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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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

자가용을 사기 힘든 사람들이 사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후드티‘가 있다. 힙합 가수들이 후드티를 많이 입는다.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후드를 쓰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시선을 차단해서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이다. 후드티는 미국에서도 흑인 힙합 문화의 상징이다. (중략) 건축적으로 보면 후드티를 입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도시 빈민들이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려고 한다. 지붕이 있는 공간을 소유하지 못하니 모자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쓴다. 주변이 안 보이니 머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려야 한다. 이런 행동이 힙합의 무브(움직임)다. 후드티를 입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행동은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이 없을 때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행동 패턴이다. 손을 좌우로 넓게 흔드는 것도 힙합 춤의 형태다.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액션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가장 저렴한 방식이다.

여기서 조금 더 돈이 있는 사람은 헤드폰을 쓴다. 힙합 문화에서는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닌다. 그런 헤드폰은 ‘나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라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이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큰 헤드폰은 ‘나를 내버려 두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벽으로 소리가 차단된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가장 손쉽게 청각적으로 독립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헤드폰이다. - P102

권력은 좌우대칭에서 나온다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좌우대칭이고 궁전의 입면도 좌우대칭이다. 피라미드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입면도 좌우대칭이다. 두바이 왕궁 앞의 길은 대놓고 베르사유 궁전을 흉내 낸 좌우대칭이다. 미 국회의사당 앞길,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길 모두 좌우대칭의 모습이다. 권력을 나타내는 공간이 좌우비대칭인 경우는 없다. 왜 권력의 공간은 모두 좌우대칭일까?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규칙을 찾는데,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규칙 중 하나가 시각적 좌우대칭이다. 어느 공간이 하나의 규칙을 보일 때 그 공간은 하나로 인식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군복을 입고 있을 때 하나의 군대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좌우대칭의 공간은 하나의 규칙하에 놓인 하나의 큰 공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 가면 모든 공간이 좌우 비대칭이고 도로 모양도 제각각임을 볼 수 있다. 이런 공간 속에서는 규칙을 찾기가 어렵다. 규칙을 찾기 어렵 중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공간 내에 권력의 차등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도시를 걷다가 좌우대칭의 공간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성당과 그 앞의 광장이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 가면 우리는 완벽한 좌우대칭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성당과 그 앞의 거대한 광장이 하나의 규칙하에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그 좌우대칭의 큰 공간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몸은 그 큰 공간 안에서 아주 작은 존재로 느껴진다.

권력을 나타내는 공간이나 건축물이 좌우대칭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숨어 있다. 거대한 건축물과 공간을 좌우대칭이라는 규칙하에 묶어 놓으면 그 안의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작은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공간 구성은 개인의 존재감을 억누르는 전략인 것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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