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여섯 시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선재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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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서퍼 얘기의 요지는 이렇다. 일의 세계를 하나의 ‘거친 바다‘라고 봤을 때, 누군가는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튼튼하고 호화로운 배에 탑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좋은 배에 타는 대신 훌륭한 서퍼가 되어, 어떤 파도가 오더라도 그 파도에 올라타 즐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좋은 배에 올라탔다고 한들, 선장이 될 수 있는게 아니라면 언젠가 우리 모두 배에서 내려야 하니까요.

언젠가 배에서 내려야 하는 순간, 내가 타고 있던 배가 그럭저럭 괜찮은 배였다면 내리는 사람들이 죽지는 않도록 구명조끼나 보트 정도를 주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자유는커녕, 나의 힘으로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점에서 좋은 대책이 될 수 없음은 마찬가지다.

내가 탄 배가 "자, 너보다 더 유능하고 젊은 선원을 태워야 하니 이제는 내려주겠니?"라고 했을 때 그때서야 어딘지로 모르는 곳에 구명조끼 하나 들고 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좀 더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파도를 탈 방법이 필요하다.

(P48~49)
나의 에너지를 적당히 여러 곳에 배분할 것인지, 특정 대상에 집중할 것인지 역시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그걸 선택할 자유 혹은 권리가 주어진다면 어느 쪽도 완전히 옳거나 그르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회사‘와 나의 ‘최선‘이란 크게 관련성이 높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회사에서 ‘나의 몫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지, 그 일에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 아닌가‘는 엄밀히 말해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더라도 요구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문제다. 에너지를 아껴가며 적당히 했대도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회사에서 얼마만큼 최선을 다해야 할까?‘가 아닐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문제없이 해내는 것은 ‘의무‘이고 그 후에 남는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쏟아부을지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야속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있는지 스스로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력은 ‘얼마나‘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에 집착하는 것은 애석하게도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화초를 키울 때, 아무리 열심히 물을 주고 좋은 말을 해주어도 화초가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 화초는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어야 하고 하루에 한두 번은 꼭 햇빛이 강한 곳에 30분 이상 놔두어야 하며 바람을 자주 맞을수록 튼튼해지는 성질의 화초였다. 그것을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물을 주고 좋은 말만 해주었으니, 내 입장에서 매우 노력했다고 해도 화초 입장에서는 필요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노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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