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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았을지 상상했을 때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읽어보니 성격이 꽤 많이 다른 책이었다. 음,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역사서? 자서전? 에세이? 소회록? 내 생각엔 제일 적절한 분류는 역사 에세이(?!)인 듯하다.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 꿈이 백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꿈에 그리던 역사를 전공, 박물관 학예사가 된 이야기, 논문을 준비하며 박물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연구하며 결과를 발표했던 일들 그리고 백제史 공부를 하며 만났던 좋은 인연에 대해 쓴 책이다.
그렇다고 에세이에 집중한 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백제 역사의 내용이 상당히 풍부하기 때문에 단순히 에세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책의 중후반부부터는 백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자연스레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들이 우리 땅에서 벌인 일과 그 후 나타난 폐단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일반인들에게 지엽적인 역사이야기일 수 있으나, 오랫동안 박물관 학예사로 있으시며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하시는 것이 업이셔서 그런지 내용이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백제'라는 나라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우아미가 느껴지는 나라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어렸을 때 유인촌 씨가 진행자로 나왔던 '역사스페셜'을 종종 봤다. 자주 봤음에도 기억에 남는 건 딱 두 가지 에피소드인데 하나는 경주의 황룡사지 목탑에 관한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백제금동대향로 에피소드였다. 충격과 놀라움. 가슴 벅차 오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후, 역사스페셜이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도 백제금동대향로 파트는 반복해서 여러 번 읽었다. (물론 얼마 안 있다가 곧 다 까먹었지만) 이 책에 많이 나왔던 수막새 무늬들, 어쩜 그렇게 예쁜지. 몇몇 무늬는 심플하면서도 상당히 현대적이어서 충분히 지금 이 시대에도 새롭게 해석하고, 예술작품이나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그런 디자인. 백제의 문화나 백제인들의 미의식에는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잘 알고 싶다.
몇 년 전에 전주에서 1박 하고, 공주와 부여도 돌아봤는데 참 좋았다. 내가 사는 곳과 많이 다르게 동글동글하고 엿가락같이 이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는 구릉과 언덕, 아름답고 고요하게 흐르던 백마강이 기억난다. 아무리 중국 난징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하다고 해도, 백제의 지역적 특성과 매력이 유물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는, 그러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 나에게 백제는 이렇게 다가온다.
책의 저자는 순천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백제인의 후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학생 때부터 백제사를 연구하고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백제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백제사를 전공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지금에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그 마음을, '국립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으로 있는 지금 조금 한가해진 때에 책 한 권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만 쓰면 뭔가 되게 은퇴를 앞둔 노학자, 노관장의 느낌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연도를 따져보면 그렇게 나이가 많으신 분이 아니다. 40대 중 후반?! 한 박자 쉬어가면서 다시 심도 있게 연구할 주제를 찾고,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지나온 어린 시절과,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에필로그에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하셨다)
나도 저자의 나이쯤이 되면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될까. 공부와 자신의 길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정말 본받고 싶다. 저자가 연구한 이야기한 부분에서는 저자가 정말 신이 나서 설명하는 느낌이 종종 들었는데, 자기 분야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런 애정과 열정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고, 무슨 전시하는지 꼬박꼬박 체크하고 있는 나. 평상시 박물관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 속에서 간간이 언급되는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 학예사분들이 박물관에서 하는 일 그리고 사람 간에 맺게 되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들도 참 좋았다.
백제에 관심 있으신 분은 물론이고, 박물관 혹은 큐레이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읽어도 참 좋을 것이다.
+ 저자가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품게 된 의문들, 질문들, 깨달은 생각들은 나 역시도 곰곰이 생각해 볼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