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카와 쇼코 지음쉽게 읽힐 줄 알았다. 제목부터 흥미가 당겨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때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꼼꼼히 읽는 편이라 버릇처럼 머리말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책이 내 마음을 이토록 힘들게 할지 몰랐다. 10장의 다소 긴 머리말이 낯설었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구로카와 쇼코 작가는 학대받은 아이들의 "그 후"에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었다. 보통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처참한 아이의 상태와 아이가 겪은 고통이 적나라하게 기사화된다.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사람들 기억에서 잊힌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궁금해하고 기억하는 것조차 학대받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사건 이름 앞에 붙은 아이의 이름이 때로는 지울 수 없는 작형의 상흔같이 느껴졌다.아이가 살아있는 경우엔 그랬다. 이와 달리 고통 속에 끝내 생을 달리한 천사들은 기억해야 한다고 스스로 어이없는 기준을 세워둔 것도 이번에 깨달았다. 내가 틀렸다. 남겨진 아이들의 안녕에도 관심을 가졌어야 옳다.책에는 5명의 학대받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학대받은 정황도 아이들의 상처도 각기 다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과 끝까지 아이들의 상처를 돌보려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은 똑같다. 제1장은 벽이 된 아이, 미유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에게 맞지 않으려고 숨어 그대로 벽이 되어버렸다. 아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고통 앞에 미유는 스스로 세상을 끊어버렸다. 기억도 감정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환각 증세를 겪게 된다.제2장에는 커튼 방, 마사토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표정을 잃어버리고 커튼 뒤에 숨어버리는 아이, 애착장애와 ADHD 진단을 받았다.제3장은 어른이 된다는 건 괴로운 일이잖아, 다쿠미에 관한 이야기다.열악한 보호시설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렸다.제4장은 노예가 되어도 좋으니 돌아가고 싶어, 아스카에 관한 이야기다.위탁 부모 밑에서 제대로 된 삶을 겨우 꾸려가던 도중 "같이 살자"라는 생모의 한 마디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지만 재차 버림을 받는다.제5장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나요, 사오리에 관한 이야기다.학대 속에서 자란 사오리는 자신의 첫째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학대가 자신의 손으로 자행된다는 데에 절망한다.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일본은 우리보다 위탁부모 제도가 더 촘촘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 죄 없이 이 땅에 태어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끔찍한 폭력과 학대를 맨몸으로 겪고 있는 가여운 아이들을 사회라는 울타리로 끌어올려 방패막이 되어준다. 당장 배워야 한다.나라를 떠나 어디에서나 이런 만행이 벌어지는 것은 사람이 최소한의 도덕과 사랑을 갖추지 못한다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자신이 낳은 아이의 손을 거침없이 가스 불속에 넣고는 뜨거워도 울지 말라며 협박을 하고 딸을 수년간 성폭행하고 발로 차며 머리채까지 쥐고 때린다. 비단 책에 나온 이야기일 뿐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뉴스에는 학대받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보도되고 그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이 그것도 친부모가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은 마음을 보기 좋게 조롱하듯 아동 학대 사건은 그칠 줄 모르고 더 끔찍해지고 악랄해진다. 다행히 몸과 마음이 아픈 가여운 아이들을 감싸 안는 분들이 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와 똑같이 마음 아파하며 아이들이 고통을 잊고 바로 서길 바라고 보듬어주는 그들 역시 사람이다. 5장의 사오리처럼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어떻게 지내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여러모로 뜻깊다. 부모의 학대에서 벗어났다고 짓밟힌 꽃이 뿌리를 세워 다시 피기가 어찌 쉬울까?자신의 모습에서 자기가 가장 증오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이가 자신처럼 꺾여가는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그들을 위한 온정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구로카와 쇼코가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어쩌면 해피엔딩만을 바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수 년에 걸쳐 취재한 르포르타주.겸허한 마음으로 아파도 눈 감지 말고 제대로 바라보려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제2의 정인이와 민영이가 없기를 바란다. 마음이 병든 채 살아가야 하는 아이도 힘들었던 과거 때문에 미래 역시 어두운 길에서 헤매는 일이 더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그들의 선생님이 아니더라고 이 세상의 어른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지고 읽어보면 좋을 이야기다.아파도 울지 못하고 학대의 고통 속에 결국 하늘나라에 간 천사의 웃는 얼굴을 누구든 한 번씩은 보지 않았나?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직면해서 머리를 맞대야 할 지금이다.적어도 힘없는 아이들이 잔악무도한 어른들의 무력 앞에 고통받는 일만큼은 막을 수 있고 구한 생명들은 끝까지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국민들에게 걷은 세금이 높은 양반들의 배를 불리고 땅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이 불쌍한 아이들의 따듯한 옷을 사는데 쓰이기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