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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가로질러 - 밤, 잠, 꿈, 욕망, 어둠에 대하여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오랫동안 밤을 잊고 살았다. 매일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오고, 설사 저녁이나 밤에 집에 오더라도 차를 타고 대화를 하며 집에 도착하니까 밤을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낮이 아닌, 늦은 시각이라는 건 알지만, '아, 밤이구나' '어둠이 보이네'라고 인식한 건 정말로 오래되었다. 밤이 되어도, 언제나 밝은 빛 아래 있기 때문에 밤을 잊고 살았다.
밤을 인식할 땐 늦은 오후에 잠시 뒷산에 가거나, 낚시를 하러 갔을 때다. 한창 낚시 다닐 때 보통 오후 3~4시에 갔다. 한낮에는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눈도 부시고, 얼마 안 있어 몸도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늦은 오후에 가서 2~3시간만 낚시하다 오면 딱 좋았다. 계절에 따라 해지는 시간에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일단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면 짐을 싸기 시작한다. 왜냐면 해는 상당히 빨리 움직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실제로는 지구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자전하는 것이지만). 마음이 조급해져 노을을 즐기고 할 시간이 없다. 짐을 다 챙겨서 차에 도착하면, 노을은 어디 가고 없고 하늘은 어슴푸레해진다. 근처 화장실에 가 손 씻고 차에 시동을 건 후, 차를 출발시킬 때면 해는 완전히 사라지고, 어슴푸레함도 점점 사라지며 밤의 색이 뚜렷해진다.
프랑스 말로 해가 져 어두워지는 것을 La nuit tombe라고 하는데, 직역하자면 밤이 내리다/어둠이 내리다의 뜻이다. 그 말대로, 시나브로 하늘에서 어둠이 내린다. 어두워지는 모습은 매번 봐도 장관이고, 아름답다. 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출발할 땐, 그래서 항상 차분한 행복을 느끼곤 했다. 묘하게 설레고, 묘하게 안도감 드는 것이 내가 마치 어떤 사치를 누리는 것 같았다. 사치는 비싼 것, 귀한 것을 손에 넣고, 누릴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해가 뜨고, 점점 밝아지는 순간도 무척 좋아해 예전엔 일부러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서, 점점 밝아지고 세상 속에서 걷곤 했다. 이것과 저것의 경계 그 사이에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속에 있다 보면 이것과 저것의 경계란 결국 없다는 걸 깨닫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밤을 잊고 살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일상에서 누린 작은 기분 좋은 사치를 잊고 살았단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밤은 없고 언제나 낮만 이어진 것 같다. 물론 매일 해진 저녁에 근처 공원에서 운동을 하지만, 너무 밝고 수많은 사람들로 그곳은 낮의 연장일 뿐 내가 밤 속에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이 책은, 한동안 내가 잊고 밤을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은 '밤'에 관한 여러 지식을 담은 책인데 서정적이기보단, 과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 내 정신을 또릿또릿하게 해주지만 과학적 이야기 외에 밤의 어두운 면이나 옛날 사람들이 가졌던 밤에 대한 미신, 두려움,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새삼 내가 알던 밤이 떠오르는 것이다. 밤 세계의 여러 조각들.
늘 '빛에서 빛으로' 이동하며 안전한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밤을 잊은 지 오래지만, 밤을 잊고서는 안식이나 평온, 행복은 없으리라 본다. 요즘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이 세계적으로 주요 화두다. 북유럽 사람들이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건 밤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직접적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서정적이기보다 과학적이고, 박학한 지식을 다루는데 이런 지식을 읽다 보니 책 속 지식보다도 잊고 있던 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보다는 감각, 이성보다는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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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어둠은 낮의 밝음을 통해 비로소 명확해지므로 낮과 밤의 상호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 119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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