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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ㅣ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이야기는 역에서 잡힌 술주정뱅이의 캐리어 안에서 전직 검찰관이던 장양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해당 술주정뱅이는 장양의 대학 시절 교수이자 스승이었던 장차오 변호사였으며, 금전 문제로 얹혀 지내던 장양과 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여 술을 마시고 시신을 유기하러 가던 길이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사건을 기소하고 재판 과정 중 장차오는 장양을 살해한 것을 전면 부정한다. 수사관들은 해당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10여년 전부터 얽힌 뿌리 깊은 거대한 사건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10년 전, 지방 자원 교사로 근무중이던 '허우구이핑'은 여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 증거를 모아 고발했다가 오히려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수상한 증거 조작과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한 허우구이핑의 여자 친구 리징은 동창이자 해당 지역 검찰관인 '장양'에게 해당 사건의 재수사를 부탁한다. 앞날이 창찬하던 신임 검찰관 장양은 처음에는 재수사를 거부한다. 그러나 약혼녀와 리징의 부탁에 못 이겨 수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해당 사건이 생각보다 고위 공직자들과 각종 비리가 연계된 어마어마한 사건임이 드러나고 벽에 가로막힌다.
말하고자 하는 바나 주제는 무겁지만 묘사나 진행 자체는 깔끔하고 명확하여 진도가 쉽게 잘 나가는 가독성 좋은 책이었다. 첫 장면에 뇌물 수수, 성매매 등으로 검찰관 직위를 해제 당하고 도박 빚에 시달리다가 살해 당한 부패 전직 공직자로 나온 피해자 장양은, 과거로 회귀한 매 장을 거듭할수록 앞길이 창창한 신임 검찰관이었다가, 갈등하는 소시민,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정의를 밝히고자 하는 정의로운 모습으로 입체적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끈기와 집념에 감복한 주변인들이 하나 둘 모여 같이 폭압을 이겨내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결말 앞에서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묘사가 매우 담담하게 진행되어 흡입력이 굉장히 높은 소설이었다.
장양과 그의 조력자들은 허우구이핑의 억울한 죽음과 소녀들의 희생,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그러나 그 노력들은 늘 관료 조직 내부의 배반자와 계속해서 사라지는 증인과 증거들에 의해 무산되고 만다.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창창한 앞길만 남아 있을 것 같던 장양에게 점차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진실을 밝히는 길은 갈수록 요원해진다. 그 담담하게 묘사되는 실패와 절망들이 너무나 처절해서,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무척 무력감이 느껴지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과연 나라면, 내가 이룬 모든 명예와 사랑을 위협 당하고 치욕을 당하면서도 그 외로운 길을 계속해서 걸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혼자 피해를 보는 것은 모르겠지만 내 친구와 조력자, 배우자와 자녀까지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더 좌절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장양은 결국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혼까지 감행하고 결정적인 증인을 확보하지만 증인마저 살해 당하고 만다. 이때 장양과 장양의 몇 되지 않는 조력자들이 느꼈을 처절한 절망이 생생하게 느껴져 한번에 읽기가 힘든 느낌이었다.
장양은 기어이는 받지도 않은 뇌물과 하지도 않은 성매매 혐의를 진술하도록 협박 당해 파면까지 당하고 만다. 한때 내노라 하는 명문대를 졸업하여 신임 고위 공직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는 대학 동창의 부탁으로 시작했던 수사로 인해 수 년을 핍박 받고 좌천되어 보복을 당하다가 결국 명예마저 잃고 핸드폰 수리공이 되어 간신히 삶을 연명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마지막 도박을 시작하게 되는데...
마지막 결말이 너무나 뻔하고 전형적인 듯 보이는 면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이 가슴 속에 묵직한 울림으로 남는 것은 십여년에 걸친 그의 처절한 투쟁을 보며 그 비통함에 몰입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처음 신호를 위반한 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처음이 있었기에 그 다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또한 그것을 저지하려 하는 선한 자들이 있기에, 동트기 힘든 긴 밤이 끝나면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이었지만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마음에 많은 여운과 생각이 남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