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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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은 정말 좋은 책은, 저자에게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말하듯 자기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나는 홀든과 다르게 좋은 책은 나의 생각을 건드리거나 옛 기억을 불러일으켜  내 생각에 몰두토록 하는 책이다. 좋은 글은 자생력을 가지고 꿈틀거리고, 약동하여 나의 생각을 추동질한다. 나의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물을 주면 자라는 식물처럼 그냥 흐름에 맡기고 생각을 이어나가고 만들어 간다. 나의 생각과 회상은 책 속 글로부터 이어져 나왔고 그 연장선 어디쯤에 내가 있다.  



함정임 작가의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나갔다. 저자의 글 속에 자주 언급되는 고유명사들과 내 머릿속에 있는 고유명사들의 이미지가 중첩되어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중첩되는 고유명사, 세 개. 부산, 달맞이고개, 프랑스 문학.  


│부산│

부산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고 지금도 살고 있다. 단 한 번도 타지 생활을 해본 적 없다. 이 책에 묘사된 부산 속 지명은 보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나만의 이미지가 있다. 부산역이라 하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부산항 전경이, 황령산이라 하면 내가 황령산에서 바라본 풍경이, 범어사라고 하면 빽빽이 연등 달린 범어사의 모습이, 7km의 광안대교라 하면 길고 긴 광안대교를 관통하던 그때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누구와 함께 그곳에 있었는지, 그때 나의 감정은 어땠는지 당시 기억들이 톡톡톡 튀어나왔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달맞이 고개│

그중에서 현재 함정임 작가가 살고 있는 달맞이 고개. 해운대 달맞이 고개는 현재 이모네 가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모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면 앞집에 가려진 모퉁이 끝으로 해운대 바다가 보인다. 앞집 지붕 때문에 탁 트인 느낌은 없지만 모퉁이로 보이는 망망대해의 공간 깊이가 느껴진다. 이상하게 아무리 날이 좋아도 이모집에서 바라보는 해운대는 푸르기 보다, 잿빛이다. 현재 이모는 노환(여든둘)으로 몸 여기저기가 자주 편찮으시다. 병원에 실려 가신 적도 여러 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잿빛일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이모집에 갔을 때, 거실 끝에서 저쪽 끝으로 걷기 힘들어하시던 이모가 전에 없이 기운이 좋았던 날. 함께 장생포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다. 하늘은 청명하고 맑았다(집에서 바라보는 것과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이렇게나 다르다). 문탠 로드를 따라 걷다가 장생포 쪽으로 내려가 방파제 위를 걷고, 다시 언덕을 올라 폐철길의 자갈 위를 조금 걸었다. 이모가 힘들다 하셔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폐철길을 걸을 때 처음으로 이모와 엄마의 뒷모습을 사진에 함께 담았다(생각해 보니 나는 이모의 사진을 찍은 적이 이전엔 한 번도 없었다). 스물한 살의 터울, 21년의 터울을 두고 그 모습을 좇아 늙어가고 계셨다. 이모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엄마는 21살 위인 이모를. 그리고 나는 엄마를. 만약 누군가 내 뒤를 따라 걸은 이가 있었다면 우리 3명의 뒷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집으로 가는 길, 잠깐 슈퍼마켓 맞은편 간이의자에 앉아 21년, 25년 터울로 닮은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프랑스 문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 문학. 함정임 작가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신춘문예로 등단하셨다. 이 책에는 알베르 카뮈, 플로베르, 롤랑 바르트, 로맹 가리, 사뮈엘 베케트, 사르트르가 자주 언급되고, 파리, 니스, 코트다쥐르 등 프랑스의 여러 지명이 나온다. 나는 몇 해 전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죽기 전에 기필코 원서로 직접 읽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불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화자가 어린이였기에 쉬울 줄 알았지만 『자기 앞의 생』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 기절하는 줄 알았다) 잠깐이나마 프랑스인 친구도 사귀고, 프랑스 원서도 몇 권 읽고, 신문기사도 독해하며 내 생에 몇 안 되는 치열한 시기를 보냈다. 구글 지도로 프랑스 여러 지역을 검색했다. 보지도 않던 프랑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안 좋아해서 열심히 불어를 공부했는데도 단 한 번도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다. 다만, 프랑스어를 접하며 프랑스 문학, 프랑스 문호와 예술가들, 프랑스 유명 지역들에 대한 나만의 느낌을 갖게 되었다. 몸은 여기, 대한민국 부산에 있으면서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프랑스와 만났다. 실제 그곳의 느낌과 내가 이곳에서 만들어낸 나만의 느낌은 분명 다를 테지만, 난 나만의 프랑스가 있고 나만의 프랑스가 좋았다. 이 책을 읽고서 불어를 손놓은 동안 잊고 있던 프랑스라는 나라가 다시 생생히 되살아났다. 



