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56624
도스(DOS) 시절 인기 컴퓨터 게임에 '레밍스'라는 게 있었다. 화면 한 귀퉁이에서 쏟아져 나온 레밍(나그네쥐)들이 앞으로 행진한다. 강물이나 낭떠러지가 있어도 앞으로만 간다. 이 레밍을 안전하게 출구로 데려가는 것이 미션. 레밍은 먹이가 부족해지면 집단 자살한다는 가설을 근거로 만든 게임이다.
디즈니의 자연 다큐멘터리 '하얀 광야(White Wilderness)'(1958)를 보면 레밍 무리가 북극해로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연출이 집단 자살 신화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레밍은 자살하는 게 아니다. 눈이 나빠 앞만 보고 따라갈 뿐이다. 강이나 언덕이 가로막아도 뒤에서 몰려오는 레밍에게 밀려 멈추지 못한다.
눈이 어두운 레밍끼리 몰려다니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길잡이할 지도자가 중요한 이유다.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80년 서울의 봄 때 한국민을 레밍에 비유해 분노를 산 적이 있다. 신군부를 추종한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의 군중만 레밍 같은 게 아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1835)에서 우려한 '다수의 폭정'도 비슷한 의미다.
군중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다. 철인(哲人)정치를 주장한 플라톤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도 '폭민 통치(mob rule)'로의 타락을 우려했다. 나치처럼 대중의 가장 저급한 본능에 호소해 권력을 장악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앤드루 헤이우드, '현대 정치이론'). 요즘도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는 기승이다. 일부 국내 학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진보적 군중주의'의 모델로 치켜세우는 판이니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은 정말 다양하다.
민주주의에서 의견이 다를 때 마지막 수단은 다수결이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진리를 어떻게 손을 들어 결정하느냐"고 했다. 국민연금을 많이 내고 적게 돌려받도록 하자고 하면 여론은 어떨까? 조만간 파산하게 된다는 사실에 눈감으면 당연히 적게 내고 많이 받고 싶어 할 게다. 공부 안 해도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면? 국가 경쟁력이야 어찌됐건 당장은 반가운 소리다. 이때 현명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내가 살 생각이 없어도 강남 집값을 잡는다면 전 국민이 환호한다. 집값 양극화만 부추긴 결과를 보고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공급 위축을 예측하지 못한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더 밀어붙인다. 그 참에 정책 실패의 책임까지 비판자들에게 떠넘긴다. 여론이야 그렇다 해도, 정부마저 레밍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김진국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