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저. 재밌다. 웃으며 읽었다. 내 개그(?!) 코드와 너무나도 딱 맞는 책. 책 제목이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라서 노트와 펜을 꺼내 진지하게 필사하고 메모해야 할 것 같지만, 꼭 그럴 필요 있을까 싶다. 공부는 재밌게 해야 한다. 문학 작품이라는 게 그렇다. 꼭 진지할 필요가 없다. 뭐, 진지하게 궁리하고 생각해야 할 땐 그렇게 해야 하지만, 고대 작품은 그 작품을 쓴 사람과 현대인은 생각도 다르고, 믿음도 다르기에 무조건 진지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 책의 저술 의도는 이런 나의 생각과 다를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
중학생 때가 기억난다. 중학교 1학년 때도 참말 재밌게 학교 다녔지만, 2학년 때랑 3학년 때가 학교 다닐 맛이 났었다. 공부가 재미있었을 리는 없었고, 그냥저냥 보통이었다. 그런데 내 단짝이랑 2년간 짝지를 했었다. 짝지는 나랑 개그 코드가 똑같아서 등교했을 때부터 수업시간, 하교 때까지 어느 순간도 즐겁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둘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코드가 비슷했고 잘 통했다. 친구는 당시 미술 학원을 다녔다. 커서 대학도 미대(도예 전공)로 진학한 만큼 이미지로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나 역시 문자보다는 이미지에 강하다. 둘 다 진지한 문학소녀는 아니었던 것. 교과서를 펼치면 글보다는 그림이 눈에 띄고, 글을 읽어도 재미난 상상을 했다. 교과서 바로 우리의 놀이터였고, 우리에게 상상의 도화지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능력을 키우지만, 반대로 학교 교육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던 소중한 능력들을 잃기도 한다. 나는 ‘주입식 교육 때문에~’, ‘대학 입시 교육 미명 아래~’ 뭐 이런 흔하디흔한 비판을 싫어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진지하게 받는 교육은, 어린 시절 갖고 있던 훌륭한 스토리텔링 능력과 상상력을 감퇴시킨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실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친구와 나에게는 교과서 그림이나, 문구들이 하나같이 재밌어 보였다. 아마 혼자 봤더라면 시시했겠지. 나와 그 친구의 실없는 상상과 이야기가 서로 코드가 맞았기에 진심으로 웃었고, 상대방이 진심으로 웃는다는 것에 고무되어 더 즐겁고 재미났는지도 모르겠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 하나하나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소재였다. 교과서 속 여러 요소들을 비틀고, 연결하고, 끊어버리고. 재밌고 웃겼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과 닮은, 창조 행위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니까, 이제는 정말 옛날이 된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교과서 실린 그림 하나하나가 다 재미난 이야깃거리였고, 상상의 소재가 되었던 그때가... 그 친구와 이 책을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함께 읽는다면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또 재미난 이야기겠지. 유쾌하고 많이 즐거웠다. 이 책은 중학생 그때로 데려다준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책이었다.
책은 고전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전설이나, 설화가 쉽게 풀어 적혀 있고, 그 옆에 세밀화 삽화가 실려 있다. 대략, 이런 그림. 음, 옛날 교과서 그림도 물씬 느껴지고, 민속촌이나 박물관에 곁들여진 그림 같기도 하다. 박물관의 밀랍 인형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재밌다. 음, 진지해서 웃기달까. 웃긴데 진지해서 더 웃기달까.
/ 유리왕, 「황조가」

