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읽어주는 여자 - 공간 디자이너의 달콤쌉싸름한 세계 도시 탐험기
이다교 지음 / 대경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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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 볼 책은 공간디자이너의 "공간 읽어주는 여자"입니다.

십여년전 공간의 본질적인 의미를 모르던 새내기 공간디자이너가 도시의 열악한 환경과 사회제도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젊은 오기로 무작정 나라밖으로 도망치듯 떠나, 한달의 여행계획이 3년으로 길어지며 15개국 45개 도시를 직접 체험한 경험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도시와 공간'이라는 테마여행을 통해 공간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바라본 각 나라의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통찰의 기록이기도합니다.

공간은 삶을 만들고 삶은 공간을 만든다. 그 안에는 여행이 있다.

누군가가 여행의 뜻은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는 줄임말이라 했던가.

도시를 따뜻한 시선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행복이었다.

도시의 삶을 좋아하지만 가끔 그 삭막함에 지치기도 하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탈출하고자 했던 마음과 아울러 도시속에서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행복감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가 머무는 이 도시의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따스함을 그리고 그것이 또한 행복한 여행임을 즐기게도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마주한 공간들과 함께 본문을 일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저자의 여행경로이자 해외에서의 삶의 순서에 따라 배치되어 있습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한 유럽, 대학원 진학과 함께 인턴십을 경험한 파리, 사진 한장에 매료되어 떠난 인도, 그리고 취업을 통해 뉴요커로 생활한 뉴욕이 그것입니다.

저자의 유럽여행은 저자가 언급한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같이 새로운 도시로 떠난 주인공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해피엔딩의 이야기입니다. 런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그라츠, 바일 암 라인, 롱샹, 푸아시,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상징적인 건축물과 함께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간 도시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습니다.


 


 요즈음 여행 예능 프로를 통해서도 바르셀로나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과는 다르게 바둑판처럼 네모반듯한 모습입니다. 18세기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인구급증시 진보적인 카탈루냐 정부는 도시 확장을 위해 성곽을 허물고 구시가지와 그라시아 거리를 연결하는 신도시 현상 설계를 추진했습니다. 도시의 주택은 모두 ㅁ자 형태로 네모반듯한 블록이 20미터 간격의 도로와 함께 촘촘히 들어차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그리드 모양으로 집집이 비워진 중앙에는 공공으로 사용하는 쾌적한 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건설된 이 지역을 '에이샴플라 지구'라고 하는데 이곳 중심에 있는 그라시아의 거리에는 이질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건축물 다섯채가 나란히 서 있어 '불화의 사과' 또는 '불화의 거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가우디'가 디자인한 괴상하고 신기한 '까사 바트요'입니다. 까사는 스페인어로 집을 의미하고 그 뒤에는 집주인의 이름이 붙어 '까사 바트요'는 '바트요의 집'입니다. 시대가 흘러 건물의 주인이 여러번 바뀌면서 1990년 이후에는 츄파춥스로 유명한 베르낫 가문의 소유가 되었는데요, 까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실험적인 디자인이 밀도 있게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몬주익의 사암으로 만들어진 외관은 유기적인 동물의 뼈를 재해석 한 것으로 해골 모양으로 튀어나온 발코니와 뼈 기둥, 밋밋할 수 있는 유리까지도 온통 곡선의 향연입니다.

