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안보윤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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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소설로 쓰기 위해 조금은 과장하기도 하고 조금은 축소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혼자 생각해 봤다. 사건을 조금 과장하고 담담하게 글을 이어가기 위해서 감정은 조금 축소하는 것이 소설이 될 것 같다. 안보윤 작가의 모르는 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다. 이기심 또는 편익이라는 인간의 욕심을 고려한다면 모르는 척은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고 이 소설을 더 씁쓸하게 읽게 만들었다.


소설을 현실에 대입했다. 1:1로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1.2:1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 조금 과장됐을지 모르지만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다.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라서 모르는 척 지나갔으면 좋았을 현실이 이야기에 담겨있다. 근친살해와 보험사기를 표면으로 노출했지만 '모르는 척'을 본질적인 문제로 바닥에 깔려있었다. 처음 모르는 척하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듯이 모르는 척하는 것이 점점 당연해져서 정말 모르는 것이 돼 버린다.


조인근은 엄마를 살해한 살인자다. 아버지가 죽고 남은 동생과 삶의 의욕을 잃은 어머니가 남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보험설계사 이모의 도움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보험사기로 살아가는 첫째 아들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병원을 전전하며 보험금을 타내기 때문에 학교와 동네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이다. 


변계숙은 살해당한 피살자다. 눈치 빠른 영재인 큰 아들보다 평범한 작은 아들에게 신경이 더 쓰이는 어머니다. 남편이 죽고 P시로 이사하지만 변화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 동생의 도움으로 첫째 아들이 보험사기로 벌어오는 돈으로 삶을 이어가는 가족이다. 첫째 아들에겐 어머니지만 둘째 아들에게는 엄마인 감정이 다른 사람이고 큰 아들의 몸이, 정신이 망가져 가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인간이다.


조인호는 살인사건 피해자와 살인사건 가해자의 가족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불투명하고 더럽고 역겨운 모든 것을 얻은 살인자의 동생이자, 피살자의 아들이다. 구질구질한 P시로 이동해서 삶의 잃은 엄마와 끝없이 자해를 하는 유령 같은 형을 가진 가족원이다. 이상한 하는 형이 정상적으로 살기를 바라면서 보험사기를 일삼는 형을 놀리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한쪽 귀에 막혀 듣지 않으려는 동생이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모르는 척이 이어져 모르는 것이 돼 버린 인간이다.


한 가족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 두 명의 가족원이 한 가족원을 마귀처럼 뜯어 먹는 소설이 기분 좋게 읽히지는 않는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지만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모르는 척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소설은 Fiction이라는 것을 내 모르는 척의 이유로 실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소재가 좋다.'라고 생각하며 쉽게 읽었고 책장을 덮었을 때는 씁쓸함이 남았다. 현실에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모르는 척하기에는 그 모르는 척으로 희생당한 소설 속 조인근의 마침표가 없는 쉼표들로 이루어진 문장이 강렬히 남았다. 마침표 없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조인근의 문장처럼 아직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실 속에도 모르는 척이 익숙해져서 정말 모르는 것이 돼 버린 나와 같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안보윤 작가가 들고온 소설은 현실 속에서도 길게 쉼표처럼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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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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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작중 화자의 얼굴을 떠 올릴 때마다 나는 작가의 얼굴을 사용하곤 한다. 하나의 표정만을 가진 작가의 사진이기 때문에 화자의 표정이 묘사될 때마다 책 날개를 구겨가며 작가의 표정과 화자의 표정을 일치시키곤 한다. 작가의 얼굴로 소설을 읽다보면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때로는 그 현실감 때문에 작가가 허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사진과 화자의 얼굴이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나이, 성별 심하게는 종까지 바꿔가며 화자를 만드는 작가를 볼 때면 현실감에서 멀어져서 기발한 상상력에 대해 경외감을 갖는다. 그리곤 점점 작가의 경험에서 멀어져서 그가 만든 이야기 속을 헤맨다. 


소설에서 작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자신을 덤덤하게 내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글에서도 작가와 직접 이야기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있었던 경험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작가는 무엇을 쓰는가?'

소설을 읽을 때마다 궁금하던 것이다. 소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작가를 탐구하려는 헛된 욕심이 작가가 무엇을 쓰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와 작가를 겹쳐가면 갈수록 미궁에 빠지고 소설은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생의 이면>은 박부길의 소설을 통해서 박부길의 삶을 추적하는 소설이다. 박부길의 소설 몇 편에 나온 박부길의 목소리를 통해 소설은 전개된다. 박부길의 소설이 액자로 펼쳐져 박부길을 탐구하는 작가가 화자로 나선다. 소설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박부길의 삶은 불행하고 일반적이지 않다. 그의 불행한 경험들이 소설 속에 강한 이미지로 표현된 것을 화자가 탐구한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을 통해서 발견되는 것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전개고, 매우 흥미로운 소재지만 화자를 통해 전하는 작가의 한 마디가 독자의 힘을 뺀다.


