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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3 : 세종·문종·단종 - 백성을 사랑한 사대부의 임금 ㅣ 조선왕조실록 3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한 나라의 왕조 역사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하나의 진리가 있다. 선대 왕이 지은 과보가 당시에는 꾹꾹 눌러져 억압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나 후대 왕을 덮친다는 것이다. 문제의 씨앗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며, 반드시 화가 일어난다. 역사가 슬프면서 흥미로운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이번에 3권이 나왔다. 1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이야기를 다뤘고, 2권은 태조의 아들인 정종과 태종 대의 이야기다. 따끈따끈 신간인 3권은 애민의 王인 세종과 비극적 부자(父子) 왕인 문종과 단종을 다루고 있다.
일단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 이덕일 씨가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역대 왕의 재임 시기에 있었던 중요한 일이나 왕의 스타일에 집중하고 있다. 책의 구성이나 서술이 '객관'보다 '주관'적이며, '기록' 자체보다는 기록에 대한 '해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이덕일 씨의 『조선왕조실록』은 교과서적인 정보와 지식 제공이 목적이 아니라, 저자가 선별한 주제와 내용에 대한 해석이다. E. H. 카 식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역사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고조선-현대사까지 국사 교과서를 한 바퀴 이상 읽어 어느 정도 조선 역사를 파악하고 있는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읽기에 좋다.
그럼 이제, 책 내용-
│세종│
세종이 오랫동안 왕세자였던 양녕대군을 제치고 조선의 네 번째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인 태종에게 절대 충성하고 문(文)을 좋아하며 어진 마음을 갖고 있었다. 태종을 닮기로는 세종보다 양녕대군이 더 닮았지만, 양녕대군은 이런저런 사고를 계속 쳤고, 무엇보다 태종에게 반항한 적이 있다. 그걸 두고 볼 태종인가. 그래서 태종은 세종을 선택했다. 왕세자가 아니었던 세종이 왕이 되었으니, 태종은 후대를 위해 다시 피를 보았는데 그 희생양은 태종의 사돈이자 세종의 장인 '심온'의 제거다. 당시 '심온'과 척을 두던 '박은'과도 그 뜻이 맞아 태종은 심온을 제거했다. 심온의 아내이자 세종의 장모는 천인 명부에 올랐다. 효성스러웠고, 어버이 뜻이라면 하늘의 뜻으로 아는 세종은 태종이 죽은 후에도 장모 천안 문제를 함부로 건들지 않았다. 그만큼 세종은 태종의 뜻을 따랐다. 세종이 이렇게 순종적이므로 태종이 양녕대군 아닌 세종을 후대 왕으로 택한 것일 듯.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세종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세종은 신분제를 중시한 왕으로, 사대부의 권익을 대변했다고 한다. 그 예로 <수령고소금지법>과 <종모법>을 들 수 있다. <수령고소금지법>은 백성이 고을 수령으로부터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든, 수령이 그 어떤 비리를 저질렀든 역모가 아니면 수령을 고소할 수 없는 법이다. 수령에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거나 송사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 해도 고소 금지다. 고소하면 고발인이 곤장을 맞거나 온갖 핍박을 받았다. 이 때문에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세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백성의 불만과 억울한 일이 끊이지 않자, 후에 개선되었지만 어쨌거나 구중궁궐에서 사대부의 책을 읽고, 사대부의 생각을 하고, 사대부가 옳다고 하는 왕으로 살던 세종은 백성의 권익과 괴리된 생각을 했다.
종모법도 마찬가지다. 태종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만들고, 세수 확장을 위해 <종부법>을 시행했다. <종부법>은 사대부에게 불리한 법이다. 대부분 결혼은 남자 양인- 여자 천민이 결혼했는데, 남자 신분을 따를 경우 자기 소유의 비가 낳은 아이들이 다 양인이 된다. 조선시대는 노비는 곧 재산이었으므로 사대부의 재산이 줄어드는 꼴이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태종이 죽고 세종이 왕이 되자 <종부법>에서 <종모법>으로 회귀를 주장했다. 세종은 사대부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상, 이 책에서 읽은 세종의 새로운 면이었다. 조선 애민의 왕이라 하면 세종이 떠오르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대의 한계는 이렇게 크다.
그래도 왕으로서 연륜을 쌓고, 학식이 깊어져 성군이 되었다. <수령고소금지법>도 탄력적으로 바꾸고, 글 못 읽어 억울한 일 당하는 어린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일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니까. 최고 권력자가 글 못 읽는 백성을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게 이 세상 역사에 세종 외에 한 번이라도 있었던 일이 있나.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동양 철학을 함축하고 있는지... 보통 성군이었다가 나이를 먹으면 졸군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종은 더욱 좋은 임금이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대단한지. 세종이 우리 역사에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참 좋아.
│문종, 단종│
물론 세종에게서 비극적 일의 시발점이 되는 일도 있었다. 병약한 왕세자를 대신해 둘째 아들을 너무 많이 활용했다. 꿍꿍이가 있는 신하를 의심할 줄 몰랐다. 수양대군이 왕이 될 마음을 언제부터 품었는지 모르겠으나, 한두 해에 걸쳤던 건 아닌 것 같다.
저자는 문종의 독살을 의심한다. 대놓고 독살이라고 하진 않지만, 문종 때 도승지 강맹경의 의뭉스러운 행동과 어의 전순의의 이해되지 않는 처방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하고 있다. (진짜, 진짜 그런 걸까. ㅠㅅㅠ)
문종은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종기)으로 죽었다. 잘못된 치료와 상극의 식이요법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문종의 죽음으로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단종이 왕으로 즉위했고, 나이에 비해 총명하고 지혜로웠지만 권세 있고 권력 있던 수양대군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문종과 단종의 비극은, 어쩌면 세종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나 싶다. 태종처럼 형제, 아들, 외척, 공신 불문하고 의심하고 길들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이, 이제 왕실에서 피를 끊겠다는 그 다짐이, 다시 피를 부른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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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래서 슬프고, 이래서 흥미로운가 보다.
조카의 피를 보고 왕이 된 세조 역시 그러하다. 과보는 기어코 새 생명을 얻어 다시 돌아온다.
다음, 『조선왕조실록 4』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