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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5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전쟁과 평화』를 완간했습니다.
두툼하고, 무겁고, 단단하고! 완전 마음에 듭니다.

이번에 완간된 『전쟁과 평화』은 톨스토이의 3대 장편 소설 중 하나입니다. 톨스토이의 3대 장편 소설은 『부활』,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입니다. 이 책들을 읽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한 번 이상 들어봤음 직한 소설들입니다.
어렸을 때 아무 뜻도 모른 채 읽었던 『부활』, 2년 전 12월 겨울에 읽었던 문학동네 판본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이번에 읽기 시작한 『전쟁과 평화』 . 앞으로 『전쟁과 평화』2~4권까지, 3권 더 읽으면 미션 클리어 입니다.


톨스토이 3대 장편 중 『전쟁과 평화』가 제일 분량이 많습니다. 분량이 많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읽기 좋은 책입니다. 2017년이 끝나기 전에 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계획했던 일들을 말끔하게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큼하게 2018년을 시작하기 위해 남은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부지런히 읽어야겠습니다. 부담스러운 목표이나 시간적, 심리적,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이루지 못하는 목표. 모순적이지만 이 모순을 즐기며 미션 클리어하도록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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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 자신의 모친과 부친 가계를 토대로 만든 볼콘스키 가문과 로스토프 가문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가문에 더해서 주인공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번민에 휩싸이게도 하는 쿠라긴 가문 사람들과 베주호프家 사람, 그리고 기타 등등의 난봉꾼들(...응?)이 무수히 등장하고 사라지는 대작(大作) 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등장(무려 599명!)하고, 엄청나게 긴 이름과 수많은 애칭들이 많이 등장하니까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기 전에 노트와 펜 준비는 기본입니다.
[책의 구성]
1권의 배경은 1805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제3차 대불(對佛)동맹을 맺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주인공들 가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그 가문의 몇 몇 젊은 남자들이 전쟁터로 나가 싸우는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어 펼쳐집니다.
가정이야기는 가문 간 혼사 이야기와 서자여서 아무 존재감 없던 피예르가 정식으로 아들로 인정받고 막대한 유산과 작위까지 물려 받는 이야기가 1권의 주 내용입니다. 함께 교차되어 나오는 전쟁터 이야기에서는 나폴레옹처럼 영웅이 되고자 했던 철 없던 젊은이들이 전쟁의 실상을 겪고, 성숙해가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군대 내의 엄격한 계급질서와 군의 계급보다 더 엄격한 '신분 계급'을 깨닫는 건 덤이죠. 젊은이들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돈과 지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을 경멸했으나, 군에서 계급 장벽에 부딪히고난 후에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고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보다 돋보여야 하고, 얼른 공을 세워야 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인맥이든 뭐든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해서 남들보다 높은 고지로 올라가야 함을 차츰 알아갑니다.
[가정이란 평화롭기만 할까]
평화로 상징되는 가정, 특히나 로스토프나 안드레이 둘 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을 때 모두 평화롭고 행복했던 집을 떠올립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겁니다. 하지만 집이 마냥 평화롭고 행복한 곳인 건 아닙니다. 가정도 실상 알고 보면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특히나 막대한 재산, 그리고 지위와 명예를 모두 다 갖고 있었던 베주호프 老백작이 죽을 때는 정말 전쟁 같았습니다. 백작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백작 집에 모여듭니다. 치열한 눈치 싸움과 끊임없는 계산들...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도 전쟁터 못지않게 치열하고, 긴장감 도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제일 긴장하며 읽었던 부분은 바실리 공작의 아들이자 페테르부르크의 내노라하는 난봉꾼 아나톨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마리야에게 청혼하러 갔던 부분입니다. 오로지 돈과 가문만 보고 청혼하러 간 것이었는데 마리야는 첫눈에 잘생긴 아나톨에게 반하고 맙니다. 세상은 오로지 내기와 게임처럼 재미난 것 투성이로만 아는 난봉꾼 아나톨과 순진무구한 마리야가 결혼하다면 마리야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안 돼, 안 돼! 아나톨은 너를 불행하게 만들 거야. 이놈에게 걸려들면 안 돼!’라고 속으로 외치고, 마리야를 뜯어 말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긴장하며 읽었어요. 다행히 마리야의 아버지가 단박에 모든 걸 꿰뚫어 보고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 후 마리야는 올바르게 바라봅니다. 어쨌든 마리야 아버지가 아나톨의 인간성을 단박에 파악했을 때 긴장감은 최고조가 됐는데요, 정말 전쟁터 이야기 못지않게 긴장감 돌고, 긴박했어요. (물론, 톨스토이가 이런 의도를 갖고 이 소설을 쓴 정말 아닌데 말이죠. >ㅁ<)
한 가문의 번영과 몰락은, 한 나라의 번영과 쇠퇴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한 순간의 결정이 운명을 결정짓듯이 말이죠. 러시아 황제가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폴레옹에게 대패하고 포로가 됐듯, 많은 집안의 사람들이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어리석은 결혼을 하고, 돌이키기 힘든 일들을 겪습니다. 피예르가 영 마뜩잖아 하면서도, 주위 분위기에 떠밀리고 옐렌의 미모와 매력에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1권의 핵심]