몽타주란 '조립하다' 또는 '편집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monter'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조립과 편집의 몽타주 기술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영화와 모더니즘 소설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다양한 분야의 실험을 거쳐 예술사의 중요한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시간 몽타주는 대상이 공간 속에서 고정된 상태에 머물러 있고, 의식이 시간 속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공간 몽타주는 시간이 고정되고 공간 요소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 클러리사가 저녁의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집을 나서서 런던의 거리와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동안 보고,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꽃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의식의 흐름 속에 30년 전의 추억과 현재 상황이 교차하며 움직이는 것이 시간 몽타주다. 반면, 런던 북쪽 리젠트 공원에서 셉티머스가 공포스러운 환각증으로 헛것을 보며 시달리고 있을 때, 하늘에 제트기가 광고 문구를 뿌리며 날아가는 장면을 그곳과 다른 장소인 런던 남쪽 빅 벤 근처의 집 현관에서 클러리사가 바라보는 것이 공간 몽타주이다.

(함정임,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작가정신, 2018, 166쪽)


『댈러웨이 부인』의 클러리사처럼, 나는 함정임 작가의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를 읽으며 시간 몽타주를 한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켜켜이 쌓인 부산의 여러 지역들, 이모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애착을 가지고 있는 달맞이 고개, 그리고 프랑스 문학과 작가, 그 지역들을 오랜만에 상기하고 여행을 했다. (여행이란 말이 적절하다면)


많은 기억들이 절로 떠올랐고, 새로운 생각을 확장시켰다. 작가와 글에 나 자신에게 단절되지 않은 느낌, 이어진 느낌이 들어 좋았다. 에세이는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보다 독자 친화적이고 가깝게 느껴지지만 이 책에 자주 언급되는 고유명사들이 나도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일 거다. 얽힌 기억도, 사연도 많다. 뭔가 글이 내 마음에 착 와닿는, 외롭지 않은 느낌. 에세이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책에 실린 짧은 단편들엔 거의 빠짐없이 대중에게도 익숙한 작가들과 책이 언급된다. 또는 국내나 해외 어느 지역.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인데도 함정임 작가의 글을 따라 읽으면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이면 읽었던 책이라도 다시 읽고 싶고, 지명이면 이미 알고 있는 곳인데도 다시 가고 싶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플로베르의 작품,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 다 다시 읽어야겠다. 시간의 몽타주처럼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어 테니 분명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내게 다가올까. 애가 달아진다. 


또 함정임 작가의 문장이 너무 좋아서 한 편, 한 편 필사하고 싶은 마음이 뽐뿌! 보통 오래 글 쓰신 분들은 고착된 문투, 고루한 옛날식 표현을 쓰기 쉬운데 함정임 작가의 문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이를 알 수 없다. 묘령(妙齡)하다. 문체가 어리다고 해야 할지, 정말로 묘하다고 해야 할지. 글이 차분하고, 젊음을 넘어서는 섹시함이 있다. (글에 성적인 내용은 전혀 없는데도 나는 왜 문체에서 섹시함을 느꼈을까. 왜지?!) 나도 나이를 알 수 없는 묘령의 문체를 구사하고 싶다. 



부산에 사는 작가의 글을 흔히 접할 수 없다. 한국전쟁 피난 시기에 쓰인 초창기 한국 문학이 다가 아닐까 싶다. 부산에 사시는 작가라 반가웠고, 달맞이 고개라 더 반가웠던 에세이.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문호들과 예술가들(이 책에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과 다른 지역 예술가들도 많이 언급된다)에 대한 글들이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아 참 좋았다. 각 글의 느낌이, 문화 예술을 심도 있게 다루는 토요 특별판 신문 칼럼이랄까. 매주 토요일이면 문화 칼럼을 빠트리지 않고 꼼꼼히 읽는데 이 책에 취향 저격 당했다. 어느 작가, 어느 지역이 마음에 떠오를 때마다 책장에서 꺼내 읽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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