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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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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늘 국가와 민족을, 그리고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분이었다. 직책상 의무적으로 하는 걱정이 아니라 심장이 뜨거운 사람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이 분의 행보가 더 진실되게 다가오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전두환 정권말기 1987년 6․10항쟁 때 발생한 명동성당 사건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6․10 규탄대회’를 마친 학생과 시민 수백 명이 그날 밤 경찰에 밀려 명동성당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사태가 숨 가쁘게 전개됐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즉각 해산을 종용했다. 성당 들머리에서 간간이 투석전이 벌어졌다. [...]

밤이 되면 긴장감이 더했다. 한바탕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부 고위 당국자가 늦은 밤에 나를 찾아 왔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본론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설이면서 에둘러 말했다. 눈치를 보니까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기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무슨 말씀인데 그렇게 망설이십니까? 오늘밤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통보를 하러 오신 거지요?”

“......”

“제가 하는 말을 정부 당국에 전해주십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결과적으로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가져온 결정적인 승기가 된 이 일이 시사 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어느 종교 지도자가 “나를 밟고 가시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 젊은이가 민족의 자산이기 때문이라는 그래서 젊은이가 소중하다는 김 추기경의 숭고한 생각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힘든 현실인 요즘, 김 추기경의 희망철학이 더 그리워진다.

“희망이라는 것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바람’입니다. 모든 인간은 의식, 무의식 중에 이러한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꿈을 지니고 동경을 품으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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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선언
차동엽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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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펴 드는 순간 나는 어릴 때 읽었던 동화 ‘파랑새’가 생각났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 헤매어 다녔지만 그토록 찾던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었고 지쳐 돌아온 자기 집 새장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내용의 동화.

행복이라는 말의 어원이 발생하다에서 온 것처럼 행복은 쟁취나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발생되고 창조되는 거라 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발생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나도 내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화도 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도 하는데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행복론의 요지는 간단명료했다.

“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같은 경우여도 사람의 마음가짐과 관점에 따라 행복과 불행으로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으로 가난하다는 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행복의 이유로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하늘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리심’ 곧 ‘하느님의 통치’를 뜻한다. 이것은 구체적이고도 초월적인 것, 곧 물질적이고도 영적인 것을 다 관통하는 통치다.

느낌이 있는 표현으로, 우주와 지구의 엑기스가 바로 ‘하늘나라’라고 할 수 있다. 종말론적으로는 천당이 ‘하늘나라’지만 실존적으로는 사실 이 세상이 ‘하늘나라’ 곧 파라다이스다. 따라서,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 곧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좋은 것을 향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하려 하지 않으면, 누리고 즐길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는 물질적 궁핍이나 영적 궁핍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해소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35p)

예수님은 집도 절도 없이 생활 하셨는데 부족함이 없는 사람처럼 사셨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늘나라가 집이요 하느님이 아버지시니 오직 아버지께 의탁하는 마음으로 사셨을 것이다. 예수님처럼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드릴 수만 있다면, 재물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소유 중심의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 안에서 자녀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며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의 순도는 결국 이 ‘의존의 순도’에 비례한다. 얼마나 맡기고 의지하느냐에 비례하여 행복의 순도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순도 100%의 행복을 누리려면 100% 하느님께 의탁하는 결단이 필요하다.-(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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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으로 읽는 성경 세트 - 전3권
차동엽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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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으로 읽는 성경]은 성경 속의 지혜를 알게 해 주는 책이다. 성경 속에 나오는 지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 책이다.

성경 본문 속의 인물과 말씀을 선택하여 묵상으로 풀어주니 실생활과도 연결되어 있고 삶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모세가 구리뱀을 장대에 매다는 장면에 대한 해설이 와 닿았다.

-첫째, 순명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곧 주님의 명령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려도 ‘순명’하면 산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말이 안 되는 처방을 내렸으니 사람들이 “야! 그거 쳐다본다고 낫냐? 먹을 약을 주든지, 바를 연고를 주든지 해야지. 그게 뭐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거라도 안 하면 죽게 되었으니 어찌됐든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쳐다본 사람은 살았다. 말씀대로 행했더니 살아난 것이었다. 바로 이를 깨달으라는 조치였던 것이다.

둘째, 바라봄의 영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었다.

곧 올려 쳐다보게 하심으로써 ‘바라봄’의 영성을 회복 시켜주시기 위함이었다.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야 했다. 사실 이들이 불평불만을 하게 된 것은 땅만 쳐다보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자꾸 땅만 바라보고 사니 안목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구리뱀을 장대 높이 달고 그것을 쳐다보게 한 것이었다. 높이 올려다보는 그 시선의 끄트머리에서 바로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나지 않겠는가.-

아무리 이해가 안 가는 명령도 순명하면 나중에는 그것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 때 그 말씀들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냥 말씀에 순명하라는 글을 읽으며 이왕 믿는 거 생각하지 말고 명령하시는 대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풍요로운 삶, 축복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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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기도 - 주님의 기도로 뚫리는 하늘장막
차동엽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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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찬양을 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런데 하느님 앞에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어쩌면 늘 힘들 때마다 찾는 주님이지만 가까이 계시다고 느끼지는 못한 것 아닐까.

‘통하는 기도’를 읽고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떼를 써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하느님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완벽한 기도이다. 이 기도를 공부하며 용서받는 마음, 치유되는 마음이 생겼다.

책 안에는 세 가지 치유의 길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자가치유’-‘나는 내가 좋다’, ‘이것은 내 책임이다’라고 말하라

둘째, ‘말씀치유’-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의지할 때 치유가 일어난다

셋째, ‘성령치유’-현실에서 만나는 하느님으로 강력한 치유 은사를 내려주신다

자캐오의 일화도 있지만 성경을 통해 말씀으로 치유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내 안의 열등감,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서서히 치유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른 기도의 방법과 함께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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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그분과 나눈 약속의 정표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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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신앙인이라면 익숙한 기도문일 것이다. 나 역시 미사 때마다 습관적으로 외워오긴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사도신경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도신경은 주님과 우리가 서로 반씩 맞추어 보는 정표라는 것에 공감을 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소통에 대하여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차원에 계신 더 힘 있고, 더 풍요로운 어떤 존재를 향해 우리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3차원의 언어로 '나는 당신을 믿나이다.'하고 위로 '짝' 해 드리면, 주님은 그 초월적인 은총을, 당신의 임재를 '요거'하고 밑으로 짝을 딱 맞춰 주셔서 하나가 된다. 주님의 기운이, 천상의 가치가, 천국이, 사도신경 반쪽을 통해서 마주 내려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에 우리도 반응을 해야 소통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백번을 부활해도 내가 부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나의 부활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부활도 헛된 것이라는 이 말.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소생하여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지금 살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그 풍요를, 그 용서를, 그 자비를, 그 지혜를 누리지만, 그래서 이 세상도 신나게 살아가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안 믿는 사람은 그냥 그대로 옛날 그대로 산다. 옛날 그대로 사는 자체가 뭔가? 하느님의 부재다. 이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니 그 자체가 심판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을 믿어야 말씀 안에서 자유를 얻는다는 말의 답을 얻은 것 같다. 믿음이 나에게 자유를 줄 때까지 나는 주님을 향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그 은혜에 보답해 드려야 할 것이다. ‘사도신경’을 통하여 이런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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