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커트 보니것 옹~님의 장편 소설, 『갈라파고스』!! 짙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짙은 파란색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갈라파고스의 터주대감, ‘푸른발부비새’의 형광빛 돋는 푸른 발처럼 제목의 형광색도 책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참고로 ‘푸른발부비새’는 이 소설에 주요하게 등장한다. 물론 ‘큰 의미는 없다’는 중요한 의미를 상징하는 피조물로서) 

작년에 커트 보니것의 유일한 단편소설집 『몽키 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를 인상 깊게 봤는데, 이번에 읽은 『갈라파고스』는 『몽키 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와 비슷한 느낌이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쨌든 장편과 단편은, 달리는 것만 똑같을 뿐 장거리 달리기와 단거리 달리기의 차이만큼이나 엄청 다른 분야이니까)  

『갈라파고스』는 커트 보니것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나는 소설이다. 반전(反戰)과 환경 오염,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 이 시대의 인간 문제를 후벼 파고, 비판하고, 깎아내린다. 즉, 커트 보니것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풍자, 비아냥이 있는 것. 

소설의 큰 줄거리는 이러하다. 

지금으로부터 백만 년 후에도 이승을 떠도는 유령이 이 소설의 화자다. 유령인 화자는 백만년 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곡점이었던 1986년에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있다. 그때 과야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과야킬 외의 세상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유럽에서는 의문의 미생물이 여성의 난소 속 모든 난자를 먹어치우는 전염병이 확산 되고 있었고, 엄청난 기근으로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극소수의 있는 자를 제외하고, 배고픔에 못 견딘 대부분의 인간들은 폭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때 인정 많던 사람이 한 부자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전화와 연결된 선을 다 뽑아 버리는 바람에 세상과 단절된 엘도라도라는 호텔은 꼭 갈라파고스와 같다. 어쨌거나 대기근과 경제 대공황이 전 세계를 타격했고, 에콰도르는 이웃 나라 칠레와 일촉즉발 전쟁 위기에 휩싸인다. 그러다 로켓(미사일) 투하와 대폭발이 이어졌고 갈라파고스로 출항할 예정이었던 극 소수의 사람만 생존한 채 전 인류는 멸망한다. 이들이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된 것이다. 새인류의 시조들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한 섬인 ‘산타로살리아섬’에 고립된 채 갈라파고스의 동식물처럼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는 이야기. 

소설의 대부분은 에콰도르 ‘과야킬’의 엘도라도 호텔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고 2부에서 산타로살리아섬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다. 

커트 보니것의 설정이 어떠하든 이 소설의 핵심은, 인간은 복잡하고 오묘하며 아주 큰 ‘뇌’를 가지고 있으면서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고, 위선적이고 자만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고 있다. 보니것은 한 마디로 이 큰 뇌를 가지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인간에게 ‘뇌’가 필요 없다고 일침을 놓는다. 차라리 물속에서 뻐끔거리는 물고기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손발이 없는 물고기가 되면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지도, 괴롭히지도 못할 거라고. 

커트 보니것은 1922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신문 기고로 인해 징계를 받고, 군에 입대한다. 전쟁 막바지 즈음 유럽에서 미영 연합군의 폭격으로 드레스덴 시민이 몰살당하는 비극적 사건을 목격한 이후 반전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반전 작가로 이름이 높은데, 이 책 『갈라파고스』에도 반전 요소가 곳곳에 묻어난다. 그의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풍자인데, 흥미롭게도(?!) 그의 죽음도 그의 소설 속 캐릭터처럼 허탈할 만큼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다(자택 계단에서 굴어 머리를 크게 다친 후 사망하는데, 그의 소설 속 인물들도 이런 식으로 사망한다).

인간은 좋은 머리, 소우주라 불리는 ‘뇌’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고도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시하는 소설이다. 사실 나도 의문! 하지만 돌고래처럼 물고기는 안 됐으면 한다. 그래서 이 좋은 뇌를 가지고 좀 지혜롭게 살고 좋은 세상 만들어 보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