유리왕, 부들부들
동명왕의 아들, 고구려의 두 번째 왕!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 대단하신 왕이지만, 부인들 간의 싸움에는 한없이 약하디약한 남자다. 유리왕에는 고구려 출신 부인 '화희'와 한나라 출신 '치희'라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유리왕이 사냥 간 사이에 둘은 싸웠고, 그길로 치희는 강을 건너 한나라로 돌아간다(뭐 거의 아침드라마 수준). 유리왕은 치희를 바로 좇아가지만 이미 치희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중이었고 강을 건너면 아무리 고구려 왕이라 해도 치희를 데려올 수 없다. 배를 타고 떠나는 치희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궁으로 돌아온다(고구려 왕의... 좋게 말하면 인간적인 모습...). 유리왕은 궁으로 돌아오다가 암수 정답게 노니는 꾀꼬리를 보고, 감정이 복받친 유리왕은 본인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른다.
황조가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제아무리 고구려의 왕이라 해도, 떠나가는 여인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을. 그 마음을 꾀꼬리에 투사하여 한 곡조 뽑아 부르는데 이것이 2천 년 전 여자에게 버림받아 슬픈 남자의 행동이다. 비록 왕이긴 하나 여자에겐 약한 남자랍니다♩ 자신의 슬픔 마음을 노래로 승화하는 모습, 놀랍다. 남편이 물에 빠져 죽는 걸 보고, 노래 한 곡 짓고, 남편의 뒤를 이어 강물로 들어간 백수 광부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뭐랄까, 다른 나라의 옛사람들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일상의 모든 것(이별, 죽음 모든 것)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우리 정서. 나는 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재밌게도 느껴지고.
/ 작자 미상, 「구지가」

짠!!
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가야 지역이 아직 국가가 아닌 부족 형태로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지봉에 올라, 지금 가르쳐 주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라고, 그러면 왕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하늘이 왜 이런 노래를 불러라 했을지, 직접 가사까지 지어 불러라 일어준 것도 웃긴데. 마지막에 거북이를 협박하는 말은 귀염귀염하다(거북이에겐 공포겠지만). 어쨌거나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말이라고 하면 말 잘 들으니까, 진짜 가르쳐 준 가사를 노래로 부르며 춤추는데, 이때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내려온다. 가까이 가 보니, 금빛 상자가 있어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여섯 황금알이 있다!! (위 그림)

아악! 눈부셔!!!
고상가옥에서 알을 깨고 나온 6명의 가야 왕들.
옛날 사람의 정신 속엔 성적(性的)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고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까지 마을 입구의 장승이나, 남근석도 그 연장선이다. 거북이의 머리도... 그렇다고 알고 있다. 사실 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고대 작품들이 결코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하면, 수위가 꽤 높다.
/ 작자 미상, 「정읍사」
내가 좋아하는 「정읍사」!!!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다.
정읍사
달님이시어,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시옵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장터에 가 계신가요?
진 곳을 밟을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디에든 내려놓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님 가는 곳 저물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집 나가면 이런 꼴
정읍사의 핵심 어휘는 '진 곳' , '저물까' 뜻이다. 상당히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어휘인데, 그 뜻을 세밀화가 자세히 설명해 준다. ① 짐 지고 가고 있는데 넘어짐 ② 주막에서 여자에게 꼬심(?)을 당하고 있음 ③ 깡패한테 잘못 걸려서 니킥 맞고 있음 ④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모습 클로즈업! (이런 그림들이 참, 정읍사를 지은 여인에겐 슬프고, 한 맺히겠지만 그림 보는 나는 뭔가... 뭔가... 웃기... 다... 음, 음...)
시험 문제에 정읍사 문제 풀 때 위의 그림만 떠올려도 '진 곳', '저물까'의 뜻을 맞추지 않을까.
/ 월명사, 「도천가」
신라 시대, 어느 날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떴다. 놀란 임금은 향가를 잘 짓는 월명사(스님 이름)에게 향가를 지어 달라 부탁을 하고, 월명사는 향가를 짓는데 향가에 감동받은 미륵부처가 두 개의 해를 하나로 합쳐준다는 아주 기적 같은 이야기.

미륵불 曰 : 산화공덕 땡큐
'산화 공덕'이라는 건 꽃을 뿌려 공덕을 기린다는 뜻인데, 월명사가 꽃을 한 움큼 쥐고 공중에 꽃잎을 뿌리니 꽃잎이 중력을 거스르고 월명사 주위를 맴돌았다는 전설이... (위의 그림은 월명사가 뿌린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월명사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다. 미륵불의 든든한 배경)
이 외에도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고전 문학들이 거의 빠짐없이 들어 있다.