까사 바트요 근처 가우디가 설계한 '까사밀라'는 가우디가 완공한 마지막 민간 건축물로 하이라이트는 옥상입니다. 여러명의 검투사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 듯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는데, 배배꼬인 나선형의 계단실은 망토를 두른듯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고, 굴뚝과 환기구는 마치 사람이 무거운 투구를 쓰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기능을 가진 조형예술 작품입니다.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베이더의 모습이 이곳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각 도시의 건축물의 탐방에 이어 그 건축물들의 건축가들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첨부된 QR코드를 읽으면 저자의 블로그로 넘어가 작가에 대한 자세한 연혁과 함께 작품들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gyolee

1958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막대사탕 츄파춥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사탕을 고민하면서 개발되었는데, 노란색 바탕에 빨간 글자가 인상적인 로고는 1969년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입니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한곳만으로도 1주일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도시의 모습에서 그리고 부조화를 이루는 각각의 건축물에서, 현대에 들어와 만들어진 새로운 건축물에서 각각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더불어 그저 멋지다 하고 바라보던 건축물들을 세세하게 뜯어 보고 또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자세히 짚어보니 단순히 멋지다를 넘어 나에게만 주는 새로움, 나에게만 주는 영감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자는 공간을 읽어준다고 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부에서 만나는 파리는 저자가 제2의 고향이라 부르는 낯선 도시에서 온 이방인을 차별 없이 예술로 따뜻하게 품어 주던 아름다운 위로의 도시라고 합니다. 저자의 파리지엥의 삶속에서 파리의 문화를 소개함과 동시에 삶속의 공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사주'는 통로를 뜻하지만, 두 건물 사이를 유리 천장으로 덮어 만든 쇼핑공간을 말합니다. 18세기 말까지 하수도가 없었던 파리의 거리는 온통 말의 배설물과 오물로 가득했기에 당시 왕족과 귀족들은 날씨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쾌적한 쇼핑을 즐기기 위해 파사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도시계획이 진행되고 백화점이 생기면서 파리 곳곳에 150개에 달하던 파사주는 대부분 사라지고 잘 보존된 몇개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파사주가 바로 사진의 '갤러리 비비엔느'입니다.

파리 예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조르주 퐁퓌드 대통령에 의해 건립이 추진된 '퐁퓌드 센터' 6층에는 '조르주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레스토랑을 들어선 저자가 '이런 디자인을 허용한 클라이언트가 있는 디자이너가 부럽다' ' 도대체 누가 디자인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이곳은 '도미니크 제이콥'과 '맥팔레인' 두 듀오 건축가의 작품으로, 항공이나 선박을 만들때 사용하는 방법을 응요하여 독특하고 재미있는 볼륨을 만들어낸 공간입니다. 프랑스인들의 유연한 사고와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관대함이 만들어 낸 공간으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구현해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은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한명의 예술가로 인정하고 격겨라는 사회적 분위기의 힘입니다.

시간과 돈에 결부되어지는 한국의 현실에 절망하고 도시의 역사와 예술적 미학을 일상에서 즐기는 프랑스의 분위기를 부러워하는 저자의 시선은, 비단 저자뿐 아니라 이분야에 문외한인 저 역시 그러합니다. 획일적인 건축으로 서울의 모습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고 그래서 더 공원을 찾고 집안에 식물을 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디자인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배려심과 관대함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의 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를 장식한 사진 '아프간 소녀'의 그 강렬한 눈빛에 매료되었던 저자는 그의 인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통해 그가 들려주는 인도를 직접 보고 싶었고 그래서 인도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델리는 옛 무굴제국의 우산과 인도의 역사를 가진 올드델리와 영국이 식민지 때 세포이 항쟁 이후 수도를 칼카타에서 데릴로 옮기면서 새롭게 만든 뉴델리로 나뉩니다. 무법의 도시 올드델리와 한국의 판교와 같은 뉴델리의 이중성의 도시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축물들 역시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데요, 우선 샤자한이 남긴 붉은 성 '레드포트'의 황제의 개인 접견실 '디와니카스'를 살펴봅니다. 성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공간인 이곳은 과거에는 온통 하얀 대리석과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기둥 하부에는 화려한 꽃문양 장식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대리석에 무늬를 파내고 보석을 깎아 조각을 기워 넣는 '피에트라 듀라' 즉 상감기법으로 극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섬세한 예술품입니다.

