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마에노 울드 고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소장 : 문제! 전선에 작은 새 5마리가 앉아 있어요. 장전된 총알은 3발. 자, 몇 마리 죽일 수 있을까요?
나 : 물론 3마리죠.
소장 : 땡! 정답은 한 마리. 다른 새들은 첫 번째 총성을 듣고 다 도망쳤겠죠? 고타로, 기억해둬요. 이것이 자연이에요. 자연은 단순한 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자연을 이해할 수는 없죠. 자연을 아는 것은 연구자에게 있어 강점이 되니 앞으로도 열심히 야외 조사를 해보세요. 음하하하. 
나 : 아아아. 소장니이임.

마에노 울드 고타로,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해나무, 2018 (p. 213-215) 

굉장히 재밌는 책을 읽었다.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표지만 봐도 생기발랄하고 병맛이 느껴져 재밌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더더 재밌다. 이렇게 재밌게 읽은 책은 오랜만인 듯.

우선 저자 마에노 고타로는 메뚜기를 전공한 박사님이시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박사 인플레가 심각한 수준으로, 초고학력 박사님인 고타로는 실업자 신세가 될까 전전긍긍, 걱정이 태산만산이다. 어렸을 땐 '우리 아들, 커서 뭐가 될까 장관이 될까, 박사가 될까?' 따뜻한 목소리로 꿈을 물어봐 주고, 밥도 주고, 학교도 보내준 부모님이 있었지만 이제 다 큰 고타로는 부모님에게 기댈 수 없다. 스스로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성인이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전공은 곤충이고, 좁혀 들어가 '메뚜기'! 메뚜기 연구가 일본에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메뚜기 떼가 출몰해 일본의 논밭을 초토화시키면 모를까 그런 일은 일어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아프리카 모리타니 行이다.


'모리타니'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낯선 나라로 사하라 사막의 서쪽에 위치한다. 대서양을 면하고 있고, 아주 오래전에는 바닷속에 잠겨 있었던 터라 지금도 특정 지역에 가면 물고기 화석이나 소금을 발견할 수 있다. 종교는 국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이슬람교를 믿으며, 프랑스에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어 프랑스어와 고유어를 사용한다. (영어는 외국인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이나, 학력이 있는 사람만 사용하는 것 같다.)

가끔 아프리카에 메뚜기 떼가 등장해, 가뜩이나 아프리카의 없는 논밭을 초토화 시켰다는 뉴스가 뜨곤 한다. 해외, 그것도 아프리카 일이며 요즘에는 쉽게 보기 힘든 메뚜기에 관한 재난으로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뉴스로 접하지만 메뚜기 떼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메뚜기가 식물이란 식물은 모조리 먹어치워 대기근을 유발하기 때문이다(사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중국이나 특정지역에 간혹 메뚜기 떼가 출몰해 논밭을 갉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피해는 막심하나, 메뚜기 떼와 관련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지라 우리의 '마에노 고타로' 씨가 두 발 벋고 나섰다. (그리고 직장도 얻어 생계를 유지할 생각으로!)

이런 걸 틈새 공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사후 과정을 꼽는 연구실은 있으나, 뽑는 사람이 매우 적다. 또 연구원으로 뽑혔다고 해도 2~5년의 단기 비정규직이라 기간이 지나면 또 연구실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해야 한다. 아주 운이 좋아서 유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지만, 그러기 쉽지 않고 설사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다고 해도 그 논문이 직장과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실험실을 박차고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실 메뚜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 안정된 환경에 극도로 조절된 실험실 내에서 메뚜기를 연구한다. 이런 연구도 의미는 있지만, 실상 사람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굶어죽게 하는 메뚜기 떼 문제 해결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메뚜기 뒷다리 근육의 이완과 수축' 뭐 이런 연구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메뚜기 떼 소탕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래서 고타로 씨는 실제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다. 사실 현장에서의 메뚜기 연구는 거의 진척이 없는 수준이라, 아주 작은 발견도 학회에 보고 되지 않은 귀중한 발견이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타로 씨는 울고 웃으며, 전갈에 찔리고 메뚜기에 배반당하며 귀여운 야생 고슴도치를 키우며 벼룩에게 뒤덮이는 일을 겪는 동안에도 메뚜기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해낸다. 이 과정이 참 재밌고, 유익하다.

책 표지 사진 등 얼핏 보면 저자가 실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곤충학자로서 통찰력이 있고, 사고방식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다. 웃고 잊는 재미가 아니라 이 책엔 '유익함'이 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돌파할지, 과학적 논리로 충분히 해결 가능함을 또 깨달았다(초록색 옷을 입고 있으면 메뚜기들이 식물로 착각해 옷을 다 뜯어먹는다는 가설까지 입증하기 위해 실제로 해본다. 웃기기도 하지만, 참 멋있지 않은가. 또한 과학적이다. 실험이니까).

이 책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현장 과학자의 고분분투기일 수 있고, 파브르 곤충기를 읽은 소년이 꿈을 이루는 이야기일 수 있으며, 아프리카 체류담일 수 있고, 고학력 비정규직의 피눈물 나는 노력담이기도 하다(마지막에 그는 그의 꿈 대부분 성취한다). 또 과학자의 재밌는 에세이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저자의 글 솜씨와 재치이며, 사고방식이 상당히 긍정적이고 뒤끝 없어서 읽는 내내 나도 유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기운이 팍팍 느껴진다. 뭔가 생각하고 목표한 바 있으면 미적거리지 않고 바로 행동하는 모습도 멋있고, 여러모로 상당히 좋게 읽었다.

또 우리에게 나오지 않는 노벨수상자가 왜 일본에는 많이 나오는지도 생각했다. 일본도 연구 환경이 열악한 건 매한가지인데(물론 우리보다 좋겠지만), 연구자의 무리 속에 메뚜기에 미쳐, 연구 대상에 미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연구자들이 있다. 일본에서도 처음엔 그런 사람들을 비웃지만, 그 사람이 성과를 내거나 성과를 비록 내지 못했어도 정말 열정적인 면이 보이면 비웃음을 거두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는 건 연구자의 몫이다. 연구자는 주위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다. 이것이 노벨수상자를 다량 배출한 일본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보며 느꼈다. 비정규직 가난뱅이 메뚜기 박사후 과정이지만, 그의 메뚜기에 대한 사랑, 그 열정 덕분에 모든 일이 잘 풀렸고(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실험실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소중한 발견을 했다. 그런 저자의 열정이 부러웠고, 새삼 일본이 왜 과학 강국인지 깨달았다.

이 책, 정말 정말 강추한다.

목표란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목표가 있고 없고에 따라 하루하루의 충실감이 전혀 다르다. 느닷없이 '아프리카의 메뚜기 문제 해결' 같은 아득한 목표를 세운 날은 안정이 되지 않았다. 정리하기 쉬운 것부터 순서대로 형태를 잡아가며 완성의 기쁨을 맛보고, 흥이 오르면 다음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에 도전해가는 작전을 선택했다. 에구구, 내가 내 비위를 맞추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구나. 

소설가들은 전원 정취가 풍기는 여관에 틀어박혀 책을 쓴다고 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차 없는 격리 환경이 갖춰져 있다. 잡음에 현혹될 일 없이 집중해서 책을 써나갈 수 있다. 

마에노 울드 고타로,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해나무, 2018 (p. 229)

더하기> 이 책을 읽으면 우리에게 낯선 '모리타니'의 문화도 조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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