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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이 될지라 - 창세기 3 ㅣ 김양재 목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6년 8월
평점 :
‘너는 복이 될지라’를 읽고
박정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다. 모르긴 몰라도 중국과 한국을 넘어서 전세계의 어떤 나라의 사람들도 ‘복’이라는 단어-물론 그 나라마다 단어는 조금씩 다르게 쓰이겠지만..는 모두에게 인기를 끄는 단어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한국교회는 ‘복’이라는 단어를 유독 좋아한다. 그래서 ‘복’이라는 단어가 약방의 감초처럼, 명가의 보도처럼 그렇게 봇물을 이룬다.
‘너는 복이 될지라’라는 책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네가 좋아하는 제목일지 모르겠다. 아니,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시선을 끄는 제목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책은 다행이 한국교회의 단골메뉴인 ‘기복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시작된다. ‘복은 복이 되어 주는 것, 즉, 희생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정의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이 책에서 말하는 ‘복’이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있는 ‘기복적’ 복의 개념을 뛰어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계속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책은 모두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Part1. 복이 되는 결단(내가 떠나야 할 곳, 내가 가야 할 곳), Part2. 복이 되는 선택(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 Part3. 복이 되는 능력(인생은 1만 시간의 훈련)으로 창세기 12-15장에 이르는 아브람의 여정을 통해 ‘복’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챕터들은 창세기 본문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설교형식의 글과 ‘우리들 묵상과 적용’이라는 제목의 간증문 소개, 그리고 ‘말씀과 기도하기와 영혼의 기도’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기도로 공히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책은 언제나 풍성한 간증과 기도가 독자로 하여금 유익을 준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분량의 간증문과 또 책 곳곳에 등장하는 간증 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전반에 걸쳐, 특히 처음의 Part1,2에서는 더욱더 도드라지게 ‘헌신과 버림, 떠남’등이 강조되어 있다. 책의 전제이자 중심생각인 ‘복은 누군가에게 복이 되어주는 것, 희생하는 것, 인생의 목적은 거룩’등에 부합되는 듯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생각이 나에게는 혼돈을 주었다. 결국 먼길을 돌고 돌아 이 책은 세상이 말하는 ‘복’ 물질의 축복, 잘 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추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그런 수 많은 영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의 인생을 벗어나 결국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 성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간증으로 끝나야 ‘이야기가 되는’ 그런 한계를 이 책은 벗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책은 언제나 복잡한 교리나 성경적인 주해에 바탕이 된 강해가 아니라 가정큐티식의 은혜가 강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일까? 굉장히 쉽게 소화가 되는 듯하면서 가벼운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고, 좀 더 깊은 사고와 통찰이 바탕이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을 못내 떨칠 수 없다. 예로 등장하는 몇 가지 이야기나 소개되고 있는 간증문이나 사례가 저자의 주장이나 묵상을 뒷받침하는 예가 될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논란의 여지나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이야기로 전개 되는 예일 수도 있는 대목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책 표지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김양재의 큐티 노트’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렇다. 이 책은 ‘강해설교집’이 아니라 ‘큐티 노트’이다. 그래도, 목회자의 큐티 노트가 수많은 사람의 손에 읽혀지고, 또 방향을 제시하고 신앙생활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못내 아쉽다. 특히, 마지막 결론인 Part3에서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라면서도 끝내 인간의 노력의 강조와 인본주의적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