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낙관주의자 - 심플하고 유능하게 사는 법에 대하여
옌스 바이드너 지음, 이지윤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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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멋있어서 읽은 책. 특히 '낙관주의자'보다 '지적인'이란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독일어의 a도 몰라서 구글 번역기랑 네이버 파파고를 돌려보니 이 책의 원제(Optimismus warum manche weiter kommen als andere)의 뜻이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아닌 게 확실하다. 원제의 뜻은 '낙관주의자들은 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나'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다(몰라몰라, 대충 그런 듯하다). 책의 구성은 원제에 충실한데 이 말인즉슨,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이 책의 중심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책의 구성│

먼저 낙관주의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chapter1)하고, 여러 종류의 낙관주의자들을 고찰(chapter2)한다. 그다음 낙관주의자에 대해 좀 더 깊은 설명(chapter3)을 하고, 이상 비관론자들이 왜 자신은 낙관론자로 태어나지 않았는지 비관할까 봐(아마도...) 낙관주의자들도 태어날 때부터 낙관주의자였던 건 아니라는 설명을 한다(chapter4 ; 3단계의 사회화).  이후 낙관주의자가 되기 위한 학습 방법과 태도,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일러준다(chapter 5, 6, 7).



│느낀 점│
이 세상은 현재 76억 명으로 채워져 있고, 이 76억 명을 성격별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눈다면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낙관주의자들을 몇 개의 소그룹으로 잘게 쪼갤 수 있는데 가령, 이 책의 저자처럼 목적 낙관주의자(비참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낙관론자) / 순진한 낙관주의자(대체적으로 항상 세상이 아름다운 낙관론자) / 숨은 낙관주의자(최악을 가정하고 작은 행복에 안주하는 낙관론자) / 이타적 낙관주의자(모두의 안녕과 공동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낙관론자) / 지적인 낙관주의자(기회와 한계를 알고 최상의 미래를 그리며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는 낙관론자)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존재는 이렇게 나누려고 하면 얼마든지 분류하고 나눌 수 있겠지만, 인간은 너무나 다채로운 존재라서 항상 정해 놓은 설명과 개념을 벗어나기 일쑤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하는 윈스턴 처칠의 경우, 처칠은 낙관적인 면도 충분히 많이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가 볼 때 처칠은 고집불통이면서 능구렁이 같은 면도 있었고, 자기가 영국 총리를 맡지 않으면 영국은 곧장 쇠퇴할 거란 염세주의적인 면도 있었다. 처칠은 어떻게 보면 자신감 넘치는 낙관주의자인데, 어떻게 보면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했다가 다시 위축되는 존재다. 저자가 설명한 것과 달리, 인간은 3차 사회화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갱년기 이후 변화되는 점은 고려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특히 노년기로 접어들면 눈물도 많아지고, 개인차가 있긴 하나 세상을 보수적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위에 예로든 처칠이 가장 적합한 예. 많아지는 걱정, 곧잘 느끼는 위기감, 자주 쏟아지는 눈물. 

그래도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비관주의자. 특히 투덜이꾼에,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누군가 만들어 낸 것을 할퀴고 짓밟는 자들, 험담하는 자들,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지는 자들... 사회생활하면서 정말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트레스받아 이들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믿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 인생인데, 그들에게 내 마음과 신경이 붙들려 머물 순 없는 것이다. 타고난 낙관주의자로 태어났다면 좋았겠지만, 보통은 여러 번에 걸친 부정적인 기억(1~3차 사회화 기간 동안) 때문에 소심한 비관론자가 되기 싶다. 어쨌거나 더 나은 삶,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이 책에 소개한 대로 노력해서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이 좋다(chapter 5~7에서 소개). 

이 책을 읽고 떠오른 한 인물, 사르트르. 그가 쓴 한 구절을 옮겨 본다. 

나는 내 생애가 행복하게 끝나리라고 미리 단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뜻밖의 일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덫에 불과하며, 새로운 일이라는 것도 외관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의 요구가 나를 이 세상에 탄생케 함으로써 모든 것을 작정해 놓았으니 말이다. (...) 다시 말하면, 나는 어떤 사태에도, 또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종말의 질서를 간직해 나갔다. 나는 나의 죽음을 통해서 내 삶을 바라보았다. 내가 보는 것은 무엇 하나 더는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꽉 닫힌 기억뿐이었다. 
- 사르트르, 『말』, 민음사 / p.249

사르트르야말로, 이 책의 저자 '옌스 바이드너'가 말하는 '지적인 낙관주의자'의 대표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있고, 그 속에서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어쨌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 각자의 노력 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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