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임진왜란 때 조선에 쳐들어 왔다가 귀화한 '사야가'의 이야기. 

사야가는 일본 장수로 조선에 침입한 지 얼마 안 되어 조선에 귀화했다. 조총과 화약에 통달했고 조선에 조총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귀화 후 왜군과 벌인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나중에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사야가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김충선'이란 이름은 낯익고 간질간질 생각이 날 듯 말듯해서 궁금증에 이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사야가는 조선에서 태어난 조선인이다. 조선 이름은 김석운. 김석운이 태어났을 때 조정의 당쟁이 극에 치달았고, 피비린내 나는 사화가 일어난다. 사화 속에서 김석운의 집안은 몰락하고, 갓난아기였던 김석운만 구사일생 살아남아, 일본의 장사치의 손에 건네진 후 왜군 용병 장수, 겐카쿠의 집에 팔려 간다. 

겐카쿠는 소위 전쟁고아들을 거둬 병사로 키우고, 용병 일을 수주받아 먹고사는 집안이었다.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는 용병이라지만, 겐카쿠는 돈보다 오다 노부나가와의 유대 관계를 중시해 그의 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겐카쿠의 집에서, 김석운은 '석(石)이라는 글자를 따서 '히로(사야가)'라는 일본식 이름을 갖게 된다. 히로는 겐카쿠의 용병 집단에서, '조선인'이라며 멸시를 받고 괴롭힘당한다. 그러나 히로는 일본 여인의 손에서 길러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상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천식 때문에 어린 시절 몸이 약했고, 동료 아이들과 갈등을 곧잘 빚던 히로는, 어느 날 겐카쿠가 출정을 떠날 때 그의 딸 아츠카를 호위하는 일을 맡게 된다. 아츠카와 히로는 작은 일상을 나누고, 공연을 보며 정을 쌓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히로는 몸은 약했지만 머리는 총명한 아이로, 포도국(포르투칼) 사람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조총에 대한 지식을 쌓고 포도국 말을 익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히로는 어린 나이에 일본 최고의 조총 전문가가 되었고, 조총에 적합한 전술을 개발한다. 히로의 전술과 히로가 개량한 조총 덕분에 오다 노부나가는 여러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뒀고, 오다 노부나가가 승리할 때마다 히로의 이름도 일본 열도에 퍼진다. 

히로를 탐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히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히로는 돈이나 지위보다 '아츠카'가 제일 소중했기 때문에 히데요시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고, 그러자 히데요시는 히로의 주변 사람들을 파괴한다. 우선 양아버지라 해도 상관없을 겐카쿠를 죽였고, 그다음 히로의 연인, '아츠카'를 인질로 삼는다. 히로는 히데요시의 인질이 된 '아츠카'를 위해 그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참전한다.

히로는 고향인 조선에서, 왜군들이 벌이는 살육에 괴로워 하지만 아츠카와 만날 날을 위해 묵묵히 전투에 임한다. 그러다 어느 날 히데요시로부터 밀명이 떨어지고, 그 밀명을 완수하기 위해 히로는 몸을 움직인다. 

책은 두껍지만 흥미진진한 전개로 빨리 읽힌다. 소설이지만, '과연 그럴 듯하다'라는 생각도 들고 우여곡절 끝에 히로처럼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이 많겠다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제일 흥미로웠던 건 조선과 일본의 차이. 나는 우리와 일본이 상당히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역랑』을 읽고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히로는 일본과 조선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성이 함락되면 성주는 할복하고 성에 사는 주민은 항복하여 해당 지역이 평정되는 것이 전쟁의 기본 방식이었는데 조선은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각지에서는 백성이 저항했다. 이것이 고려 시대까지 올라가는데 현종, 고종, 공민왕도 이러한 방식으로 불리한 형편을 타개했었다. 조선 백성에게는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일본군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백성이 정복자에 대항하는 실정에도 충격받았다. 일본에서 백성이란 단순히 거주를 이전하는 자유도 없는 영지에 부속된 농노나 전리품일 뿐이었다. 일본은 이런 차이를 모른 채 정복한 조선에서 보급과 급료 등의 비용을 충당할 예정이었으므로 기본 계획에 큰 차질을 빚고 말았다. (- 305~306쪽)

이 구절을 읽고 '하아!' 감탄사를 냈다. 과연!

이 땅의 유서 깊은 '지도자의 비겁함'은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이어져,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다리를 끊고 도망간 일이 떠오른다(다리 끊지 말고, 비겁함을 끊으라고!!). 


오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이에야스를 우리 국사 책에서만 접하고, 따로 일본 역사 책이나 역사 소설은 접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일본 전국시대 말기, 이 세 사람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조선에서의 전투 장면은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접했는지라 여전히 숨통 막혔지만, 의병이 일어나고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시작되자 뭔가 유쾌, 통쾌, 상쾌해졌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잘 읽었다. 다만,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역사 소설로 실제 역사와 저자의 상상은 독자가 구분해야 하고, 온전한 사실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다소 떨어진다. 우리 역사의 치부가 나오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이럴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전투 장면은 사실, 글로 묘사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만 더 잘 써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어렸을 때 읽은 초한지나 삼국지, 뭐 이런 소설에 길들어져서 일랑가요?!) 그리고 히로가 조선에 대해 왜 매력을 느끼는지, 그에 대한 이유도 약하다. 조선 땅에 건너와 도인 같은 사람이든 아주 인상적인 사람을 만나 감화된 부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비슷한 설정을 저자가 한 것 같기도 한데,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 


아쉬움은 있지만, 재밌게 잘 읽었고 영화로 제작하기에 좋은 소설 같다. 시나리오 원작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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