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유산했다지?”

구진이 서스펜더를 올리면서 다희에게 물었다.

“응.”

그의 얼굴에 수심이 낀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이제 완벽하게 그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은 없는데, 어째선지 어제부터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 그건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상관없었다.이제부터 그녀와 그는...

“너 어제 뭐 받았지?”

“응?”

뭔가 곧 빼앗길 것 같은 기분.

“왕실에서 누군가 온 거 아냐? 내가 없는 사이에.”

“......”

“그건 내가 당신한테 할 말인데?”

다희는 전신거울을 보면서 몸을 체크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근육이 잡힌 몸에는 너무 균형이 잘 잡혀서 살이 얇게 보일 정도였다.

“어제 내가 연습 나간 사이에 왕실 집사가 왔다갔다고 들었어. 뭐 들은 거 없어?”

“공주가 유산했다는 이야기.”

“어머. 신문에도 실리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러 굳이 왕실 집사가 와야 해?”

“...시시한 이야기라고?”

“그럼 일반 신문에도 실리는 이야기. 시시하지 않아?너도 시시한 남자야.시시한 사람한텐 시시한 이야기밖에 없지.”

“...나다희. 솔직히 말해봐.”

구진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다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덕분에 조명을 받아 어슴프레했던 그림자가 갑자기 진해졌다.

“너, 이번에 왕실 간택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나온 거야?”

“...어머, 그걸 이제 알다니 너도 참 느려. 노구진.”

나다희는 팔을 뿌리쳤다.

“어제 온 왕실 집사가 그러더군. 간택 명단에 올랐다고.”

“...이제사 진심이 나오네?”

다희는 긴 손가락으로 화장대의 물담배를 집어들었다.
후~하고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래. 왕실에서 간택 명단에 들었다고 귀국하라고 그러더라고.”

“...너!”

구진은 늘 가지고 다니던 단도를 손에 들고 다희의 목에 갖다댔다.

“너! 절대 못 가!”

“왜?”

“너 나하고 세계를 뒤흔드는...”

“내가 왜?”

다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왕 집착 장난 아냐. 절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어.”

“...못 간다고. 내가 널...”

구진은 이제는 그녀의 목을 팔로 감은 후 꺽꺽 소리를 내면서 울음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했다.

“널 보낼 바에야...”

“너도 집착 장난 아니고.”

아이를 타이르듯 그녀는 천천히 구진의 손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리고 살짝 뒤로 밀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던 그는 그대로 침대쪽으로 밀려나갔다.

“내가 당신들 하는 일을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너나 왕이나 시길백작이 거슬렸던 거고...
제거를 한 다음에는 서로에게 좋도록 일을 꾸민 거지. 넌 백작을 제거해서 좋았을 거고. 왕은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안돼. 절대로 못 보내...”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집으면서 그가 손이 풀리면서 떨어뜨린 단도를 주워올렸다.

“포기해. 어차피 왕은 날 비로 간택할 생각은 전혀 없을 테니까.”

“거절해.왕을 거절해. 난...”

구진의 애타는 말에 그녀는 그에게 얼굴을 갖다댔다.

“왜?”

“......”

“난 널 용서 못해.”

나다희는 또박또박 말하면서 검정 드레스를 입었다.

“넌 시길을 공주에게 팔았어. 그래서 난 반대로 한 거야. 네가 공주에게 시길을 보냈다면 난 내 스스로 왕에게 가는 거야. 찔러 죽이려면 해봐. 네가 날 찔러죽인다고 해서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아? 너도 간지용이랑 같은 부류라는 걸 이제서 알았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야.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지고 싶을 뿐이지.”

그녀는 킬힐을 신었다. 이제 그녀의 키는 쪼그라들고 패닉 상태에 빠진 구진보다 훨씬 더 당당하고 커보였다.

“부탁해. 제발. 나랑 결혼해줘.”

구진은 숫제 바닥에 누워 그녀의 발을 붙들었다.

“이제사 말해서 미안해. 결혼해줘. 제발.”

“비굴한 짓은 그만둬.”

그녀가 나직하게 말하면서 그의 손에 단도를 다시 쥐어주었다.

“차라리 날 죽여. 그게 당신한테 훨씬 더 어울리니까.”

그리고 나다희는 그의 손을 구두에서 떼낸 후 호텔룸의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내 총성이 울려퍼졌다.

타앙! 타앙!

그리고 그녀는 피를 흘리며 문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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