"독자들의 의식 속에서 소설가가 쓴 글들은 너무 쉽게 글쓴이의 현실을 지향한다. 우리는 한 작가의 소설로부터 구성해 낸 한 인물의 초상과 그의 삶을 너무 편리하게 현실 속의 작가와 동일시해 버리곤 한다. 그래서 소설 이전이 작가의 현실을 복원해 보려는 부질없는 꿈을 꾼다. 나쁜 버릇이다. 나쁘지만 불가피하다. 아무리 진지한 독자도 이 버릇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독자는, 그런 뜻엣 모두 맹추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작가의 얼굴로 소설을 읽다가 미로에 빠지는 독자로서 작가의 당부처럼 들리는 글이다. 그는 나와 같은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를 위해, 작가의 스토리를 현실로 착각해서 선입견을 가지는 독자를 위해서 이런 당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불운한 박부길의 액자를 들여다보며 숨가쁘게 읽었지만 내재된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해 이승우 작가의 뒷조사를 할 요량이었지만 작가의 당부가 내 의지를 한풀 꺾었다.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내게 숙제처럼 던져진 이야기는 조사가 필요없이 있는 그대로, 내가 아는 만큼 받아들여 졌다. 작가 이승우는 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진정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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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 뉴욕의 20대들은 인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시작하는 철학 시리즈 1
샤론 카예 & 폴 톰슨 지음, 권혜아 옮김 / 홍익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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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책 제목에 빗대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좋은 책은 일찍 절판될까?'

대학 신입생이 돼서 철학을 가장 먼저 접하게 해 준 책은 <이 모든 것의 철학적인 의미는>이라는 책이었다. 15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으로 철학을 생활 속의 생각과 연결시켜 주는 쉬운 입문서다. 십 몇 년을 살아오며 의문을 가져봤던 것들에 대해서 내가 특이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생각이고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줬다. 예를 들면, 내가 초콜릿 맛을 느끼는 것이 모두에게 초콜릿 맛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것,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아주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에 열광했고 스터디에 참석해서 책을 가지고 사람들과 철학적인 소통을 했었다. 내가 대학생이 돼서 봤고, 대학생이 돼서야 그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됐지만 원래는 프랑스 중학교 철학 교과서라고 하니까 매우 쉬운 입문서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 책은 절판됐고, 철학에 대한 쉬운 설명의 입문서를 보지 못 했던 것 같다.


내가 봐 왔던 철학을 쉽게 풀이하는 책은 몇가지 종류가 있었다. 

첫 번째는 철학자들을 소개하면서 그 사상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책

두 번째는 사회적인 이슈를 설명하면서 철학 사상을 섞어 놓은 비빔밥 같은 책

세 번째는 살아가면서 가졌던 근본적인 물음들을 철학 사상으로 풀이해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 중에서 세 번째 종류로 나온 책은 <이 모든 것의 철학적인 의미는>과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가장 공감하기 쉽고, 철학을 시작하기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거기에 추가로 <시작하는 철학1: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일이 생길까?>라는 책을 넣을 수 있겠다. 


이 책은 저자들이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존 캐롤 대학교에서 철학자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 교재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대학교 철학 입문서 같은 느낌이다. 책의 구성은 미학과 윤리학으로 구성된다. 아름다움, 진실, 정의, 신의 주제를 가진다. 각 장의 구성은 먼저 사고를 이끌어 내는 대화,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 철학적인 설명(철학자의 사상, 철학자 소개), 그리고 종합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스럽게 사고를 이끌어 내는 대화를 통해 독자는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공감하며 빠져들 수 있고 그 내용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생각해 볼만한 것들에 대해서 간결한 질문이 더해지기 때문에 책만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탐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의 철학적인 의미는>을 읽을 때처럼 열광하며 책을 읽었지만 묘하게 머리가 갸웃거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아쉬웠다.


사고를 이끌어 내는 대화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철학적인 질문을 이끌어 내지만 그 질문을 정리해서 소개해 줘야 하는 부분은 강의를 위한 교재이기 때문인지 명쾌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좀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부분이 간략하게 정리된 부분도 있고, 철학자를 소개하기 위해서 축소된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다. 또한 엑서사이즈나 액티비티 부분에서 그룹활동을 유도하거나 활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국내 독자들에게 잘 맞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철학책에 쉽게 빠진다. 누구의 철학이라고 설명하면서 무조건 훓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철학적 화두로 전개되는 방식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철학에서 사유가 기본이라면 사유를 동반할 수 있는 철학책이 계속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널리 알려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 일찍 절판되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 권을 구매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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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 서울 시 1
하상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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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을 하나 구입했었다. 출퇴근 시간 한 손에 쥐고 책을 읽어 손목에 무리가 왔었기 때문에 전자책이 그 치유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뷰어를 사용해서 읽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구매해 아이폰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참 편안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아이폰의 화면이 작아 전자책을 읽기 어려운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들고 있는 1인치, 2인치 큰 화면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큰 화면으로 검색과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직 전자책의 시대가 오려면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300페이지 분량의 책이 600페이지로 훌쩍 늘어나 버리는 책을 집중력있게 읽으려면 뷰어가 변하던가, 전자책이 변해야 한다. 이미 휴대폰 제조사, 전자책 유통사에서 전자책을 쉽게 보기 위한 노력이 있어 왔지만 아직 국내에선 컨텐츠의 변화를 찾기 어려웠다. 이미 싱가폴에는 마이크로 노벨이라는 장르가 전자책에 맞춰서 유행하고 있고 하이쿠라는 일본시는 전자책에 적합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그런 컨텐츠를 찾기 어려웠다. 짧은 시간 안에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눈에 들어 온 것은 리디북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서울 시>였다.