『전쟁과 평화』 1권은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안드레이 공작이 심각한 부상으로 생사를 오가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는 한때 불꽃같은 사랑을 했지만 결혼 후 아내에 대한 애정이 차갑게 식어버렸고, 남자라면 ‘전쟁터에서 굴러야지!’라는 생각에 모든 걸 내팽개치고 아내에게서 도망치듯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제거해야 할 적장이었지만, 속으로는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이번 전쟁에서 무훈을 세워 나폴레옹처럼 누구나가 자신을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영웅이 되기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머리 부상으로 쓰러졌을 때 안드레이 공작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생각이 바로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 전반부에서 관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 내가 쓰러지고 있는 걸까? 다리에 힘이 없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 그는 프랑스 병들과 포수의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빨간 머리 포수가 죽임을 당했는지, 포를 빼앗겼는지 지켰는지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드높은, 맑지는 않지만 측량할 수 없는 드높은 하늘과, 하늘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잿빛 구름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저 프랑스병과 포수가 적의에 불타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서로 세간을 잡아당기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그러나 이 하늘마저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정적과 평안 외에는.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1권, 540쪽에서)
‘허무’가 강조되어 있는 탓에 『전쟁과 평화』 전체를 관통해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1권에서 위 발췌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쟁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누구나 살면서 언젠가는 알아야 합니다. 영웅주의적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인류를 구하고, 조국을 구할 거라는 망상을 깨부숴버려야 합니다. 더 나은 인간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자신을 감싸고 있는 좁은 세계관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살면서 이런 허무함은 꼭 한때 느껴야하는 통과의례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방탕과 허무, 도덕주의. 이 세 가지를 순환하듯 맴돌았던 톨스토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 했던 건 분명하다 봅니다.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던 『전쟁과 평화』 1권. 이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특히나 톨스토이가 긍정적으로 묘사했던 마리야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제일 궁금합니다. 얼른 2권, 3권, 4권도 얼른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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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살아생전 아주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 분량을 단기간에 소화하기 힘듭니다. 톨스토이의 글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홀로그램처럼 어떤 시각에서 읽느냐에 따라 하나의 작품도 다채롭게 읽힙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글자’만이 아니라 ‘행간’과 그 ‘배경’까지 읽어야 합니다.
글 속에 스며들어 있는 톨스토이의 생각들은, 일반인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고민이 아니기에 그의 글이 크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그렇다고 마냥 쉬운 글도 아니지많요! >ㅁ<). 그의 소설에는 누구나 하는 생각과 번민이 있기에 쉽게 동감하고, 고개 끄덕이며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끈기’가 꼭 필요해 보입니다. ‘글자’만을 읽으면 그의 장편소설은 연애 소설, 세태 풍자 소설로만 읽히기 쉬워요. 아마도 톨스토이가 누구나가 읽기 쉽도록 썼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대문호의 작품이 그러하듯 소설의 진입장벽이 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와 고금을 뛰어 넘어 관통하는 뭔가가 있습니다. 삶에 대한 통찰이랄까, 어리석인 짓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인류에 대한 애정이랄까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글자 속에 스며있는 톨스토이의 생각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끈기와 집요함이 필요합니다. 다른 대문호의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누구나가 겪고 맞닥뜨리는 삶의 작은 문제들이 사실 알고 보면 사회 구조적 문제이고, 인류가 대대로. 정말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인류 대대로 이어서 되풀이해 오고 있는 어리석은 문제들을 집요하게 짚어 가며 보여줍니다.
일반인과 천재의 차이는 단지, 문제라 인식되는 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고자 애쓰고, 해결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쓰인 작품이기에 독자도 의무사항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반드시 독자로서 끈기와 집요함이 필요하다 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읽기는 쉽지 않으므로,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 다음에 읽을 땐 느낀 바와 떠오른 생각과 소설 속 배경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필요합니다. 러시아 장편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러하듯, 등장인물의 기나긴 이름과 수많은 애칭, 헷갈리는 관계도를 정리해 읽듯이 말이죠.
이렇게 쓰고나니 역시나 얼른 『전쟁과 평화』 2권, 3권, 4권을 읽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