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실린 27편의 이야기 모두 공감되고,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마음이, 그들이 처한 환경과 입장이 다 이해가 되었다. 읽을수록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난 이야기도 있다. 다만,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아이들의 소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더라도 나는 똑같이 공감되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입장이 이해되었을 것이다. 남성,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자와 소외된 자'의 문제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른 건 카프카의 『변신』이다. 『변신』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려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인간소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그녀 이름은』, 카프카의 『변신』처럼 인간소외 문제를 다룬다(표지 그림도 '소외된 그녀'의 모습이다) 


   요즘 페미니즘 문제가 많이 회자되고 있고,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많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나는 이 모든 게 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소외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뼈 빠지게 일해서 만들어낸 생산물을 본인이 갖지 못하고, 손가락 까닥하지 않은 자본가가 차지하게 됨으로써 소외된 노동과 그로 인한 인간소외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와 생산물과 생산 과정을 둘러싸고 대립 갈등을 하게 된다. 여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해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노동을 해왔는데, 그 노동을 가족들(심지어 여성 본인도)이  두 눈으로 빤히 보아왔으면도 오랫동안 눈 뜬 장님처럼 보지 못했다.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서, 여성들의 노동과 희생이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뻔히 보이지만 결코 보이지 않는 노동을 근대 들어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그 눈이 시대에 따라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성들이 집을 나서 밖에서 남성들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확대되었고, 지금도 계속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버지니아 울프의 경우는 씨앗은 있었지만, 자기만의 방과 고정소득이 생기면서부터 인식이 싹트고 꽃을 피움). 뭐, 모두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부모와 비교해 자신의 부모에 대한 불만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밖으로 나가야 자신의 위치가 보인다. 그리고 성별을 넘어 '인간'을 봐야 한다. 





   매달 반복해서 읽고 있는 로맹 가리의 『내 삶의 의미』에서 로맹 가리는 자신이 제일 관심 가지고 있는 있는 건 '여성성'이라고 밝혔다. '여자'가 아니라 '여성성'. 이 '여성성'은 <사랑과 포용>으로 빗대 말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인류 최고로 여성의 목소리를 낸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나도 동감한다. 로맹 가리는 예수만 예로 들었지만, 나는 부처님도 여성성의 목소리를 낸 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포용하는 목소리. (하지만 두 분 다 강철같이 강한 느낌도 있다) 또 '남성성'은 <폭력>으로 빗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맹 가리가 페미니스트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듯, '여성성'이란 단어를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 이 말이 성차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 맥락을 읽어야 한다. '여성성'이란 단어가 거슬리면 <사랑과 포용>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또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이명희, 조현아, 조현민은 모두 여자라는 성을 가졌지만 '갑'이라는 우월적 지위로 남성적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여기서 '남성적'이라는 표현은 진짜 '남자'와 좀 다른 표현이다)이라 할 수 있겠다.  


   로맹 가리의 말처럼, 성별의 프레임을 넘어서 약한 자, 소외된 자에게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소외된 자가 여성이라면 여성에게, 소외된 자가 남성이라면 남성에게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조남주 작가의 『그녀 이름은』은 소외된 자의 외침, 혹은 소외된 자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다만 여성의 이야기만 추렸을 뿐이다. 오랫동안 여성은 약자, 소외자, 을의 위치에 있었다.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별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틀을 넘어 진정으로 소외된 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추가 ) 이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 중 <KTX 사건>이 제일 마음 아팠다. KTX 사건은 우리가 익히 하는 바로 그 KTX 승무원 이야기이다.  1, 2심에서 승소했다고 대법원에서도 꼭 승소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대법원에 가서 승소할 수도 있고, 패소할 수도 있는데 다만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당사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고, 결국 그중 한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다시 내놓으라고 한 돈의 액수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1, 2심 판결을 참작해 좀 적게 내라고 하든지. 대법원 판사들은 월급이든 뭐든 한 푼도 안 쓰고 모아 두나? 어쨌든 대법원은 헌법상 허용된 권한을 넘어 과도하게 그분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본다. 모쪼록 잘 해결되고, 그분들이 법에 구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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