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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셰프 -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셰프의 24시간
마이클 기브니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2017년 4월 21일~22일
/주제 분류/ 픽션이나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글
/읽은 동기/ 食계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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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 레스토랑 주방 sous-chef(부주방장. sous는 프랑스어로 '아래'를 뜻하는 전치사다. 책 속에서는 수셰프라고 번역되어 있다)가 화자인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 이야기. 레스토랑이 가장 분주한 12월 연말, 어느 금요일에 펼쳐지는 주방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침에 레스토랑 주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재고 및 새로 들어온 재료 파악, 청결 상태 체크를 시작해서, 영혼까지 뽑혀 나가는 저녁 피크 타임을 지나, 그날의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까지 서술한다.
뉴욕 레스토랑의 주방은, 한마디로 전쟁, 그 자체다.
오전은 조용하지만 그날 있을 전투에 모두가 긴장이 역력하다. 서로 간의 견제와 질투, 고성과 욕설, 그러면서도 주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체가 된 듯 대단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정신없이 바쁠 때에도 모두 한치의 틈도 없는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린 듯 착착 손발이 맞다. (물론 종종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건 전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사람의 숙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그렇게 여러 명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일하는 모습과 그 배경이 되는 주방을 샅샅이 보여준다. 단 하루에 벌어지는 일만 순차적으로 보여주지만, 이 세계를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손님이 밀어닥쳐서 급박하고 긴장된 주방의 모습, 그 모습 그대로 문체는 긴장되고 호흡이 가쁘다. 그래서 그렇게 얇지 않은 책이지만, 금방 읽게 된다. (초반에 그날 재료를 준비하는 부분에서 주방과 조리 도구, 조직도를 상세히 알려주는데, 전문 용어가 나오고 동방의 이 작은 나라 사람으로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메뉴와 용어가 튀어나와도 글 전체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없다. 맨 뒤에 용어 설명 부록이 실려 있어서 궁금하면 찾아 볼 수도 있다. 난 독서 흐름이 끊길까 봐 안 읽어 봤지만)
몇 년 전부터 안방 티브이의 맛집, 요리 열풍이 불어닥치고,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매일 티브이에 나와 그들의 요리를 보여준다. 예전엔 다큐에서나 얼핏 보았을 그들의 모습이 이제 예능화되어 웃음과 함께 안방에 찾아왔는데 이제야 요리사들이 어떤 자세로 요리에 임하는지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홀과 주방은 벽으로 가로막혀서, 벽 하나로 두 세계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뉘어 버렸다) 티브이나 영화를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이 셰프나 요리사들이 어떻게 요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도 유명한 셰프들이 티브이에 자주 등장하는데 참말 멋지다.
어떤 자부심, 자긍심, 아우라가 넘쳐흐른다. 몇몇 요리 경연 프로그램으로 주방의 세계가 얼마나 혹독하고 살벌한 전쟁터 같은지 알게 된 지금, 그들의 자부심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들이 맨 밑바닥에서 어떻게 노력해서 셰프의 자리에 올랐는지 얼추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방에서 퍼지는 향긋한 음식 냄새보다 긴장으로 역력하지만 어떤 희열이 느껴지는 아드레날린 냄새를 담뿍 느낄 수 있었다.
티브이로, 레스토랑 주방의 치열한 세계에 자못 흥미를 느꼈던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좀 더 디테일하게 그 세계를 파악하실 수 있을 듯.
저자 마이클 기브니는 진짜 셰프 출신으로 16살에 레스토랑에 일하기 시작, 22살에 수셰프가 된 인물이라고 한다. 뉴욕 유명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있으면서 수많은 요리사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논픽션 글쓰기 관련 석사 학위도 있다니 믿고 볼 수 있음. 간간이 심장을 후비는 주옥같은 단상도 있다. 단, 논픽션 전공자이다 보니, 어떤 문학적 감수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뭔가 느끼게 하는 게 많다. 삶에 자세, 직업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