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냥그릇 - 나를 찾아가는 먼 길
방현희 지음 / GenBook(젠북)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124쪽
사변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판별하고, 세상사를 읽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사변 너머, 논리 너머, 어느 순간 깨닫는 가운데 주어진다. 그것은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만 가능하다. 강이라는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오직 정직한 자와 거짓말쟁이를 가려내려는, 우리는 모두 눈먼 자들이다.
몇 페이지, 몇 권짜리 책보다, 한 장도 안 되는 짧은 이야기가 가슴에 박힐 때가 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미쳐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깨닫기도 한다. 뜻 깊은 순간, 뜻 깊은 이야기.
이 책운, 한 장 혹은 1~2장의 이야기가 묶인 책이다. 어렵지도 않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가져다,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눈으로만 이 책을 읽으면, 별로 감흥없이, 책 읽는 진도만 빠를 것이다. 이 책은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땐, 뭐에 그렇게 마음이 쫓겼는지, 눈으로만 읽어 내려갔다. 수도승과 관련한 수많은 일화들은,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만 들게 했지, 그냥 민숭민숭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느낌 없이 읽어나가다, 이렇게 읽으면 너무 남는 게 없을 것 같아, 괜찮은 이야기는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고, 다시 읽고도 참 괜찮다는 느낌이 들면, 그 부분만 따로 적어놓았다.
이렇게,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니, 뭔가 읽었다는 느낌을 받아, 뿌듯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책은 저자와 독자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잖은가( 정말?! -_-; 전자는 들어 봤어도.. ). 역시 내가 어떻게 읽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한 권의 책도 수권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겨 두었던 몇 몇 구절을 소개하자면,
147쪽
처음 의심했던 말도 여러 번, 여러 사람에게서 들으면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여러 사람의 똑같은 의견은 진실과 같다고 생각해 버린다. 내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내 스스로 사물의 핵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의견이 그토록 중요해져 버린다.
164쪽
- 세상을 휩쓰는 명성이나 권위는 발거벗겨 놓고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자기 이름 그대로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만 못하니 말이다.
183쪽
- 바쇼가 노래한다.
" 내 앞에 있는 사람들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얼굴들일세. "
280쪽 - 느끼기
수도승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느낍니까?"
수도승이 대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에 죽을지 어떨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다시 수도승에게 물었다.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수도승이 대답했다.
"그렇소. 그러나 그것을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진정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것처럼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는 필사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는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보는 것, 듣는 것을 참으로 느껴 보자. 단 한 순간만이라도.
발췌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다 다 옮길 수 없는 게 안타깝다. ^-^ 이 책을 읽을 때, 그리고 발췌할 땐 참 많이도 느꼈는데, 그래도 참 진심으로 느끼지 못했을까, 책을 보고 내 자신이 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 이런 책 살면서 두어권만 생겨도 참 행복한 사람이겠지만 ). 그래도 두고두고 발췌한 부분 다시 읽고 싶다. 자주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책 읽을 땐 조금이나마 느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