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이 '노마디스트' 삶에 중심을 두고 쓰인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노마디스트'보다는 '일'과 '깨달음'에 집중되어 있고, '에세이'보다는 본인의 지난 삶을 요약한 '자서전'에 가깝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소개서를 읽는 느낌이다. 아마, 뉴욕에서 오랫동안 금융계에 일하며 이력을 자주 업데이트하고, 헤드헌터나 채용 담당자와 했을 그 많은 인터뷰 때문에 어느 정도 저자의 인생을 말할 때 어떤 패턴이 있는 것 같다. 그 느낌이 글로 느껴진다. 특히 회사 동료들이 응원해주고, 많이 도와주었다는 글에서 인터뷰 용 말이라는 걸 느꼈다.
전반적인 문체나 주위 사람들,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전형화된 표현만 없다면, 저자의 인생은 많이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며 재밌다. 특히 뉴욕에 처음 도착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재밌었다. 한국에서 부친 짐이 항구에 도착해 간단히 짐가방 두 개만 들고 항구에 나갔는데 어마무시하게 큰 박스로 도착해서 기겁했다는 이야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그 길로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천우신조인지 한글이 적힌 트럭이 지나가(미국 고속도로에 한글이 적힌 트럭을 마주칠 확률이 과연 얼마일까), 손을 흔들어 트럭을 세우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에 그분의 트럭에 싣고 갔다는 이야기는 진짜 드라마틱 하고 재밌었다.
그 외에는 책 대부분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를 따고, 노력해서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 기업에 취업해서 동료들에게도 상사들에게도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벌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몇 번의 깨달음으로, 미래를 몇 차례 수정하고, 여행을 하면서 꿈을 키우고, 직장을 그만둔 후 영국으로 가 동아시아 역사 학위를 땄다는 것으로 끝난다.
실제로 저자를 만나서 본인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재밌을 것 같다. 말도 잘 하실 것 같고,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답게 자신만만함과 여유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책에서는 이런 느낌을 잘 받을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노마디스트'에 중심을 둔 에세이도 아니고, 자서전이나 본인의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절의 회고록도 아니어서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었다. 또 인생의 변곡점마다 저자의 깨달음도 나오지만, 이 깨달음이 자기계발서 느낌으로 다가와 가슴에 크게 와닿지 않은 것도 있다.
나 개인적으로 이소은의 『딴따라 소녀 로스쿨 가다』나, 홍정욱의 『7막 7장』 같은 책을 좋아해, 이 책도 외국에서 치열하게 공부한 이야기, 외국 금융 업계에서 자리 잡고 목표한 바 성취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썼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좀 빈약한데,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에 관심이 많으니까 다음번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
아무튼 저자는 인생의 이야깃거리가 많은 분이고, 책은 잘만 다듬으면 더 좋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다채로운 경험,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참 흥미롭고 재밌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