반면 뉴델리의 한복판에는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가 연상되는 '로터스 템플'이 있습니다. 이 고혹적인 건축물은 바하이교 신도를 위한 성전으로 연꽃을 닮아 연꽃사원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알려진 이곳을 탄생시킨 건축가는 이란 출신 캐나다 건축가 '파리보즈 사바'로, 바하이 신앙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개념을 찾고 동시에 문화와 건축에 뿌리를 둔 보편적인 공간을 디자인 해야 했다고 합니다. 웅장하면서도 무겁지 않으며 딱딱한 마감재를 오묘한 곡선으로 부드럽게 표현해 낸 이곳에는 제단이나 우상이 없어 누구나 자신의 신앙에 맞게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고, 오직 빛과 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건축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예술이라는 파리보즈 사바의 생각이 그대로 담긴 건축물이며, 인도로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공간입니다. 건축물들이 그의 생각처럼 만들어 진다면 내가 머무는 공간공간들이 다 의미를 지니고 아울러 행복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건축가의 의도가 담긴 건축물을 보는것 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풍요로워지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도시 뉴욕입니다. 취업으로 뉴요커가 된 저자의 뉴욕 중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가 가는 공간은 바로 '플래그십 스토어' 공간입니다. 뉴욕은 세계 패션의 유행을 선도하는 만큼 플래그십 스토어가 많이 있습니다. 플래그십이란 사전적으로 조직지 소유하거나 생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제품, 생각, 건물 등을 의미하는데, 패션브랜드에서 플래그십 스토어란 패션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라인의 상품을 중심으로 그 브랜드의 컨셉트와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을 말합니다.

옛 구겐하임 소호미술관의 공간을 개조한 프라다 매장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디자인 하였습니다. 공간의 소비는 공간의 가치를 나타낸다는 개념으로 높은 벽이 느껴지는 명품 매장을 누구나 들어와서 즐길 수 있는 문화의 공간으로 벽을 낮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품감상을 위한 갤러리나 콘서트홀 등을 겸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매장의 활용을 극대화하여 단순히 판매라는 개념보다는 문화와 예술을 접하는 공공의 장소로 진화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로벌 뷰티업계 격전지 뉴욕에서 그것도 핫한 소호에 아모레퍼시픽 뷰티 갤러리 & 스파가 있습니다. 매장 디자인은 W호텔 디자인으로 유명한 '야부 푸셀버그'의 작품으로, 사진 한컷만으로도 한국에서 보던 화장품 매장과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첼시에도 독특한 매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상한 입구와 허름한 건물에 간판도 없는 이곳은 바로 꼼데가르송 매장입니다. 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덕지덕지 붙어 있는 지저분한 벽면을 따라 시선을 이도하면 미래에 온 듯 동굴 모양의 입구가 눈애 들어 오고, 입구는 망치질을 여러번 하여 빛의 굴절을 느낄 수 있는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터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흰색의 에나멜 강철과 스테인리스 스틸, 건축 공사에 쓰이는 구조물인 비계를 이용한 공간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패션 매장이란 유동 인구가 많은 도로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아햐 하지만, 꼼데가르송은 은밀한 장소에서 예술을 뽐내는 콧대 높은 브랜드입니다.

판매하는 공간이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팔리는 물건에도 그 가치가 더해진다는 것을 뉴욕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명품의 문턱을 낮추고, 호기심으로 희소성을 높이는 공간의 활용이 주는 메세지가 제법 묵직합니다.

'여행'하면 어느나라의 무엇을 봐야지 하는 마치 공식같은 장소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그런것에 우선 순위를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곳을 가더라도 그 도시의 그 공간에 깃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건축가의 의도를 종합해서 살핀다면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회색의 도시 속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공간에는 또 새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겠구나 싶은것이, 그 동안 내가 좋아했던 공간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는 말처럼 내가 있는 공간 바로 이곳에서 행복을 찾아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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