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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야마우치 마리코의 '설거지 누가 할래'. 작가의 실제 동거-결혼-신혼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가정 내 집안일 분담에 대한 부부간의 갈등 및 각자의 생각, 작가가 깨달은 해결책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표지부터 후라이팬과 주걱을 든 부부가 호전적이고 역동적인 자세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만 봐도 가사일에 대한 이 둘의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을지에 대해서 미리 짐작하게 해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첫 들어가는 페이지에 영화 '혼기'의 대사가 나와 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대사다. 몇 줄에 걸쳐서 길게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결혼이란 성적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전 노예와 다를 바가 없는데 왜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내용. 뭔가 공감가는 구석이 있다 -_- 나는 미혼이고 집안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잘 하지 않지만, 주위에 저런 사례를 이미 너무 많이 보고 있기 때문에... ㅠㅠ
우리나라는 같은 동양권이지만 가정 내 가사 분담은 중국에 비해 일본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중국은 가사일을 남자가 더 주도적으로 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사 노동은 힘을 쓰고 체력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남자가 하는 것도 크지 않을까 한다. 우리 회사 상사분(남자)도 가사일은 남자가 더 잘할 수 있고, 실제로 더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군대를 예로 드신적이 있다. 여자가 요리도 더 잘하고 깔끔하고 세심하게 청소도 잘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요리든 청소든 다 몸을 쓰는 일이고 힘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남자가 전적으로 더 잘하며, 군대처럼 시키면 더 잘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모른척 못하는 것이라 패서라도 시켜야 한다면서 말씀하신 근거가 군대였다. 군대에서 청소를 시키면 먼지 한톨 없이 번쩍거린다며. 하긴 생각해 보니 셰프인 내 친한 언니의 친구분도 주방에서 여자는 한계가 있고, 무게 있는 큰 후라이팬을 다루면서 손목 스냅을 하면서 다들 염좌나 통증을 자주 호소하는데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고통 받는 비율이 높다고 한 적이 있었다. 후라이팬이 무거울수록 남자의 기본적인 악력이나 근력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몸보다 머리 쓰는 일이 더 유리하다나. 그거까지 생각해 보면 맞벌이 가사 분담은 힘센 남자가 더 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 일본이나 한국은 왜 이러나 몰라 -_-a
아무튼 지식이나 교양이 담긴 일반 서적이 아니라 에세이 형식이기 때문에 목차를 훑어봐도 챕터별 제목은 자유로운 그녀의 생각을 항목별로 담았다. 그래서 공감도 하고 분개(?)도 하면서 설렁설렁 쉽게 넘기며 읽을 수 있다. 동거하면서 둘이 어긋나던 일들과 불만사항, 그녀가 생각한 문제의 원인과 결혼 후 칭찬이나 부탁 등을 통해서 '겨우겨우' 집안일을 분담하고 해결하기까지의 부단한 노력의 결실들이 담겨 있다.
각 챕터 뒤에 이런 식으로 '그의 주장'이라는 페이지를 통해 작가가 느낀 가정 내 여자로서의 불편함과 가사일 분담에 대한 지적사항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놓았다. 읽다 보면 남편도 남편의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싶은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변명과 핑계에 급급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뿐? =_= 게다가 좋게 칭찬을 하면서 일을 시키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불만이라는 내용을 보면 짜증까지 난다. 아니 그럼 자기는 아내가 집안일을 하도록 칭찬을 하고 부탁을 해서 아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는건가? 왜 맞벌이 중인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건 당연한 디폴트이고 자기가 집안일을 하는건 칭찬과 부탁이 디폴트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_-
너무 작가의 입장에서만 써졌다고 항의가 있을까봐 남편의 항변 페이지도 삽입한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러니까 객관적인 3자 입장에서 더더욱 나빠보여..-_-
신랄한 한 챕터의 제목 -_-. 읽다 보면 집안일 분담으로 이룬 해피엔딩 결혼 이야기라는 책 표지의 문구가 현자타임을 오게 하는 책이었다... 맨날 쇼파에 누워서 손끝 하나 안 움직이면서 취향아, 결혼은 언제 할거냐~ 하는 아빠에게 진심으로, 강제로라도 읽어드리고 싶다. 또랑또랑하게 계속 읽어드린 후에 아빠... 지금도 그렇게 누워 계시면서 결혼해서 제가 이렇게 살고 느끼고 고통 받고 나중엔 합리화까지 하면서 사는걸 꼭 보고 싶으세염..?????? 하고 여쭤보고 싶음 -_-
아무래도 일본 작가의 책이다 보니 결혼 후 여자의 성이 바뀌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 생소한 문제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와 진짜 똑같이 고통 받는구나 싶어서 여러모로 현타가 온 책...... 이건 꼭 우리 아빠가 읽어야 해.... -_- 해피엔딩은 개뿔~ 겨우 어르고 달래고 질질 끌어서 어거지로 하고 있는거잖아 ㅠㅠ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 슬프다...ㅠㅠ 실제 겪은 일을 에세이로 적은거니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사실적이라 뼈를 때리네. 하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