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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서사 -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천정환.정종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머리말과 서설을 읽고 '이 책, 내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읽다 보니 빠져든다. 가독성도 높고, 책의 내용도 흥미 있고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우리 현대사와 책, 독서에 관심 있는 분들께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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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945년 해방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 독서사를 다루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독서' 부분만 톡 떼어 다룬 미시사(微視史)인 것. 책은 해방과 한국전쟁 때까지 이 5년을 빼고는 10년 단위로 장을 나누고 그 시기의 시대적 분위기와 사람들이 많이 읽었던 책이나 특기할 만한 책과 잡지, 작가를 다루며 그 시대를 진단한다.

『대한민국 독서사』는 각 시기마다 사람들이 읽었던 책들이 그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었음을 보여준다.
또 지금도 유유히 내려오고 있는 그 무엇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전설의 전혜린' 글 부분이었다. 나도 대학생 때 전혜린의 책을 접하고 그녀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물론이고 다른 책도 읽고 다른 독일 작가의 책들에 푹 빠져 살았다. 또 전혜린의 어느 에세이에서 접한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한 글을 읽고 사강의 책들도 모조리 다 읽었다. 암튼 그 시절, 나에게 전혜린의 영향력은 참 막강했는데 이게 나만 겪은 일이 아닌가 보다. 『대한민국 독서사』를 읽고 전혜린 신드롬이 1960년부터 있덨던 걸 알게 됐다. 독서를 꾸준히 하는 사람에겐, 어느 정도 전혜린이 자극이 된다. 선망의 대상이랄 수도 있고 모델이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도 전혜린은 여전히 '개인주의나 여성주의적 해방의 어떤 아련한 표징이기도' 한가 보다. '읽고 쓰는 지적 여성'의 상징.
20세기 들어 전 세계 어느 나라고 격변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다. 제1차 세계대전만 해도 유럽 내에 국한된 전쟁이었지만(넓게 봐서 미국까지), 식민지 확장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묶여버렸다. 각 나라별로 따로 돌아가던 역사의 바늘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제사나 정치사는 비슷한 역사와 환경의 나라끼리 묶어서 설명 가능하다. 깊이 파고들면,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보여도 그래도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독서사는 경제사와 정치사와 달리 상당히 지역적이다. 어느 정도 다른 나라와 영향을 주고받긴 하지만 독서 시장 자체가 한 나라 안에서 형성되고 언어와 문화, 성향의 차이가 독서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시대 생산된 거의 모든 것들이 다른 나라와 재빨리 동조화되지만, 아직 책은 다른 것에 비해 나라별 독자성이 강하다. 그래서 독서사는 다른 나라와 쉽게 묶을 수 없다. (물론 독서시장도 다른 나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나라는 영향을 주기보다 아직 영향을 받는 쪽이지만)
'독서'라는 한 분야로 우리 현대사와 우리 시대를 읽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상당히 흥미롭고, 기준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 역사에 접근 가능하다. 또, 모르는 책이나 잡지도 많지만, 제목과 이름은 익히 들어본 책과 작가가 많아서 이 고유명사가 끈이 되어 흥미를 돋우고, 교양을 쌓았다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유익함.
다만, 객관적 사실만 열거한 역사책이 아니고, 부분부분 저자의 가치판단도 있기 때문에 저자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또한 우리 역사(좁게는 독서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