들은 거의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고도성장할 길은 없어 보인다. 베이비붐의 자식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부모 세대 보다 가난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자수성가한다. 누구는 부모처럼, 누구는 부모보다 못하게, 누구는 부모보다 더 낫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구매 의사결정 등에 대해 알고 싶었고, 적절한 표본 집단을 뽑아 비교 연구를 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대체로 이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의 우선순위는 그와 아주 달랐다. 그들은 성공하고 싶다면 주인 의식을 발휘해 일하고,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중요한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산층은 대부분 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21쪽)

나는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워런 버핏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나는 워런 버핏이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우선 젊었을 때 자기 돈을 들여 주유소를 운영했는데 망하고 말았다. 이후 워런 버핏은 자기 돈의 직접적 투자는 최대한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투자하되 만약 투자금을 잃게 되어도 최소한 자기 투자금은 절대로 잃지 않게끔 설계한 후에 투자했다고 한다. 사실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이 꽤나 유명하다. 그의 투자 원칙 첫 번째는 '돈을 절대로 잃지 마라'이다. 그리고 두 번째 투자 원칙은 '첫 번째 원칙을 반드시 지켜라'이다. 그는 진짜 자신의 원칙대로 투자했다. 자신의 돈은 아예 잃을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놓고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투자한 회사에도 엄청난 압력을 넣어(물론 본인이 직접 압력을 넣진 않는다. 자신이 고른 인물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반드시 이익이 나도록 만든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할 때 대충 상식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문제는 미묘한 차이가 평범한 사람과 부를 쌓는 사람을 가른다는 것이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사람들은 돈을 모으고, 부를 쌓기 위한 구체적은 목표조차 잘 세우지 않는다. 일단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잘 안 한다. 본인 근처에서 이렇게 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 거의 없고(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의 큰 차이다), 목표 달성을 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타성에 젖어 살아간다. 인생에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급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두루뭉술 넘어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생각 차이, 사소한 습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에 소개한 대로 똑같이 따라 해도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똑같이, 누구는 더 가난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간절하다면, 항상 꿈에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간절함이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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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청바지를 입다니 경솔했다! - 매일매일 #OOTD 그림일기
김재인(동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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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룩을 다룬 귀여운 일러스트 책.

저자는 몇 년 동안 인스타그램에 매일 그날 입었던 옷을 간단하게 그림 그려 올리고,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몇 가지 주제로 추려서 뽑은 데일리룩을 실었다. 책에 실린 옷을 보니까 저자는 옷을 좋아하지만, 실험정신 강한 트렌드 세터는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옷을 가진, 평범한 취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대체로 무난한 스타일에, 돌려 입기가 일상인 분이었다. (친근 ㅎㅎ)




책에는 같은 옷과 신발이 많이 나온다. 저자가 실제 옷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옷과 아이템을 매일 코디에 조금씩 변화를 주어 입는다. 흥미로운 건 같은 옷이라 해도, 어떤 옷과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 다르다는 거! 우리는 항상 터질 듯한 옷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입을 옷이 없어!'라고 외치는데, 이 책을 보면 옷을 많이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차피 우리는 많은 옷과 신발을 가져도, 마음에 드는 몇몇 개 아이템만 돌려 입으니까. ㅎㅎ

보통 패션에 관한 책을 보면, 좀 이질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친근해. +ㅁ+ㅎㅎ (이런 친근함은 일러스트이기 때문에 친근함이 배가 된 느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의 유형과도 비슷한 옷이 많고. 매일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이신 분들은 이 책을 보고,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 오랜만에 옷 관련 책(일러스트북?!)을 보니까 예전에 봤던 일본 미니멀리스트의 책이 떠오른다. 저자가 상당히 깔끔하고, 야무진 분이었는데 그분의 옷장은 아주 여유로웠다. 정장 두어 벌, 계절별 일상복 네댓 벌이다였다. 몇 벌 되지 않은 옷이었지만, 그 옷들로 옷장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어떤 경조사에, 어떻게 코디해 입고 갈 것인지 미리 다 계획이 짜여 있는 분이었고, 데일리룩도 무난하고 심플하지만 신경 써서 고른 옷들이어서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그런 옷이었다. 그래서 몇 벌 가진 게 없었지만, 어떤 상황이든 다 어울리게 입을 수 있는 준비가 된 분이라 느껴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의 스타일이 확고한 분이라 적게 가져도 충분히 가진 분처럼 느껴졌다. 보고 배울 점이 많았던 분.

『오늘 같은 날 청바지를 입다니 경솔했다!』는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몇몇 옷과 아이템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걸 보고 위의 일본 미니멀리스트가 생각났다. 적게 가져도 충분히 색다르고 재밌게, 그리고 그날, 그날에 알맞게 지낼 수 있다고.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새삼 이 책을 보고 나에게 필요한 건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어울림'을 찾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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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맘마미아 가계부
맘마미아 지음 / 진서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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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슬슬 한해를 마무리 하고 내년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 슬슬 내년도 가계부가 출간되는 때다. 올해부터 맘마미아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는데, 내년에도 맘마미아 가계부로 낙점 +ㅁ+ 2020년도 가계부는 올해 버전보다 크기는 작아지고, 디자인은 많이 세련되어졌다. 가계부 구성에는 큰 변화 없으므로 낯설어하지 않고 익숙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도 맘마미아 가계부가 내 통장 두둑히 불려주는, 든든한 머니메이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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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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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고 비극으로 가득 찬 외로운 현실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한 남매의 사랑 이야기.

