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원서 깊이 읽기 - 원서에서 보석을 캐는 최적의 독법
함종선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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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 볼 책은 함종선 영문학 박사의 영어원서 독법가이드 "영어원서 깊이 읽기"입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하에, 단순히 어휘 정리나 내용 요약을 넘어서 시간을 가지고 좀 더 깊이 읽으며 떠오르는 문제와 주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구하고 서로 생각을 나누면서 더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 주체가 되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영어 공부'에 맞춰있는 원서 읽기에 대한 아쉬움에서 이 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한글로 된 책들을 한국어 공부하기 위해서만 읽지 않듯이 책 안에 녹아 있는 지혜를 얻고 제시하는 주제에 사고하는 책읽기를 영어로 된 책에서도 다르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작가들의 훌륭한 생각거리가 넘쳐나는 원서를 단순히 영어 공부로서만 아니라 인문학적 가치들을 충분히 사고하고 음미 할 때, 영어 실력 향상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초등 고학년에서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수업한 도서 중 열두편의 작품이 담겨있습니다.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 R,J 팔라시오의 '원더', 엘윈 브룩스 화이트의 '샬럿의 거미줄', 에린 엔트라다 켈리의 '안녕, 우주', 루이스 로리의 '별을 헤아리며',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바바라 오코너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린다 수 박의 '사금파리 한 조각', 위티 이히마에라의 '웨일 라이더', 켈리 반힐의 '달빛 마신 소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스티브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으로, 이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편을 골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입니다.

1916년 영국 웨일스 출신의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은 독특하고 기발한 소설로 영국의 가장 사랑받는 아동문학 작가 중 한명입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그의 대표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초콜릿은,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맛과 향기처럼 인생의 즐거움, 기쁨, 행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쾌락 추구와 탐욕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초콜릿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대개는 무절제하게 욕심내고 탐닉하지 말고 초콜릿을 나누어 먹으라는 도덕적 교훈으로 끝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적 메세지를 담고 있는데는 당시 영국 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풀어낸다는 점에도 맞닿아 있는데,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 초콜릿은 가난함과 부유함이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치약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많지 않은 월급으로 먹고 살아야 하지만 가난함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찰리 가족과 무절제하고 방종한 또 다른 네 아이의 가족들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초콜릿처럼 달콤 쌉싸름한 풍미 가득한 언어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 년 중 생일에나 겨우 한 번 맛보았던 초콜릿을 길에서 주운 1달러 지폐로 마음껏 먹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oh, the joy of being able to cram large pieces of something sweet and solid into one's mouth! The sheer blissful joy of being able to fill one's mouth with rich solid food."

초콜릿을 먹는 즐거움이 단순히 입과 위를 채우는 만족감 정도가 아니라 마치 천국에서나 누릴 종교적 환희인 'blissful joy'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또 윙카의 초콜릿 공장에 초대되어 공장을 채운 초콜릿 냄새를 맡으며 찰리와 조 할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에는,

"How lovely and warm!" whispered Charlie.

"I know. And what a marvellou smell!" answered Grandpa Joe, taking a long deep sniff. All the most wonderful smells in the world seemed to be mixed up in the air around them - the smell of roasting coffee and burnt sugar and melting chocolate and mint and violets and crushed hazelnuts and apple blossom and caramel and lemon peel...

커피 열매 볶는 냄새, 설탕이 끓으면서 나는 냄새, 초콜릿이 녹는 냄새, 박하와 제비꽃 향기, 으깨어진 개암나무 열매와 사과꽃 향기와 캐러멜 냄새, 그리고 레몬 껍질 냄새...초콜릿 향기를 묘사하는 다양하고 풍성한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문장을 읽어 가며 초콜릿을 상상하게 되고 입에는 군침이 돌고 재료들의 나열만으로도 상상력이 자극됩니다.

인물묘사도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그 인물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제일 먼저 황금 초대장을 찾아낸 소년 아우구스투스 글룹(Augustus Gloop)의 성 'Gloop'은 기분 나쁘게 찐득거리는 물체나 끈적한 액체를 뜻하는 단어로, 서구 문화에서 7대 죄악 중 하나인 '식탐(Glutony)'과 연관되며, 아울러 이름인 'Augustus'는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을 나타냅니다. 즉 '아우구스투스 글룹'이라는 이름은 식탐 많은 가문에서 떠받들려 자라는 아이를 연상하게 됩니다.

초콜릿 공장에 들어가 놀라는 모습에서도 '놀라다'의 표현이 'flabbergasted', 'staggered', 'dumbfounded', 'bewildered', 'dazzled', 'bowled over' 처럼 쉽지 않은 단어들로 나열되어 유사 표현을 다채롭게 공부할 수 있어 어휘력을 늘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분사관련 문법을 익히기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 소설의 도덕적 메세지는 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데요, 찰리의 아버지가 일자리마저 잃자 찰리는 그야말로 가혹한 굶주임의 고통을 겪는데요,

As the cold weather on and on, he became ravenously and desperately hungry.

여기서 '지독한 배고픔'이라고 번역한 'ravenously and desperately hungry'는 사실 끔찍한 표현입니다. 'raven'은 까자귀를 뜻하는데 'ravenous'는 굶주린 까마귀가 죽은 동물의 살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가리키는 형용사로, 쓰레기라도 먹을 정도로 허기진 상태는 나타냅니다. 그야말로 굶어 죽기 직전에 아무것에나 달려들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배고프다는 표현입니다.

개인적으로 로알드 달의 책들을 좋아해서 변역본으로 왠만한 책들을 다 읽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원서로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단순히 어휘들을 찾아 정리하고 내용을 이해하는데만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설이 쓰여진 시대 배경에 맞춰 작품을 들여다 보니 역사적인 이해를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또 단어 하나를 묘사하는데도 이렇게 풍부한 수식어들이 따라 붙을 수 있다는 것을, 같은 뜻을 표현해내는유사어들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쳐 몰랐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등장 인물의 이름 하나에도 역사적인 기원이 따라오고 또 그 인물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놓쳤던 부분이었고, 그저 재미있게만 인식했던 움파룸파족의 경우 서구사회의 민감한 갈등요인인 인종차별 문제로 대두되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초판에선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것으로 묘사된 움파룸파족이 1971년 판에서는 룸파랜드에서 데려온 것으로, 더 나아가 팀버튼 감독의 영화에서는 아예 컴퓨터 복제인간으로 그려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역시나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줄거리로만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에 기인한 재미만으로 좋아하고 기억되던 작품에서 이렇게나 모르고 지나쳤던것이 많았고 그 지나친 사실들을 알게 됨으로서 더 생생하게 이 소설을 즐길 수 있다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작품을 읽을 독자들에게 특히나 영어공부를 위해 읽어갈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을 들여 뜯어 보고 즐거움을 누림으로서 단순히 영어 실력 향상 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고력도 습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독법을 따라 수록된 작품들을 읽어 나간다면 위에 언급한 것들을 얻어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나름의 기준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서를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해봅니다.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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