서울 시는 보통 4줄이다. 시 형식의 엉뚱한 4문장을 읽고 나서 제목을 보면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엉뚱함이 신선하다. 광고의 카피를 보는 것처럼 쉽고 기발하게 읽힌다. 때로는 그 엉뚱함이 지나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너무 무난해서 기발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전자책 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에게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리디북스에서 연구를 하는 마음으로 <서울 시>를 꾸준히 읽다가 종이책으로 나온 책을 받아들었다. 받자마자 만화책을 보는 속도로 휘리릭 1시간만에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전자책으로는 기발함과 엉뚱함이 느껴졌지만 종이책을 읽었을 때는 맛이 덜 했다. 이미 한 번 읽었던 내용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순간의 공감 외에 더 깊은 감상을 느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종이책에 기대하는 것이 많은 내 욕심에 저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저자의 재기발랄함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남는게 없네.'라며 책을 덮으며 내뱉었던 혼잣말이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책은 고매한 정신활동이며 독자의 감상과 감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고전적인 책의 이미지를 쫓고 있는 아날로그 세대가 어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 시>는 재미있었다. 그 이상의 감상을 기대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전자책에 최적화되어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무겁게 읽으려 했던 내 실수였다. 아마 저자의 의도도 재미와 공감, 그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전자책 시장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 그 부분이 아닌가 싶다. 실제 무게가 또는 내용의 무게가 무거운 책보다 가벼운 책이 전자책에 더 어울린다는 것 같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인지 <서울 시> 종이책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나는 저자에게 조그만 경외심 같은 것을 느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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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을 하나 구입했었다. 출퇴근 시간 한 손에 쥐고 책을 읽어 손목에 무리가 왔었기 때문에 전자책이 그 치유책이 될 수 있을 것 갔았기 때문이다. 어느 뷰어를 사용해서 읽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구매해 아이폰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참 편안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아이폰의 화면이 작아 전자책을 읽기 어려운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들고 있는 1인치, 2인치 큰 화면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큰 화면으로 검색과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직 전자책의 시대가 오려면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300페이지 분량의 책이 600페이지로 훌쩍 늘어나 버리는 책을 집중력있게 읽으려면 뷰어가 변하던가, 전자책이 변해야 한다. 이미 휴대폰 제조사, 전자책 유통사에서 전자책을 쉽게 보기 위한 노력이 있어 왔지만 아직 국내에선 컨텐츠의 변화를 찾기 어려웠다. 이미 싱가폴에는 마이크로 노벨이라는 장르가 전자책에 맞춰서 유행하고 있고 하이쿠라는 일본시는 전자책에 적합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그런 컨텐츠를 찾기 어려웠다. 짧은 시간 안에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눈에 들어 온 것은 리디북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서울 시>였다.

서울 시는 보통 4줄이다. 시 형식의 엉뚱한 4문장을 읽고 나서 제목을 보면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엉뚱함이 신선하다. 광고의 카피를 보는 것처럼 쉽고 기발하게 읽힌다. 때로는 그 엉뚱함이 지나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너무 무난해서 기발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전자책 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에게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리디북스에서 연구를 하는 마음으로 <서울 시>를 꾸준히 읽다가 종이책으로 나온 책을 받아들었다. 받자마자 만화책을 보는 속도로 휘리릭 1시간만에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전자책으로는 기발함과 엉뚱함이 느껴졌지만 종이책을 읽었을 때는 맛이 덜 했다. 이미 한 번 읽었던 내용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순간의 공감 외에 더 깊은 감상을 느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종이책에 기대하는 것이 많은 내 욕심에 저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저자의 재기발랄함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남는게 없네.'라며 책을 덮으며 내뱉었던 혼잣말이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책은 고매한 정신활동이며 독자의 감상과 감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고전적인 책의 이미지를 쫓고 있는 아날로그 세대가 어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 시>는 재미있었다. 그 이상의 감상을 기대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전자책에 최적화되어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무겁게 읽으려 했던 내 실수였다. 아마 저자의 의도도 재미와 공감, 그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전자책 시장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 그 부분이 아닌가 싶다. 실제 무게가 또는 내용의 무게가 무거운 책보다 가벼운 책이 전자책에 더 어울린다는 것 같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인지 <서울 시> 종이책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나는 저자에게 조그만 경외심 같은 것을 느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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