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님!”

시길은 초조한 얼굴로 공주의 주치의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빨랐다. 모든 것이 너무 빨랐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송합니다. 노력했지만...”

“공주님은?”

시길이 실내복을 정장으로 갈아입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공주님은...지금 상태가 위독하십니다. 지금 가셔서...좀...”

시길은 꼼꼼하게 커프스 단추를 채웠다.조금은 성가신 일이었지만 위치가 위치인만큼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의례대로 하다보면 조금 늦을지 모릅니다.”

시길은 그렇게 말한 후 자켓을 입고 공주의 방으로 걸어갔다. 뛰면서 안되는 것이 법도이다보니 그는 천천히 무게감있게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급박한 상황인데도 지켜야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 그를 옥죄였다,

“내가 왔습니다. 상태는...?”

침대에 누워있는 공주는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이 와서 괜찮아요.”

“...결국.”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겠죠.”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시길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맡에 있는 물수건으로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어차피 당신의 아이가 아니었으니까요.”

공주의 말에 시길이 조용히 그녀의 손을 매만졌다. 손질이 잘 된 손톱도 아까 전 진통때문인지 금이 가 있었다.


“벌받나봐요.”

공주의 말에 시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여보. 기운차려요. 다음 번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테니까.”

“...죽을 거 같아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시길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의학기술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공주. 당신이 너무 마음이 약한 거니까...”

“그래도 당신을 남편으로 맞은 건 잘 한 일 같아요.”

공주가 고통으로 찌들린 얼굴을 조금씩 펴면서 그의 손을 만졌다.

“당신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당신은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

“오빠가...”

공주가 말을 이었다.

“내가 회복이 되면 당신과 날 다시 궁으로 부를 거에요.”

“?”

시길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곧 비를 들일 모양이에요. 간택심사를 당신과 내가 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시길은 이제 긴장이 좀 풀렸는지 정장 베스트를 드러내었다. 공주는 이제 긴장과 공포가 좀 가라앉았는지 얼굴에 홍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하여간 알아두세요. 내가 잊을지도 몰라서 미리 이야기하는거에요.”

“...집사에게조차 안 알리신건...”

“극비에요. 방계로 왕정이 넘어간 이래 처음있는 간택이에요. 그러니 아무 에게나 알릴 수도 없는 거죠.”

“...여자가 보는 게 아니고?”

시길의 말에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악녀같은 얼굴을 지어보였다.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잘 아는 그라서 그것이 위악적인 표현이라는 걸 금방 알아보았다.

“당신들 뭔가 꾸미고 있군.”

시길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쁜 버릇이에요. 미나 공주.”

“...당신도 조금 뼈가 아플지도 몰라요.”

그녀가 조용히 대꾸했다.

“왜냐하면 그 간택 심사 명단에 나다희가 올라가 있거든요.”

순간적으로 시길은 사랑하는 아내의 목을 조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난 당신의 그런 얼굴이 좋아요.”

공주가 천천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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