잣가지 높은 곳, 서리 모르는 화랑 기파랑
요 그림은 「찬기파랑가」에 삽입된 세밀화다.
아아, 잣가지 높아
서리 모르시올 화랑의 우두머리시여.
정말로 향가 내용대로, 그림 속 기파랑은 서리 모르도록 잣나무 위에 있다. 그윽한 기파랑님의 눈빛....
/ 처용, 「처용가」

얼씨구, 에헤라디야♩
이 그림 보고 진짜 많이 웃었는데, 처용이 지은 처용가에 삽입된 세밀화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뜬 밤, 처용은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집에 왔다. 부인이 혼자 자고 있을 방으로 가려는데, 이게 웬걸! 방 댓돌에 아내의 신발과 외간 남자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다! 처용은 능력은 신통방통했기에, 방 문을 열어 보지 않고 방 안이 어떤 상황인지 다 알아챈다. 방의 벽을 밖에서 투시해서, 방 안의 이불 밖으로 살짝 삐져 나온 발 4개가 보이는 것. 2개는 나의 부인 것인데, 나머지 2개는 어떤 사내의 발이다. 처용은 이 낯선 남자의 발이 역신(역병의 신) 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춤을 추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처용가
서라벌 밝은 달에
밤늦게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걸 어찌하리
아 쫌, 집을 비운 사이 부인의 방에 이상한 놈 들어올 수 있으니까 일찍 일찍 다니라고요, 처용님!! 일찍 집에 왔으면 이렇게 춤추고 노래할 일도 없었을 것을. 어쨌든,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처용! 그에 못지않은 역신! 역신은 처용의 대단한 배포(?)에 감명을 받고, 곧바로 방 밖으로 나와 처용에게 사과한다. 현대인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내들의 배포! 사진을 안 찍었지만, 다음 페이지에 역신이 처용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고, 처용님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이후로 사람들은 역병이 돌 때마다 처용의 그림을 그려 집 대문에 붙이고 천연두를 경계했다는 그런 전설이 내려오고 있답니다....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많이 다르죠?!
/ 작자 미상, 「청산별곡」

아얏!
어디에다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진짜 돌에 맞에 이마에서 피가 남. 옆 페이지에서는 돌 3개가 막 날아오고 있고, 청산별곡 작자 미상 님은 날아오는 돌멩이와 맞서 싸울 것 같은 자세로 서 있다! (... 나 이 그림... 왜 이렇게 웃기지?! ;ㅅ;)

장대 위에 올라 해금 켜는 사슴 ㅋㅋㅋㅋ 다소곳이 모은 뒷발 봐 >ㅁ< 귀욤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부엌에 가다가 듣노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을 켜는 것을 듣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악, 진짜 「청산별곡」의 이 부분을 이렇게 그림으로 그려낼 줄 꿈에도 몰랐다. 사슴이 화자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해금을 켜고 있다. 그 뒤로 노란 꽃잎이 아름답게 휘날리고~

청산에 살고 싶다선 남편이 술독에 빠짐
술독에 빠졌다 나온 남편을 보고 아내가 전전긍긍하는 모습... 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세를 떠나온 당신께, 곁에 있어 줄 사람은 아내 한 명밖에 없는데 아내한테 좀 잘합시다. 아내 걱정 시키지 말라고요! 술독과 이별하세요.
─
이 책에 삽입된 세밀화를,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이 어떤 의도로 그리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재밌고 흥미롭게 잘 봤다. 고대 시가들과 잘 연결되어서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 (우리 학생들 머리에, 수능 시험일까지 꼭 기억하게 해주소서♩)
고대 시가들은 꼭 학생들만 공부하고 외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누구에게라도 시간을 뛰어넘어 재미있고 흥미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어줄 수도 있다. 왜 이런 작품들을 선조들이 짓고, 그 후대들에게도 오래도록 전승되어 왔을까. 우리는 학창시절 너무 진지하다가, 소중하고 재미있는 것을 잃고 잊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