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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평점 :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고 류시화 님 이름만 보고 읽은 책. (시화 님, 요즘 잘 지내시는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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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난 후 인내심을 가지고 인간이 삶의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길 바랐다. 신은 인간이 삶의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마을과 도시를 세우고, 예술을 창조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고 기뻤다.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신은 기대했다. 하지만 인간은 점점 신의 기대와 어긋나게, 삶의 기쁨을 잊고, 삶에서 배우지 못하며, 지혜로워지기보다는 어리석어지는 인간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신은 한 천사에게 지혜로운 인간 영혼을 모아, 여러 도시들에 골고루 흩어져 살도록 시켰다. 또 다른 천사에겐 어리석은 영혼을 모두 자루에 담아 신의 앞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지혜로운 영혼을 모으는 일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세상에 어리석은 영혼은 너무나 많아 그만 그 영혼을 담은 자루가 찢어지고 말았다. 그 자루 속에 담긴 어리석은 영혼들은 땅으로 떨어졌고 그들이 덜어진 곳은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이었다.
신은 이미 어찌할 수 없다며, 어리석은 영혼들이 모여 무슨 일을 할지 지켜보자고 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헤움'에 모여 살게 되었다. 그들은 그곳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었고, 각기 비슷한 지혜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 '헤움'을 <현자들의 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책은 현자들의 마을인 '헤움'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적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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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움'에 관한 전설(?)은 19세기 폴란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읽다 보면 '탈무드'의 바보 버전의 책 같다. 탈무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쓰이고 있는 책으로서 '헤움'의 바보들의 이야기 역시 19세기 탄생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쓰이고 있다. 류시화 씨도 한몫하심. 지인(레나타 체칼스카)이 보내준 '헤움'의 이야기를 한 편, 한 편씩 읽다 보니 빠져들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모아 번역해서 책으로 내셨다. 번역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류시화 씨가 직접 만든 이야기도 있다. 일단, '헤움'이 배경이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적는다면 누구나 이 『인생 우화』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우화다. 우화(寓話)인데, 이 우화를 '어리석음의 이야기'라는 뜻인 우화(愚話)로 바꿔 쓸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헤움' 사람들을 바보라 여기고, 웃고 비웃는다.
그러데 '헤움' 사람들이 정말로 바보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볼 땐 전혀 바보스럽지 않았다. 마을에 무슨 변고가 생기면 헤움 사람들은 아무런 해결도 하지 않은 채 이름만 바꿔 부르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일견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지.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혀 어리석지 않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렇게 이름이라도 바꿔서 근심 걱정을 덜어내고 스트레스받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겠냐 싶어서. (햐, 나도 바보에다 어리석은 사람이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책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도, 어리석은 가난뱅이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 부자들 이야기이고, 우리가 익히 아는 가난뱅이들의 이야기다.
또한 '헤움' 사람들이 정의를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사기꾼에게 당해 큰돈을 주고 사온 썩은 생선 이야기가 있다. 멀리까지 가서 정의를 아주 비싸게 사 왔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고약한 생선 썩은 내가 난다. 그러므로 헤움 사람들은 정의란 썩은 내가 나는 것으로 정의한다. 나도 동의한다. 정의는 힘 있는 자가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헤움'에 시인이 한 명도 없자, 다른 도시들처럼 시인이 있어야 한다며 모두 시를 적어 제출하는데 이를 보고 그들은 결론을 내린다. 알고 봤더니 '헤움'에 시인이 없었던 게 아니라 모두가 시인이었다고. 이런 사고방식도 좋다.
'헤움'은 유대인들의 마을인데, 그래서 랍비도 있다. 또 의회도 있다. '헤움'에 무슨 자그마한 일만 있어도 사람들이 의회로 몰려들어 토론한다. 7일 동안 토론한 끝에 결론을 내리고 혹은 결론이 나지 않으면 또 토론을 해서 기어코 결론을 낸다. 이런 식으로 마을의 모든 일을 해결해 낸다.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고,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 같지만 유대인들이기에 인정!
예전에 리처드 파인만이 어느 엘리베이터에서 유대인과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온 버튼을 보고, 전기는 불인가 불이 아닌가를 두고 갑론을박했다던 이야기. 리처드 파이만이 보기에 그들은 정말로 어리석은 '헤움' 사람들이었을 거다.
'헤움' 사람들을 바보라고, 어리석다고 생각하기엔 지금 우리 세상도 별반 나을 게 없다. 반대로 '헤움'이 여기보다 더 아늑하고, 조용하며, 살기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학살과 전쟁, 다툼, 질투, 온갖 범죄들이 있는 곳보다 헤움의 어리석음이 훨씬 평화롭고,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나의 생각이 류시화 씨의 의도와 맞는지 어긋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잔인함과 몰인정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음이 낫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