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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평점 :
비가 추적추적 내린 일요일, 이 책을 읽었다. 비와 닮은 소설 같기도 하고, 전혀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그런 소설이었다.
(경고! 이하, 스포일러도 좀 있음)
│칼│
칼은 자르거나 써는 데 쓰인다. 사람을 벨 수도, 음식을 벨 수도, 환부를 벨 수도 있다. 벤다는 건 같은데, 그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칼의 존재 의미는 달라진다.
이 책에서는 주로 도마 위에 올라온 음식들이 칼에 잘린다(나중에 다른 것이 잘리기도 함. 뭔지 궁금하죠?!). 주로 첸의 도마 위에서 식재료들이 잘리는데, 첸 이전에는 첸의 아버지가 수많은 것들을 잘라 왔다. 자를 때마다 흥건히 배어 나오던 피는 도마에 스며 들었고, 피가 스민 도마는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강철의 느낌을 내뿜는다.
도마 위에서 동물들은 생을 마감(死)하고, 누군가의 입속(生)에 들어갈 수 있게끔 다듬어진다. 도마 위는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공간. 단순히 이것과 저것인 각각 따로의 생과 사가 아니라, 생과 사가 하나로 연결되고 그 자체가 하나가 되어버린 뫼비우스 띠처럼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첸은 괴뢰국인 만주국 사령관인 오토조와 내기를 한순간부터 자신이 살기 위해 도마 앞에서 재료를 다듬고, 오토조를 죽이기 위해 도마 앞에서 음식을 한다(오토조를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목숨이었다고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오토조는 첸이 만든 음식을 먹고 그 음식량만큼 매일의 수명의 연장해 나간다. 첸은 이상은 컸지만 끝까지 실패한다. 인간은 자기 실력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정욕구 가득한 인간들. (아마 일제강점기 때의 친일파들은 각기 다양한 이유로 친일파가 되었겠지만 그중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의 진심 어린 칭찬 한 마디, 진정 자신을 알아주는 말 한마디로 친일파가 되었던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본다. 그래서 사람은 원수인 적(敵)이 악랄한 악마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아닌 상황을 맞닥뜨려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하다.)
│혀│
혀는 순전히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 신체 기관이다. 말하는 데 쓰이고, 음식의 맛을 느끼는 데 쓰인다. 세 치 혀로 살거나 죽기도 하고, 세 치 혀로 맛본 음식 맛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음식의 맛이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그 즉각적인 힘이란!).
이 책에서도 음식으로 죽이려는 자와 죽음까지 감수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자의 대결이 펼쳐진다. 직접 맞붙어 싸우지 않고, 음식으로써, 팽팽하게 대결한다.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맨 끝 페이지에 이 목숨을 건 대결의 진정한 승자가 나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데헷.)
이 책에서도 얼핏 나오지만, 누군가는 음식의 맛보다 음식을 예찬하는데 더 이 혀를 쓰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혀가 소중하다고. 가끔 미식가라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미각이 나보다 더 발달한 것 같긴 하지만 어쩔 땐 단지 미식가들이 음식을 표현하는 어휘만 많이 아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음식의 맛의 맛을 풍부하게 느끼기보다는, 음식을 표현해 내는 어휘가 풍부하다는 느낌. 그리고 맛은 이러해야 한다고 우기기만 잘해도 될 것도 같고, 음식과 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더해지면 확고부동한 미식가가 되는 듯하고. 잘 모르겠다. @ㅅ@
│식민 시대 여자의 삶│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고달프지만, 역시나 제일 고달픈 건 여성이다.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죽지만,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대받고 죽어나간다. 복잡한 사회/윤리적 문제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인 수치심과도 직결된 문제라서 여성들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감내해야 했던 부당함을 쉽게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라느니 이런 말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
전쟁 땐 남성은 필요할 때만 여성을 찾는다. 매일매일 목숨이 오가는 일이 벌어지기 일쑤라 제 한 몸 건사하기 바빠, 여성을 여성으로서 여성을 온당한 한 인간으로서 대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자기 목표를 달성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길순)은 그렇게 인생을 유린당했다. 그의 친오빠는 매번 길순을 사지로 몰았다. 여동생이 겪었을 어떤 수치심과 치욕엔 무관심하다. 동생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고, 수치심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떠맡기고 강요한다. 여동생은 심리적으로 오빠에게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싫으면서도 하나씩 해나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네 인생을 살아, 길순!!! 길순 오빠, 너 너무 미워. 네놈은 일본군 하나 제대로 죽이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길순이에게 미션을 주고, 길순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냐고. 왜왜! 비굴하고, 약한 놈들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더 악랄하게 군다. 흥! 인력거 한 명 구한 거랑 길순에게 던져준 임무랑 그 위험도가 같냐?! 결코 너를 좋게 볼 수 없구나!)
만주국 사령관(야마다 오토조)은 길순을 보고 반하지만, 길순이란 사람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얼핏 보이는 어머니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혀의 감촉을 느끼고 싶었으리라.
중국인 첸도 마찬가지다. 만주국 사령관을 죽일 수만 있다면, 노모의 죽음도 길순의 죽음도 아무것도 아니다. 야마다 오토조나 첸이나 어쩌면 길순의 친 오라비와 똑같다. 친오빠는 자신의 애를 가진 여자가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오토조와 첸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잔인한 걸까, 남자가 잔인한 걸까. 아니면 인간 모두가 잔인한 걸까? 길순도 잔인한 걸까? 하긴 길순도 친오빠를, 오토조를 첸을 사랑하진 않았다. 당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이었다. 전시 상황은 최고도로 경직되고 보수화되는 시기라 인권 유린이 최고조에 이르고, 그 외에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할 때면 여성의 삶은 벼랑 끝에 놓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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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전쟁 혹은 식민지배 하의 여성의 삶은 정말 비참해서 속이 많이 쓰렸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배경의 글을 잘 안 읽기도 한다. 도구화되는 것이 비단 여자들 뿐일까. 도구화된 여자들, 도구화된 시민들, 도구화된 일개 사병들, 도구화된 장교들... 이 도구화는 피라미드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위에서부터 아래로 인간을 도구화 시킨다. 이 책에도 나왔지만 사람 죽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참으로 쉬운 일이다.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말하고, 돌아다니던 그 뜨거운 피가 사지 끝까지 돌던 사람이, 총을 맞거나 죽게 되면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해진다. 참으로 묘한 감정이 들면서 씁쓸하고 가슴 아프다. 그리고 인간이 너무나 쉽게 하나의 덩어리가 될 수 있는 전쟁은,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욕심을 부려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로 강제 합병하고 식민지화하는 것도 안 된다. (알겠냐, 몇 몇 나라의 수장들아!)
처음엔 요리와 패망 직전의 만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읽다보니 아, 이렇게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스토리가 영화 시나리오로도 상당히 좋을 것 같았는데, 이완 감독의 《색, 계(色, 戒)》 못지 않은 《식, 계(食, 戒)》라는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