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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산다는 것 - 다산 정약용이 생각한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방 수령과 암행어사의 일을 하면서 조선 민중의 일상을 직접 보았다. 지방 관청의 잘못된 관행이나 탐관오리도 많이 보고, 들었다. 이후 18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정치, 법률, 의술, 과학기술, 지리, 법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저서를 남기는데, 그의 저서의 정수는 유배 말기와 귀양에서 풀려났을 시기에 쓴 3편,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다. 『경세유표』는 정치 제도 개혁에 대해 다루고, 『목민심서』는 지방관리의 폭정을 바로잡고자 책이며, 『흠흠신서』는 형법, 행정, 살인 사건 판례 및 평가를 담았다.
『다산이 말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정약용의 『흠흠신서』를 편역한 책이다. 『흠흠신서』를 그대로 번역한 책은 아니고, 편역한 분이 여러 사례를 뽑아, 『흠흠신서』와 함께 참고하여 읽으면 좋을 『심리록』과 비교 검토해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일반인이 읽기 좋게 편집한 책이다.
조선시대는 3권 분립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지방 수령이 행정뿐만 아니라 사법까지 맡아 보았다. 그래서 사법 판결에 대한 전문성이 많이 떨어졌는데, 이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많았다. 물론 영조 이후로 일괄적이고 엄격한 법률 적용보다, 백성의 편에서 사법을 적용했는데 이는 유교 사상인 덕치에 중점을 둔 덕분일 것이다. (더불어 왕권 강화) 조선 초기에는 사형 판결이 거의 97% 실행되었는데 정조 대에는 3%대로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아, 백성의 생명을 조선 초보다 귀히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지 │ 치고받고 싸우는 조선 시대 사람들_지금이랑 똑같음
『흠흠신서』는 총 5부로 나뉘는데, 제일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조선 시대 살인 사건을 다룬 부분이다. 이 책도 조선 시대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읽고 나면 좀 놀랍다. 제일 첫 사례부터 충격적이다. 본처에서 낳은 자식과 첩에게 낳은 자식이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첩의 자식들에게 야박하게 굴었는데, 어느 날 첩의 자식들과 언쟁이 붙어 둘째 아들에게 급소를 과격 당하고 말았다. 38일 동안 누워 있다가, 본처 자식들에게 복수를 부탁하며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아버지가 죽고 처도 죽었다. 격분한 본처 자식들은 첩의 자식 중 한 명을 붙잡아 칼로 찔러 죽였고 죽인 것으로 모자라 내장을 꺼내 목에 둘렀다. 이 사례가 제일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흠흠신서』가 어떤 책인고 어떤 구성으로 이뤄진 책인지 제일 잘 알 수 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우선 『흠흠신서』는 사건의 발단과 개요를 싣고, 이후 지방 수령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초검, 재검), 그리고 관찰사는 어떤 판단을 했고, 이 보고서를 받아 본 정조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 사건을 평가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이후 다산이 이 사건에 대해 평가하고(이 사건은 다산이 직접 조사하고 다룬 사건이 아니다), 이 책을 편역한 오세진 저자가 본인의 평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뒤에 나오는 사례들도 충격적이다. (살인 사건을 다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 뒤에는 정약용이 직접 조사하고, 해결한 사례들이 나오는데 이 이야기들은 종종 케이블 TV 같은 데서 재연배우들이 연기한 방송을 봤다면 익숙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게다가 정약용이 살인 사건 등에 해결사처럼 등장하는 드라마가 줄곧 제작되었기 때문에 아는 사례도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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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신서』의 핵심은 바로 '인간다움'과 '인정'이다. 극악 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도 그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를 샅샅이 밝혀 그에 따른 양형을 해야 한다고 다산은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당시 조선 시대만 해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사고방식이 있었고 단지 분에 못 이겨서 치고받고 싸우다 살인하고, 발빰하는 일이 많았는데 여기에 분이 쌓인 사람들은 또 극단적인 방식(자살을 많이 함)을 선택해 억울함, 살인의 도돌이표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일 것이다. 물론 사건 자체도 정말 중요하지만.
지금 시각에서 보면 다산의 주장도 성차별과 서자 및 계급 차별이 심해서 사람에 따라서 불쾌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시대의 한계라 이해해야 하며, 그 당시 흔치 않았던 다산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고 그의 애쓴 태도를 배워야 한다. 지금 보기에는 거북할 수 있으나, 그 당시에는 상당히 깨였고 진보적인 주장이었다. (이 책에, 남편과 싸우다 맞아 죽은 여성도 냉정하고 엄격한 시각에서 '여성'의 억울함을 인정하고 그녀를 죽인 남편과 시아버지를 비판한다. 조선시대 당시 이런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대부분 '아내', '며느리'가 잘못했다고 밑도 끝도 없이 비난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살인 사건과 그 전모, 그리고 정조와 다산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궁금하신 분께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조선 시대 살인 사건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흉악하고 충격적인데 그래서 더 알고 싶고 흥미(...)롭다. 또 조선 시대 때 사람들이 어떤 갈등을 했는지도 잘 보여준다. 여느 추리소설 못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