소설은 콜롬비아의 극도로 양극화된 현실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내전과 게릴라 단체와 극우 민병대의 잔혹한 행위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바나나 공화국으로 불리는 왜곡된 경제 시스템은 콜롬비아의 모순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중산층은 있을 곳이 없으며 몰락하고 있다.

중산층의 자녀들은 방황한다. 그들의 처지는 빈곤층과 다를 바 없는데, 교육은 부자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받는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소외된 존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부모님의 비루함을, 약함을, 무능함을, 무지함과 비열함을 경멸하면서 동시에 부자들을 증오한다. 가난한 중산층 자녀들은 그렇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있을 곳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문학으로, 영화로, 예술로 도피한다. 그 자체가 그들을 구원해 주지 않지만 그들은 이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쉬며 기다린다. 사랑을... 사랑만이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도 적었듯이 이 책은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남매의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까 뉘앙스가 끈적끈적한 느낌이지만, 그런 것과 달리 '순수한 사랑'을 의미한다. <존재와 존재 간의 온전한 이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굳이 정의 내릴 마음도 없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말해 본다면, 그 알맹이는 '이해'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 '이해' 역시 머리로 하는 이해뿐만 아니라, 마음으로의 이해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포옹'도 포함된다.

누구보다 외로웠던 8살짜리 남자아이는 열이 팔팔 끓고 너무 아프자 기뻐한다. 이 비루하고 외로운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죽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죽고 싶어서 애가 타는데, 그동안 자기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질투만 많았던 누나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자 그들은 통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 것이다. 누나는 이 빌어먹을 세상으로부터 동생을 지켜주겠다고 결심했고, 동생은 자신이 온전히 이해받음을 느끼며 자신은 강하다고, 자신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남매는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만들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만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비열하고 옹졸한 부모 밑에서 남매는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때가 되면 둘은 자유를 찾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대가 남매를 지탱한다.

동생은 문학과 영화에 심취한다. 나중에는 철학에도 빠지는데 그는 조용하지만 새롭고 기민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때로 아무도 모르게 벽에 그래피티를 그린다. 그는 첫 그림에 화산을 그리는데, 마음속 응어리진 무언가를 폭발시키듯 벽에 그린 것이리라.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비극적 요소가 들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누나가 사라진 것이다. 처음엔 사라진 줄도 몰랐다. 평상시 여행을 자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자, 남동생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누나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버지와 실종된 누나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현재 콜롬비아의 사회적 모순이 드러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 세계화된 양극화와 범죄의 모습도 보여준다. 인도 델리, 태국 방콕, 일본 도쿄, 이란의 테헤란을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곳은 분명 아름다움과 선량함도 있지만, 대부분은 추함과 범죄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무역 경로와 똑같은 경로를 갖는 마약과 섹스 산업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저자 산티아고 감보아는 1965년에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자라고, 유럽에서 공부를 했다. 기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인도 델리에서 외무 영사로도 일했다. 외국에 오랜 기간 체류한 경험으로 그는 콜롬비아나 다른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순과 차별, 불평등이 있음을 보여준다.

콜롬비아는 내전과 좌익 게릴라, 우익 민병대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폭력적이다. 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그 나라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고, 탈출을 꿈꿔 해외로 가지만 해외 역시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는 마찬가지다.

소설 속 태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왕처럼 대접받길 원하는 호색한들이 모이거나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천국이다. 태국의 지식인들은 이런 사실에 분노하며 그들의 사법 시스템을 외국인에게 비우호적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응징한다. 일본은 겉으로는 깨끗한 나라이지만 그들의 성적 취향은 변태적이고 더럽기 짝이 없다. 또한 야쿠자들은 성 접대부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자유를 박탈한다. 이란은 어떠한가. 일본에서 만난 성 노예들을 꿰어 자유와 사랑을 주겠다며 자기 나라로 데려가지만, 자기들 나라에서는 그 여성과 결혼해 또다시 그녀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도록 한다.

감보아가 이 소설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콜롬비아의 비극적 실상일 것이다. 콜롬비아가 문제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자 한 또 다른 것은, 외국도 콜롬비아처럼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소설의 주인공 남매는 자유를 꿈꾸며 외국을 이상향으로 삼지만, 어느 면에서 외국은 콜롬비아 모순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 남매는 부자를 경멸한다. 그런데 남매는 부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자들로부터 좋은 책과 작가, 그림을 알게 되었고, 철학 사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외국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을 때에도 (아마 부잣집 자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소설을 쓰는 지식인인) 영사의 도움을 받는다. 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그들 자체로는 자유와 정의는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소설 마지막, 후아나가 자유를 위해 홀연히 사라진 것이 책에는 해피엔딩처럼 맺어졌지만 도쿄로 갔을 때의 일처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찜찜했다.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보호받지 못한다. 그들은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오직 사랑인 걸까. 죽은 남동생 마누엘 대신, 후아나가 낳은 마누엘로 이어지는, 사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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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외의 첫 콜롬비아 장편 소설.

책 속에는 수많은 작가와 수많은 작품 이름이 나온다. 이것만으로 나는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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