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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24시간 살아보기 - 2000년 전 로마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생활 밀착형 문화사 ㅣ 고대 문명에서 24시간 살아보기
필립 마티작 지음, 이정민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오늘 만나 볼 책은 "로마에서 24시간 살아보기"입니다.
로마 전성기의 하루 24시간을 한시간씩 나누어 24명의 허구의 인물을 통해 로마의 삶을 보여줍니다. 비록 인물은 허구일지마도 그들의 삶의 모습은, 유물과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일화와 농담,
연설, 서신 등 가치 있는 자료를 긁어 모은 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고증된 고대 로마인의 실제 모습입니다.
목차를 살펴보면,



이 책은 14대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시절 어떤 하루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야기는 자정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로마인들은 자정을 하루 24시간의 시작으로 여겼으나 밤의 경우 일몰, 즉 오후 7시가 기점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로마에서의 자정은 'HORA NOCTIS VI(0:00~1:00)', 즉 '밤의 여섯번째 시간'이라 불렸습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상당히 불평등한 사회에서 비위생적인 생활을 짧게 누리다 갔고, 감염 및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만연했으며, 보건이나 치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복지는 사실상 전무해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로마인들은 달랐다고 합니다. 당시의 사회적 부당함과 질병이야 전 지구적인 현상이었으니 이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했고, 이러한 결점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다른지역에 비해 꽤 살기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릴적 부모님께 선물 받은 고대 로마병사 모습의 작은 인형으로 인해 지난 40년동안 로마시대에 대해 읽고 쓰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저자 '필립 마티작'은,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로마에 살았던 개개인의 삶을 알아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삶과 눈을 통해 로마 자체를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온갖 성벽과 건축물, 도로를 철거해도 여전히 도시는 남는다고 믿었던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의 신념대로 말입니다.



목차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24명의 로마인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두 잠든 밤을 책임지는 순찰대원, 교통 정체를 헤쳐 나가는 수레꾼,
로마의 아침식사를 책임지는 제빵사, 주인마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여종, 아픈 아기를 돌보는 엄마, 브리타니아로 출발한 황제의 전령, 길바닥 수업이 싫은 남학생, 후견인을 만나러 가는 상원의원, 물 긷는 무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법학자,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소녀,
황제의 영묘를 짓는 석공, 회초리를 든 술집 여주인, 시간이라는 특권을 만드는 물시계공,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목욕탕 종업원, 저녁 만찬을 주관하는 안주인,
암모니아 냄새에 익숙해진 세탁부, 마음의 평정심을 잃은 요리사, 제물을 준비하는 여사제,
금을 실어 나르는 향신료 상인, 손님을 찾는 매춘부, 황제의 별점을 치는 점성술사,
환호 속에 검을 뽐내는 검투사, 기꺼이 오락거리가 되어 주는 식객
24명의 인물들은 각기 자신의 한시간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이야기 하는데요, 이들은 물론 결점도 수두룩하고 아주 치명적인 단점도 있지만 엄청난 에너지와 낙관주의를 가진 이들입니다. 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그들에게는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확고한 신념과 진취적 영혼이 있었는데요, 노예는 해방위 위해 고군분투했고 자유인은 번영을 위해 노력했으며 부유한 상인들은 고위 계층에 편입되기 위해 애쓰는 등, 자신의 운명에 대해 쓸쓸한 한탄을 늘어놓을지언정 체념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역동적이고 자신 및 후손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로마의 실질적인 모습들을, 일부 인물들을 통해 들여다 보겠습니다.



앞서 로마의 사회는 비위생적인 생활과 감염 및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만연했고 보건이 허술했다고 언급했었는데요, 로마에서는 신생아 10명 중 2~4명이 다섯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밤의 열번째 시간을 책임지는 주인공 소시파트라도 10대 후반에 결혼하여 10년간 임신하고 아기 돌보는 일을 반복했지만, 부부에게 건강한 아이는 일곱살 딸 테르말리아 하나뿐입니다. 로마의 여성들은 평생 열번 넘게 임신하는게 보통인데 신생아의 생존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출산 중 죽는 여성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 결과 로마의 인구는 계속 줄었고, 유령도시로의 전락을 막기 위해 외국인들의 이민을 허용해 젊은 엄마와 아기의 수를 늘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젊은 부부들이 결혼할 때 이미 10년간 태어날 아이들 중 상당수는 먼저 떠나보낼 각오를 했고, 어린 아이들의 죽음에 힘겨워 하는 것을 질책하는 시선이 당연했던 로마 사회의 모습을 보니, 그 시대의 '엄마'라는 자리가 무척 슬프게 와 닿았습니다. 환경으로 인해 임신 전부터 아이를 잃을 것을 각오해야하고, 잃은 아이를 슬퍼하기도 전에 또 아이를 가져야 하며, 아픈 아이를 오롯이 아프게 지켜보기만 하다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밤의 열두번째 시간을 책임지는 주인공은 남학생 푸블리우스입니다. 그 당시 선생들은 뇌물을 주고 회당을 빌려야 했고, 학생들은 매일 돈을 내고 수업을 들어야 했으며, 어린 학생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페다고그(선생노예)는 부모들에게서 전달받은 수업료를 선생과 나눠 가졌습니다.
주인공 푸블리우스는 가죽관련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가업과 관련된 수업을 받는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으로,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삐딱해지고 이 공간을 같이 이용하는 다른 이들이 학생들을 우습게 본다는 이유 때문에 길바닥 수업을 싫어했습니다. 선생이 뇌물을 주지 못했거나 공식일정으로 회당을이용하지 못할때면 학생들은 길바닥에서 무릎위에 밀랍평판을 비스듬히 들고 수업을 들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돈으로 얽히고 섥힌 관계에서, 또 지금의 학교와 같이 일정한 공간과 형식이 아닌 선생을 찾아 아무곳에서나 이뤄지는 수업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의문입니다. 교육적인 면에서도
로마는 참 불평등한 사회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인물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음 인물에게도 이어지고, 각각의 인물들은 로마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로마 역사속의 개인을 넘어 로마시대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지루하게만 여겨지는 역사공부를 이렇게 인물을 통해 시작해 보는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