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 기쁘게 살아낸 나의 일 년
수전 스펜서-웬델 & 브렛 위터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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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사랑 내 곁에>를 통해 루게릭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병인지 알게 되었다. 과연 나라면, 내 가족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만도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었다.

그런 병을 안고 세 아이의 엄마가 마지막 순간을 같이 하면서 담담하게 써 내려간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를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리기에, 용기내어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2009년 여름 밤, 왼손의 뼈가 불거져 나오고 앙상해지는 증상이 시작되었지만, 애써 병을 외면하던 수전 스펜서.

증상은 점점 온 몸으로 퍼져나가, 2011년 6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즉 루게릭병 진단을 받는다. 마흔넷의 나이에 근육에 힘을 실어주는 신경이 파괴되는, 치료법도 치료약도 없는 병에 걸린 것이다.

이십 년 가까이 법원 담당 기자로 일하며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오던 그녀는, 이제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던 기자생활도 접고 일상생활과도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선택한다.

지금, 앞으로 하지 못할 일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긴다.

그녀는 세 아이와 한 명씩 따로따로 여행 계획을 세운다. 물론, 전적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여행으로 엄마와 오롯이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여행과 더불어 아이들 각자의 사진첩 만들기도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아이들의 사진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엄마 말고는 그 기억의 순간을 메모할 이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정성껏 진행한다.
 

첫 아이 머리나의 사진을 들쳐보며 엄마가 된 감동의 순간들을 떠올리는 수전.

부모로서의 삶을 선물해준 아이들이 있었기에 삶은 더 완벽하고 행복했으리라.


'누구든 자기가 사랑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기록해두어야 한다.'

그녀가 기록한 자신이 사랑하는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아프기 전의 일상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있어 가슴을 울린다.

난 지금 어떤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매번 종종걸음으로 바쁘다를 외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지금이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감사해야지. 

 
병을 알았을 때부터 그녀는 욕망을 버림으로서 고통을 버리고 편해지고자 노력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아이패드로 글을 쓰다가 나중에는 엄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도 아이폰 터치가 있어 감사했던 그녀.

입양아로 살면서도 항상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누렸던 그녀.

병이 진행된 후 연락이 닿은 생모를 만나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생부의 고향을 찾아가 친척들을 만나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며 자신의 병이 유전이 아님을,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덜며 안도하던 그녀이다.

 
언니, 생모, 친구, 아이들과의 여행을 통해 더욱 그들과 가까이 하려고 애쓰며, 아픈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힘들지 않도록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던 그녀 덕분에 남은 이들은 행복한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죽는 순간.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남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 그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용기있는 선택으로 그녀의 가족은 매 순간 행복하기 위해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제일 가슴 찡한 부분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 병을 알리지 않았고, 서로 병에 대해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새 엄마의 병을 알고 있던 아이들은 내색조차 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춘기인 첫째 머리나는 엄마와의 여행에서 ALS의 상징인 수레국화를 발목에 문신으로 새기고 싶어하고 불평쟁이 둘째 아들 오브리는 엄마에게 사랑을 담아 "Eye-heart-u." 문자를 보낸다. 셋째 웨슬리는 자폐증과 비슷한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지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엄마에게 끊임없이 그림으로 사랑을 전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하기에, 아파하기보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들의 가족애가 느껴져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평생을 같이 한 친구 낸시와 언니 스테퍼니, 손발이 되어준 남편 존, 그리고 함께 한 소중한 친구들이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다.

비록 그녀가 아이들 곁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들이 있기에 든든하리라.

그녀가 손가락 하나로 완성한 마법 같았던 일 년의 순간을 기록한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는 그녀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추억이리라. 

 
그동안 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했을 그녀이기에, 더욱 더 남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남은 1년 동안의 기억을 평생 추억으로 간직할 아이들을 위해 그녀가 최선을 다해 살아갔을 시간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나 또한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앞으로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여행을 꼽지 않았을까 싶다. 특별한 여행으로 평생 남을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같다.

아이가 커 갈수록 사진을 찍어도 인화하고 앨범으로 만들어 놓지 못한 나의 게으름 또한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연말이면 항상 사진 정리를 해야지 결심했다가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당장 진행해야겠다.

그녀의 책을 읽는 내내 지금 내 일상에 감사하며, 내 옆에 있는 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가꾸리라 다짐한다.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 세계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하니 곧 만날 그녀의 영화를 기다린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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