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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섬 - 주제 사라마구 철학동화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박기종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쾅쾅쾅
배 한 척만 주시오!!!
쾅쾅쾅
왕궁의 수많은 문 중의 하나인 <청문의 문> 앞에서 한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왕은 선물의 문 앞에서 간신배들이 바치는 선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배한척을 달라는 남자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은 그의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그 사람보다 더 아랫사람에게 아랫사람은 더 아랫사람에게 그의 청을 듣고 오라고 한다. 그러다가 문 주위를 청소하는 청소부한테까지 왕의 명령이 내려왔다. 그녀 밑으로는 더 이상 사람이 없어서 그녀가 그에게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묻는다. 왕이 와서 자신의 말을 직접 듣기 전까지는 <청원의 문> 앞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을거라 으름장을 놓는다.
이 나라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청원의 문>은 한 번에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고, 이 한 사람의 청원이 들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청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문앞에 들어 누워 있는 상태이니, 민심이 동요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왕은 <선물의 문>에서 물러나 <청원의 문>으로 간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원하는 것을 왜 바로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느냐?
남자는 첫번째 질문에만 대답한다.
배 한 척을 주시오.
그의 꿈은 미지의 섬을 찾는 것이다. 왕도, 백성도 모두 그에게 미지의 섬은 이제 더 이상 없다고 한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섬들은 지도에 다 있다고 말한다.
모든 섬들은 지도에 나와 있다.
지도에 나와 있는 것들은 이미 알려진 섬들이죠.
네가 찾고자 하는 미지의 섬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그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그 섬은 이미 미지의 섬이 아니지 않은가요?
옥신각식하다가 왕은 배를 줄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들끓는 민심에 왕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배를 한척 내어준다. 왕으로서의 명예를 세우고.
그는 배를 받았지만, 그와 함께 항해를 할 항해사도, 선원도 없다.
아무도 미지의 섬이 있을거라고 믿지 않으며,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왕궁 청소부인 한 여인만 그를 따라 나선다. 이제 배를 청소하면 되겠다고 하면서.
남자는 진정한 항해의 스승은 바다와 배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배를 받고 나니까 막막해졌다.
항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그녀가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날 밤,
안녕히 주무세요, 저는 이쪽으로 갈게요.
그럼 저는 이쪽으로 가죠. 내일 봅시다.
그 남자는 그날밤 꿈을 꾼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 남자도 많고, 여자도 많다. 언제 그 사람들이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고, 꿈은 항상 명확한 시작이 없으니까.
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씨앗, 과일 나무들도 있었다. 미지의 섬에 도착하는 날, 그것들을 옮겨 심을 생각이었다.
선원에게 묻는다. 미지의 섬에 도착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냐고.
하지만 선원은, 더이상 미지의 섬은 없다고 일침을 놓는다. 왕궁의 모든 지리학자들이 샅샅이 조사해 보았지만, 더이상 발견할 미지의 섬은 없다고 한다. 그와 나머지 사람들은 단지, 보다 더 나은 곳에서 살기 위해 이 배를 탔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섬을 발견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들이 내렸다. 하지만 그 외에 한 사람이 남았다. 그녀였다. 그리고 다른 꽃, 나무들도 남아있었다.
그 배가 바로, 미지의 섬이었다.
남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날 정오무렵, 그들은 배에 미지의 섬이라고 페인트를 칠하고 바다로 나갔다.
2
이 책을 읽고 내게 생각난 건 두가지다.
정현종 님의 <섬>이라는 시와 미하엘 엔데의 <긴 여행의 목표>였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섬이있다는 정현종 님의 시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모두들 하나의 섬이고, 서로 떨어져 서로 가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외롭다. 서로 이해하는 게 힘들다. 그러나 히말라야 산맥도 서로 다른 대륙과 대륙이 만나서 형성 되었다. 섬도 언제 다른 섬과 만날지 모른다. 외롭게 바다에 있던 두 섬이 만났다. 그래서 새로운 미지의 섬을 만든다. 외로이 있던 두 섬은 그와 그녀이다. 서로 잘 알지 못해서 더 끌리고, 더 애간장이 탄다. 모든 것이 더 <미지>스러워진다.
하지만 지금은 미지의 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미지의 섬도 언젠가 지도에 올라갈 테고 그러면 더 이상 미지의 섬이 될 수 없다. 그와 그녀가 만나 새로 만든 섬의 이름도 언젠가는 이름을 바꿔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다음에 생각난 미하엘 엔데의 <긴 여행의 목표>
주인공의 모든 것을 사로잡은 한 그림을 찾기 위해, 그 그림 자체가 된다.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지도에 아무것도 표시 되지 않은 곳, 즉 사람이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그 곳에가, 그를 매혹 시켰던 그 그림속 풍경 자체가 된다.
다른 사람이 일궈놓은 현실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찾지 못할 때,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미지의 섬>에서도 더이상 찾을 미지의 섬이 없을 때 그는 자신이 있는 배를 미지의 섬으로 만들었다. 꿈 자체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일궈냈다.
세상에 불가능한 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