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은 부모로부터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터뜨렸다.

“무슨 말이에요! 파혼이라뇨!”

“전하께서 원하신단다.”

여소장의 난처한 미소가 경인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애초에 원하지 않던 약혼이니 차라리 왕의 제안이 그에게 맘에 들었을 것이었다.

“그 공주 유명하잖아요! 나쁜 방면으로! 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거에요!”

“공주님을 모욕하지 마라.”

“내 약혼자는 고작 며칠 전에 만났을 뿐이잖아! 그런데 임신이라는 말도 안되는!”

경인이 늑대처럼 사납게 대들자 여소장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애가 자신이 알던 원래 딸이 맞던가?

“하여간 혼례식은 예정대로 할 계획이란다.”

“저요? 아니면 민시길 백작의?”

그녀가 또록또록한 어조로 되묻자 소장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둘 다.”

민지린 여사가  경인에게 대답했다.

“어째서요? 파혼인데, 어째서 결혼식은 예정대로 되는 거죠? 설마하니 백작이 분신술을 쓰나요?”

“가문에 가장 가까운 친척이 나타났단다.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얘야. 그렇게 되면 재산도 상속받을 수 있고...민시길 백작이 약속했다더라...너도 그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들거야.”

“천만에!”

경인은 가까이 있던 러시아 인형을 들어서 바닥에 집어던졌다. 와장창!
안에 들어있던 사기 인형들이 겹겹이 박살이 났다. 마치 그녀의 복합적인 마음처럼.

“어차피 그런 거죠? 너란 애는 아무나 좋아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민시길 백작의 멀끔한 얼굴에 반한 것처럼 이번 남자도 얼굴이 멀끔하니까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네가 전하께 그 이야기만 안 했어도...”

“무슨 이야기?”

경인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여자가 살인범이라는 이야기? 어차피 다들 떠들던 이야기잖아요! 그 여자 항상 기분 나빴어요. 왜 남의 약혼자를!”

침묵 가운데 누군가가 그녀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거실로 들어섰다.
너무나 조용한 태도여서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파앙!

긴 가죽 장갑이 말할 사이도 없이 경인의 뺨을 후려갈겼다.

파앙!

두번째로 경인의 오른쪽 뺨을 후려갈긴 후에야 다들 그녀가 나다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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