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 최신 개정증보판
김정희 지음 / 혜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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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인가, 11월에 수학 공부를 시작하려고 서점에 가 수학 문제집을 샀다. 진짜 공부할 요량으로 꼼꼼히 보고 고른다고 책 고르는데만 해도 1시간 걸렸을까. 고심 끝에 고른 책, 지금까지 책꽂이에 그대로 꽂혀있다. ㅠㅅㅠ (이봐, 이럴 거면 왜 샀어.) 

나도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포기했던 자다. 아니, 초등학생 때부터 산수를 포기했던 사람. 나는 분수 개념이 너무 어렵고 어려워서 이게 도대체 뭔지 이건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산수와 수학은 나와는 먼 삶을 살았다. 그런데 과학은 좋아해서 고등학생 때 이과를 선택하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산수를 포기하고 자란 사람으로서, 당연히 중/고등학교 수학 점수는 그냥 바닥이었다. 어쨌든 그런데도 늘 수학은 손톱 밑에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늘 아프고, 거슬리고, 찜찜한 것이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몰입한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쩜 그렇게 멋있는지. 멋있음은 내 것이 아니라, 저들, 수학을 잘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수학을 못하고, 수학을 안 해도 늘 마음 한 편에 두고 수학을 동경하며 살았나 보다. 

그리고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통쾌함이 있다. 수학자는 아니지만, 수학 이야기가 에세이집에 많이 나오는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글을 읽으면 수학이란 게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 나도 이 재밌는 세계에 빠지고 싶어!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의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는데,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읽을 때마다 그랬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도 사고, 좀 더 쉬운 레벨인 중학생 책도 사고 그러기를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도 수학에 트라우마가 있듯, 나 역시도 수학 트라우마가 강하게 있어서 수학 거부증, 수학 어지럼증, 수학 구토증 여러 가지 증상이 있어 여러모로 힘이 든다. 단순히 수학이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가 있다. 자존감의 문제랄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 실존을 위협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 트라우마는 이렇게나 위험한 것이여!) 

어쨌든 지금도 수학 문제집들을 책꽂이에 꼽아 놓고 나를 매일매일 내려다보게 만들어 놓고, 주눅 들어 책을 펼치지 않았다. 아아,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엇? 나와 비슷한 데서 출발했지만 나와는 달리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람을 내 롤모델로 삼는 것! 그리하여 나처럼 수포자 출신이지만 이후, 화려하게 수학에 입덕(?!)하신 분의 책을 읽은 것이다. 

어렸을 때 병약했던 저자는 자주 학교를 빠졌다. 그래서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었기에 다른 과목은 금방 잘 따라갔지만 수학만큼은 그러질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학 점수가 낮은 아이들만 남아서 보충 학습을 할 때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게 됐는데 그때 문제를 잘 못 풀자, 바로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고 한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너무나 강해서 이후 수학, 그리고 지금도 종종 긴장하게 되거나 그럴 땐 간단한 산수 계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분, 어릴 때의 트라우마는 이렇게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저자가 학교 다니던 시기는 군부정권 때여서 그런지 진짜 학교에서도 폭력이 난무했구나 싶다. 수학 문제 하나 못 풀었다고 바로 뺨을 때리다니. 으으으..) 

이후 저자는 수학의 매력에 빠졌고 본격 취미인으로서 수학을 즐기게 된다. 이분은 삶이 취미인이신 듯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셨는데 아이 낳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취미가 두 개 있으니 하나는 글 쓰는 것(저자는 소설가이시다)이고 또 하나는 수학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학을 취미로 하기도 어렵지만 뭔가를 포기해야 할 때 제일 먼저 포기할 것으로 '수학'을 꼽을 것 같은데 이 분은 수학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다. (대단대단 +ㅁ+)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에필로그와 수학을 취미로 삼게 된 이유를 다룬 부분, 두 번째는 수학자들 이야기, 세 번째는 취미로 즐기는 수학, 수학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이 책의 전반부인 저자의 삶, 취미를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요즘 크게 관심을 받고 있는 페미니즘 책과 상통하는 내용이기도 하고(꼭 『82년 생 김지영』 같은?!), 이런 페미니즘 유행을 떠나서 누군가의 삶과 그 사람의 생각을 알아가는 건 진짜 재밌으니까(바로 이 재미 때문에 내가 책을 읽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됐고, 내가 수학 때문에 겪었던 일들, 여러 곤혹스러웠던 일 그런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이 분처럼!!'이라며 다시 수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수학의 매력은 충분히 잘 알고 있는데, 나는 왜 수학을 취미로 즐기지 않는 거니... >ㅁ< 제대로 시도를 안 해서일런가, 습관이 들지 않아서 일런가. 으어ㄱ.... 아, 몰라. 이런 부정적인 마음, 수학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치는 것부터 진정 수학을 즐길 수 있는 첫걸음이겠지. 

그리고 나, 이제 정말 수학을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던 것에서 벗어나서!! 
요즘, 엄마가 나이가 드시고, 여러모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단순히 깜빡 잊는 문제도 문제지만, 없던 일을 있던 일로, 있던 일을 없던 일로 기억할 땐 가끔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정말로 무서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 그중 수학이 있더라. 엄마가 학교 다닐 때 수학 과목을 제일 잘 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봐도 엄마는 수학이나 산수에 관해서 확실히 좀 비상한 면이 있다. 수학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듯, 엄마는 뭔가 잘 이해를 하셨다. 하지만 나이가 드시고 이런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은데 이런 노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수학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의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인 수학, 그래서 늘 수학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 이런 내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수학'이라 본다. 

저자가 취미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이 정말로 공감이 되고, 엄마의 삶이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엔 나이듦은 언급되진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도 참 좋았다. 그래,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것 중, 그리고 최소한의 돈이 드는 것이든 '수학 문제 풀기'만한 것이 있을까. 제대로 된 즐거움만 깨닫게 된다면 더없이 순수한 기쁨, 행복도 느낄 수 있겠지.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해야겠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

그래, 도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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