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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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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독자들은 잘 읽히는 책을 선호한다.  잘 읽히냐 아니냐 구분이 사실은 매우 애매하고 얼핏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어산책>>은 기존에 국내에서 출간된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들과 비교해보면 잘 읽힐 것 같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안 읽히는 책에는 내용이나 구성이 엉성하거나 번역이 엉망이거나 내용이 무척 어렵거나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안 읽히는 이유는 다르다. 아직까지도 영어에 자신이 없는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그의 방대한 지식창고를 구경하고 따라가기가 힘에 벅차서이다.  너무나도 방대한 지식을 책 한권에 담고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마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나 웹스터영영대사전을 읽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아직 국내에 출간이 안된 <<브라이슨의 성가신 영어사전>>이 먼저 나왔다면 옆에 두고 참고서적으로 활용했으면 잘 읽혔을까 아닐까?  아마 단어의 홍수 속에서 아직까지 빠져나오지 못했으리라.  이 책이 영어를 통해 본 미국 역사 여행 패키지라면 첫 장을 넘기기 전에 세가지를 준비해두면 좋다.  이것은 개인적 옵션일 뿐이므로 꼭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씩 그 중 하나라도 이용하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1. 미합중국의 상세한 지도
 2. 가능하면 가장 두꺼운 영어사전
 3. 검색용 PC

 솔직히 말하면 이 세가지 준비물을 장만했지만 한단어 한단어 찾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다 읽을 때는 그냥 책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지도를 자세히 보면서 그동안 대도시부터 작은 마을까지 찾을 이유나 필요가 없었던 내게 이러한 지정학 공부는 미국을 다시 이해하는 유익한 기회였다.  또한 미국 영어의 어원을 따라가면서 거의 전세계 언어들의 변천과정이 언급되는데, 과연 이러한 단어들이 사전이나 인터넷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손가락이 아파 포기할 때까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찾는 단어들이 검색 결과로 나타날 때는 당연하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사전에서 알려주는 건조한 정보에 비해 이 책에서 알려주는 단어의 어원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아마 이러한 점이 빌 브라이슨이 국내에 많은 고정독자를 가진 이유일 것이다.

 필그림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하면서 시작되는 이 책에는 수많은 일화가 등장하고,  제퍼슨. 프랭클린. 링컨. 에디슨 등 바로 기억나는 인물들만 해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화를 여기서 꺼내 상세히 말해주고 싶지만 미래의 독자를 위해 참는 편이 낫겠다.  그 분들의 즐거움을 뺏으면 안될 것 같으니까.  그래도 딱 하나만 꺼내자면 바람둥이 프랭클린보다는 링컨의 일화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링컨이 단 2분만에 짧은 연설을 하고 사진을 찍을 시간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라 말할 수 있다.

 다시 처음 화두로 돌아가 이 책이 비록 잘 읽히지는 않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강점이 있다.  다시 읽고 싶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엄청난 유혹이다.  다 읽고나면 누구나 놓치고만 내용들이 있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라도 이 책은 한번 읽고 서가에 꽃은 뒤 잊혀지거나 먼지처럼 사라질 책이 아니다.  털보아저씨가 옛날 이야기 식으로 쓴 미국어 어원사전으로 잘 활용할 수도 있고 몇 세대까지는 무리지만 딸에게는 남겨주고 싶은 책이다.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딸에게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산책에 하루빨리 동참하라고 협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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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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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일본소설은 가볍고 작품성도 떨어질 거라는 잘못된 편견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특별히 읽어야할 이유가 없었다. 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아무 이유없이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집어들고 단숨에 읽고 나서 이런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완성도 면에서 그 해에 읽은 소설 중에는 최고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다음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세번째 만난 작가가 이번에 나온  <<방해자>>의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다. 처음 읽은 이라부 선생이 나오는 <<공중그네>>와 <<인더풀>>은 특이하긴 했지만 쉽게 공감이 가진 않았다. 그리고 나서 오쿠다 히데오의 모든 소설들을 출간과 동시에 읽었는데, 고정관념이나 자기 기만을 가볍게 제압하는 그의 소설들 중 <<남쪽으로 튀어>>와 <<최악>>을 읽은 다음에야 작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방해자>>는 대작이기도 하지만 다른 오쿠다 히데오 소설과는 다르게 매우 진지하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방화 사건으로 소설이 시작되고, 누가 방화범인지 밝혀내는 이야기가 끝까지 계속되지만 조금만 읽다보면 사실 누가 방화범인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방화범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왜 방화가 일어났는지도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방화 사건의 중심에 있는 두 주인공인 형사 구노와 주부 교코의 시각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행복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이야기다.   

   "자신이 어떤 감정에 지배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화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데 대한 위화감인지도 몰랐다."

  구노의 심리상태이자 오쿠다 히데오 소설 등장인물들에게 공통적인 내면 풍경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안주할 곳을 찾지만 그럴 수 없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구노는 마음 속에 대피소를 만들어 놓고 장모와 아내인 사나에, 그리고 약에 의지한다.  아내가 죽은 후 장모를 모시고 살려는 그의 소박한 꿈도 용납되지 않으며 현실을 받아들이질 못한다.  

   교코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갈 곳도 없다. 할 일도 없다. 오직 남편의 체포를 두려워하며, 혼자 흠칫흠칫 놀라며 살아갈 뿐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증발하면 어떻게 될까."

   방화건으로 남편인 시게노리와는 소원해지고 시간제로 일하는 할인마트에서 본의아니게 소위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고 처우 개선을 주장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으며, 같이 행동했고 그녀를 격려했던 동료들과도 결국 결별한다.  남편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방화를 하지만 이미 멀리 가버린 현실은 돌이킬 수 없다.

   한편 불량학생인 유스케는 오쿠다 히데오 소설의 전형적 인물로 미래에 대해 불투명한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  친구인 요헤이, 히로키와 함께 우연히 휩쓸리게 되는 방화건으로 돌파구를 찾아보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유스케라는 인물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소설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며 방화사건의 시작과 결말에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자신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이 사회의 <방해자>인 인물들을 통해 현실의 벽 앞에서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진지하고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처음의 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현재는 행복을 못느끼지만 나중에 찾은 행복은 그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들의 불행은 행복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게 하는 준비과정이다.  방해자 속편이 존재한다면 그 소설에서는 그들이 정말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테니까.

   소설에 몰두하게 만드는 흡인력과 작가의 심리 묘사는 여전히 대단하고 인물들 간의 복잡한 얽힘과 그 관계를 통한 자기 정체성의 발견은 이 소설을 단순한 장르소설 이상으로 변모시킨다.  다만 주인공인 구도와 교코의 만남이 너무 짧았고 적었다는 점이 독자로서의 아쉬움이다. 그들이 사랑을 하든 아니면 갈등을 하든 두 사람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좀 더 내 맘이 편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건 작가에 대한 도전이자 텍스트를 다시 쓰겠다는 지나친 독자의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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