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 실제로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만나볼 책은 "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 실제로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작 '왕으로 산다는 것'의 뒤를 이은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신병주 교수의 신간으로, 전작이 '왕'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살폈다면, "참모로 산다는 것"은 왕을 도와 조선을 이끌어간 '참모'를 중심으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본 조선의 역사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기보다는 참모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정을 운영해 왔습니다. 저마다 다른 배경에서 즉위한 조선의 왕에게는 각각의 국정 목표와 방향이 있었고, 그 왕에게 발탁된 참모들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왕권을 견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목차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굵직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총 7부로 나누어 40명의 참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1부 '새 왕조를 설계하다'에서는 건국의 최대 공로자였지만 신권 중심주의를 주장하다 결국 제거되는 운명의 정도전, 이방원이 왕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하륜, 세종과 함께 태평의 시대를 이끌었던 황희, 신분을 넘어 과학 조선을 이끈 장영실,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고자 한 사육신 성삼문, 성삼문과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역사에 변절자로 남았지만 누구보다 유능했던 관료 신숙주를 다루고 있습니다. 

2부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에서는 조선 초기 최고의 문장가이자 관중과 포숙의 관계였던 서거정강희맹을 참모이자 문장가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간신,칠삭둥이 등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세조를 보좌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 한명회, 피비린내 나는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쓴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과 그의 제자 김일손, '악학궤범'을 편찬한 대표적인 예술 분야의 참모 성현을 다루고 있습니다.  

3부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에서는 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장녹수, 폭정에 기름을 부은 간신 임사홍과 '대은암' 속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중종의 간신으로 기억되는 남곤, 중종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다가 '주초지왕'의 역모 혐의를 쓰고 나락으로 떨어진 조광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와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활약한 조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4부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에서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던 '십만양병설'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중심으로 선조 시대 최고의 참모 이이를 살폈고, 선조와 애증의 관계, 가사문학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정철, 문신이자 돌격적인 의병장 조헌, 일본 장수 '사야가'에서 조선의 충신이 된 김충선, 북인의 영수이자 실용의 관리학자 이산해, 7년에 걸친 임진왜란 과정을 '징비록'으로 남긴 유성룡을 다루고 있습니다.
5부 '광해군의 그림자 속 참모들'에서는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을 유지했던 뛰어난 외교 참모 '오성과 한음'의 이덕형, 그 개혁적인 성향으로 실록에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홍길동전'의 허균, 인조반정 이후 사라진 북인 세력의 중심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 상궁의 신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한 광해군의 참모 김개시, 조선의 관료로서 최고위 직책인 영의정을 여섯 번 지낸 이원익을 다루고 있습니다. 

6부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에서는 광해군의 폭정에 반정을 일으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를 중심으로 명과 청의 갈등 속에서 조선이 처한 상황과 병자호란의 과정과 극복을 다루고 있는데요, 소개되는 참모들로는 장만, 이귀, 김신국, 조경, 최명길이 있습니다.
7부 '왕권이냐, 신권이냐? 당쟁과 갈등’에서는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숙종시대 정치공작의 달인 김석주, 독특한 글씨풍으로도 알려져 있는 소신과 원칙의 학자 허목, 정치와 사상의 중심이자 신권의 핵심이었지만 숙종에게 사약을 받은 송시열, 현실적인 정치가이자 '구수략'을 쓴 조선시대 최고의 수학자 최석정, 개혁정치를 추구하던 정조의 참모이자 실학자로 이름을 남긴 정약용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를 정리한 이건창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의 일부를 들여다보면,


'황희와 태조, 그리고 세종'입니다.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직책은 영의정으로, 조선시대 영의정의 대명사는 불리는 이는 바로 '황희 정승'입니다. 실제 황희는 세종시대에 19년간 영의정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로서 세종의 참모로서 최장기간 그리고 최고령으로 영의정을 지낸 인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태종대에 형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지내면 승승장구하던 중,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양녕대군을 폐위시키고 택현(현명한 사람을 선택함)의 논리를 들어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후의 세종)을 세자로 지명하는 과정을 반대하며 유배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그를 신임했던 상왕 태종의 부탁을 세종이 조정 신하들의 반대를 일축하고 수용하면서 다시금 신임을 얻게 되고, 87세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날때까지 재상의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황희에 대한 세종의 평가를 살펴보면, '큰일과 큰의논을 결정할 적엔 의심나는 것을 고찰함이 실로 시귀(점을 치는데 쓰는 상서로운 풀과 거북)와 같았으며, 좋은 꾀와 좋은 계획이 있을 적엔 임금에게 고함이 항상 약석(약과 침)보다 먼저 하였다. 임금이 과실이 없는 처지에 있도록 확실히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데는 요란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목적을 삼았다.'로 세종이 고령의 황희를 끝까지 신임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몇몇 일화 때문에 황희에 대해서는 모든 의견을 수용하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기억하지만 실제 황희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인물이었고,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태종이나 최고의 성군 세종 앞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황희에게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훨씬 더 많았고, 세종은 참모로서의 황희의 이런 능력을 잘 활용하였습니다. 황희는 창업에서 수성으로 나아가는 태종과 세종 시기에 명참모로 활약하였고 부드러우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오랜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으로 탁월한 균형감각 장점으로 명재상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허균과 광해군, 총애와 배신사이'입니다.

허균은 선조시대에서 광해군의 시대를 살아간 문장가이자, 사상가, 개혁가였습니다. 한국사에는 수많은 인물이 역사의 무대를 장식하며 명멸해갔지만 허균처럼 극적인 삶을 살면서 그 빛과 그늘을 선명하게 남긴 인물도 흔하지는 않습니다. 명문가의 자식으로서 문장력과 외교력을 겸비한 뛰어난 자질로 장래가 탄탄하게 보장된 허균이 이처럼 개성 강한 성향을 보이고 끝내는 역적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게 된 까닭은 바로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과 개방적인 사상, 그리고 '홍길동'전에서 보여지는 호민론(왕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백성의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등의 정치적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허균에 대한 평가는 조선시대 내내 부정적인 흐름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러나 오늘날에는 점차 그의 진보적인 사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대두하고 있습니다. 허균의 비극적인 생애는 무엇보다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불여세합'하는, 즉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강한 기질과 혁신적인 사상, 그리고 자유로운 행동가적인 면모에서 기인하였고,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허균은 그 세상을 자신에게 맞도록 바꾸려 했지만 생각만 앞서갔던 무리한 시도는 역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한때는 광해군의 큰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은 왕을 배신함으로써 처형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리학 질서만이 지배되던 사회의 흐름을 바꾸어보려 했던 허균의 시도는 개혁의 불씨로 남아 진보적인 사상이 자리를 잡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불후의 명작 '홍길동전'의 유통과 보급은 그가 지향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어느 정도 실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굵직 굵직한 역사의 사건들과 그에 얽혀 있는 왕과 참모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었으며, 아울러 참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조선의 역사는 그동안 학교에서 배워온 왕을 중심으로 바라볼때와는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조선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대로, 왜 그렇게 흘러갈 수 있었는가 또는 왜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는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저자의 전작을 통해 왕을 중심으로 풀어낸 조선의 역사는 또한 궁금해지며, 역사를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함께 재미있게 역사를 배워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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