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다. 다만, 처음엔 두려움이 들다가 점점 익숙해져 편안한데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심적 압박에 조급함, 죄책감이 든다. 어쨌든 고도로 분업화된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어떻게든 살 수 있지만(분업화된 자본주의기 때문에 가능), 결코 아무것도 안 하기란  힘들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혼자 벗어나 살 순 없기 때문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고 말했던 장면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학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며 가만히 서 있던 학생이었다. (우앗, 멋있어. 생각도 못 했는데!) 오래전에 본 영화로 많은 장면이 기억 속에 잊히고 사라졌는데, 그래도 딴 건 다 잊어도 이 장면은 잊지 못하겠다(아, 그렇다고 해도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간 건 잊을 수 없죠). 그때까지 내가 갖고 있던 하나의 편견, 고정된 생각을 깨준 장면이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항상 안고 사는 것 같다. 불안해 보이는 사람도 그렇고, 자기 일에 매진하는 사람도, 뭔가 태평스러워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안이 있다. 왜 모두 불안을 갖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이 불안은 현대인의 규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 지 오래. (이 불안을 오래전에 제대로 통찰한 사람이 프란츠 카프카와 뭉크가 아닐까 싶다)


좋은 것도 아니고, 우릴 억압하는 '불안'을 왜 가져야 하는지.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대중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잊은 채 대중이 움직이는 흐름과 물결에 떠밀려 살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익명의 불특정 다수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본인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 이런 영향은 어느 순간에, 버거움과 강박증으로 드러난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쓴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저자가 일상에서 느꼈던 '감정의 불편'과 그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생각, 그리고 깨달음이 쓰여있다. 


그리고 이 책을 관통해서, 저자가 다소 방어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도 든 생각인데 결국에 인생은 '자기 자신과 자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궁극적인 우리의 목표. 우리가 느끼는 불안함,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불편은 '내 마음과 내 행동' 혹은 '나 자신과 내가 놓인 환경'의 <괴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말이 불편한 건, '내가 바라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의 괴리에서 오는 당혹감, 속상함인 것 같다. 근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우리가 어떻게 손써 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그나마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바로 나 자신. 나를 '내가 원하는 나'로 조금씩 바꿔가며 일치시키는 수밖에 없다. (뭐, 종교적으로 말하면 '합일'이랄 끄나) 남에 대한 마음, 남에 대한 섭섭함을 백날 생각해봤자, 바뀌는 건 없고 늘어나는 건 타인에 대한 미움과 자괴감, 무력감 뿐이다. 페르소나, 즉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생각'보다는'믿음'의 문제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사르트르인데,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자기가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있겠지, 하지만 사르트르는 이 고통을 실제로 느끼기보다 외할아버지와 누나 같던 엄마에게 보여 준 '고통을 감내하는 연기'에 가까웠고, 이런 연기가 그의 인생을 관통했다고 봤다. 그는 페르소나에 짓눌리기 보다 페르소나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세상과 삶을 보다 흥미롭고 재밌게, 그리고 용감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고 크게 별일도 없으니, 자유자재로 자신을 연기해도 된다는 말이다. 이는 능동성이다. 이 능동성이 우리를 자유케하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본인을 단단하게 만든다. 


다음 책에서는 좀 더 가벼워진 모습, 팔을 휙휙 흔들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저자를 만나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