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검은 그림자가 휙휙휙 날았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마치 새처럼 날아가는 모양이 얼핏 보면 박쥐를 닮았다.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그 모습에 새들은 어쩌면 그들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는 강한 짐승이었다.
그들은 지금 무영검주를 쫓고 있는 중이었다. 세속에 오래 드러나지 않던 무영검주가 세상에 나왔으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영검을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절반, 선대 무영검주를 죽여 승계받은 그녀의 자리를 또 빼앗을 마음이 절반...
무영검주는 바위에 앉았다. 가까이 좇아오는 자들은 멀리 유인해서 보내더라도, 나머지 후발대들은 어찌할 것인가?천명이 넘어가는 모양이니 한꺼번에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자애롭거나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
무영검주는 오래된 협객들 중 하나였다. 협이 어떤 것인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검 하나를 들어보일 뿐.
옛 시절의 동료들은 다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운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모든 검객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명함. 그것은 그녀의 시대의 검객들은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감 하나를 믿고 힘들을 겨루었다.
“거기 검이 멋지구만.”
상대하기 어려운 자는 피한다. 그것이 그녀의 응대법이었다.
바로 오늘 같은 상대를 만난 날이 그러했다. 비는 추적추적 오는데 쫓아오는 자들은 계속인데다가 눈앞의 자는 넝마를 뒤집어썼지만 얼핏 보기에도 제법 재주 있어 보이는 자였다. 8개의 금속다리를 가지고 서 있으니 말이다.
“아, 그렇게들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모조품.”
그녀는 원래 말을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설녀에게 한 수 가르친 것도 그저 빙타편이 어떻게 생긴 건지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였다. 소문이 워낙 길게 나는 아이니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모조품이라고? 한번 보여주지 않겠나?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보물만 감정했거든.”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여차하면 빼앗을 것이라는 건 그녀도 이 자도 알고 있었다.
“싫다고 대답은 하지 않겠지만.”
그녀는 그에게 검을 던져주었다.
그는 그녀의 반대편 돌위에 앉아서 검을 감정했다.
“거짓말만 하는군.”
그는 그녀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검의 내력이 장난이 아닌데...”
“한번에 아시다니 대단하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미줄이 날아왔다. 눈썰미 좋은 그녀는 그 거미줄이 옛 소문의 금강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녀의 검이 좋아도 금강석으로 만든 실을 상대하긴 힘들었다.
그녀는 검을 거두어들이고 얼른 머리 위의 나무 위로 올라갔다.
“역시 변함이 없군. 무영검주.”
“...설마하니 옛날 금강사를 썼었던 거미인가?죽은 줄 알았는데?”
“...그것 참.”
거미는 금강사를 거두어들였다.
“내 이름을 아는 자를 상대로는 약해진다는 말이지.”
“...무영검을 원하는 거라면 없다.”
그녀의 은근 딱딱한 어조에 거미가 대꾸했다.
“그렇게 무뚝뚝할 건 없지 않나.”
“거미를 상대로는 그렇게밖에 말을 못하지. 또 몇몇 협객의 목을 쳐서 궁에 보관하려고?”
“...딱딱하시긴. 예전에 부드럽게 굴었던 남자도 있었으면서. 내려와서 앉게.”
퐁 하고 거미가 자신의 몸을 두른 넝마에서 병을 하나 꺼냈다.
“한 잔 어떤가?”
“허튼 수작을 하면 무영검의 진맛을 보게 될게야. 무영검이 그냥 붙은 호칭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테니.”
“......”
그녀는 가볍게 나무 밑 바위로 뛰어내렸다.
“사실은 묻고 싶은 게 있어.”
“음?”
무영검주는 거미가 내미는 술병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빙타편의 행방을 아나?”
“......”
“찾으면 죽이게?”
그녀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상대에 따라 다르지.”
“기억력이 없어진 것 같아서 내가 말하자면 그건 황제가 빙궁주에게 선물로 하사한 거야. 그거 하나 찾으려고 일부러 나올 필요는 없었다고. 아니, 사실 그건 핑계고 무영검을 찾으러 온 거 아냐?”
“...내가 일부러 ‘검의 숲’속에 걸어갈 거라 생각하나?”
검의 숲. 그곳은 무영검주가 거주하는 깊은 산골에 있는 그녀의 집이었다.
한때 진짜 무영검주가 그곳에서 검을 만들고, 검법을 수련하며 살았었다.
그는 어느날 금강사에 목이 졸린 채 발견되었고, 그녀는 그때부터 무영검주라 자칭하며 살았다.
무영검은 워낙 귀한 검이었기에 검의 숲 어딘가에 꽂아놓고 그녀는 그것보다는 못하지만 검 중에는 가장 강한 검인 월영검을 지니고 다녔다.
“하긴 그 다리로는 안되겠지. 다리가 그 사이에 6개나 늘었네. 다리 관절이 많이 아픈가?”
“검의 숲에서 많이 다쳐서 다리를 늘렸지...”
그녀는 자제하려고 애썼다. 옛 무영검주는 금강사에 목이 졸려 죽었다. 금강사를 쓸 수 있는 건 거미 뿐이고, 그녀는 언젠가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그를 만날 때까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언젠가는 만나리라고 생각했지만...아직도 그녀는 그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흥, 그때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한가롭게 빙타편 회수나 이야길 하다니.”
그녀는 솔직하게 본심을 드러냈다.
“...아, 걱정하지 않아. 네가 아무리 검법이 신묘하다한들, 내 금강사를 이겨낸 자는 없었으니...”
“그래?”
그녀는 내심 이빨을 갈면서 조용히 말했다.
“저 앞에 빙타편을 가진 자가 있으니, 그래도 1000명은 넘으니 조심해서 회수해. 다 끝나면 찾아줄테니.”
이이제이.적으로 적을 상대한다. 그녀는 거미가 아무리 강해도 3일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다 죽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쳤을 때 거미의 목을 친다. 그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거미라고 해서 목이 철갑일리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