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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이다혜 기자의 여행에 대한 에세이.
-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여행 에피소드가 간간이 나오지만 단무지처럼, 김치처럼 글의 흐름에 입가심 역할을 하는 밑반찬이지 메인이 아니다.
이다혜 기자에게 여행이란, 일상과 같은 것이다. 쉴 때면 집을 나서 여행을 떠난다. 그곳이 해외일 수도 있고, 국내일 수도 있다. 어디로든 떠나 걷고 바라본다. 낯선 타지이지만 마음에 들어서 자주 가 익숙해지면 그곳이 더 좋다. 갔던 곳에 또 가고, 알던 곳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그런 스타일의 여행자.
읽다 보면 여행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아, 이런 여행 법도 있구나 싶은 부분도 많다. 뭇 여성들이 선망하는 그런 여행, 그런 삶이다. 여행기가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여행'에 대한 글이다 보니 읽다 보면 저절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뭐지?', '여행하다 정말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지?', '다른 사람과 함께 갔던 여행이 좋았나, 나 혼자 갔던 여행이 좋았나?' 이런 물음을, 이런 생각들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여행에 대해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했다. (Le désir de l'homme, c'est le désir de l'autre. - 직역을 하자면, '인간의 욕망, 그것은 타자의 욕망이다') 인간이 욕망하는 타인의 욕망은 여러 개 있지만, 그중에 '여행'이 그 대표적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무언가 젊은이의 특권같이 여겨지고, 최대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여행지에서 고생 꽤나 해 본 사람은 인생 좀 제대로 산 사람처럼 느껴진다. 낭만적인 느낌도 폴폴, 인생을 제법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고,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한창 학교 다닐 때 류시화 씨나 한비야 씨의 여행 에세이가 서점가를 강타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에 이분들의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고, 학생이라면 대학생이 되면 꼭 배낭여행을 떠나리라 꿈을 꾸고, 다 큰 성인은 언젠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꼭 여행을 떠나니라,라는 소망을 품었다.
해외여행이 퍽 쉬워진 요즘 긴 연휴라도 있는 달이면 사람들은 캐리어를 끌고, 혹 배낭 하나 메고 떠난다. 그리고 돌아와서 지인들에게 여행 참 좋다고, 또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다들 정말 좋았으니까 좋았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여행 자체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함께 간 사람과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좋았고, 순간순간의 인상이 좋았을 뿐 그렇다고 해서 여행 자체가 좋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어딘가 떠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고, 굳이 떠나지 않아도 일상을 살면서 순간순간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이 좋았던 것이다. 내게 여행은 좋은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면 가는 것이고, 뭐 안 가도 전혀 상관없는 그런 것.
여행을 가보니까 알겠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혹은 때로 혼자인 것, 좋아하는 풍경, 분위기 속에 있는 것. 이것은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게는. 그러니까 나에게 여행은 타인의 욕망이었다.
재밌고 정말 잘 쓴 여행기를 읽고 떠나고 싶은 것은 단지 저자들의 훌륭한 글빨 덕분이었다. 그 저자들이 여행기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썼더라도 내 마음은 동요하고, 그들을 따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나 빌 브라이슨의 글이 그렇다. 그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 여행을 가고 싶고, 그가 쓴 역사서나 에세이를 읽으면 꼭 나도 무언가 정리해서 글로 남기고픈 충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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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왜 서평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무엇인지 줄줄이 쓴 이유는, 이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나의 화답이랄까 그렇다. 나는 여행에 대해 호불호가 딱히 없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담은 듣는 걸 좋아하고, 여행 에세이도 참 좋아한다. 여행 다큐도 좋아해, 방송국 PD들이 뭔가 딱딱하고(평상시 그런 말투는 절대 아니겠지! ㅋ) 일반인 티가 역력히 나는 내레이션 듣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외국의 멋진 풍경이 나오면 '와, 저기 멋지네, 와, 세상에 저런 곳도 있네' 그러면서 감탄도 곧잘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내가 여행을 가고 싶거나, 직접 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는 극히 드물다. 분명 티비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사이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굳이 그 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딱히 생기지 않는다. 내 취향은 그러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은 계속 들었다.
자, 다들 이 책을 읽고 여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