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 공주의 입김으로 인해서 이인극은 상연되지 못했다. 그리고 다희의 자존심이 무색하게 공주와 시길은 한데 붙어다녔다.
마치 스토커처럼 철저하게 따라붙은 다희였지만,그때마다 구진이 나타나 그녀를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그제서야 다희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공주! 구진을 삶아놨어.

시길도 마치 약혼이 없었던 것처럼 공주에게 다정하게 대했다. 음식을 떠먹여준다거나, 다정하게 속삭인다거나...
그와는 반대로 구진과 다희의 사이는 급속냉각되었다.
왕이 배정해준 고급 스위트룸에 재정적인 이유로 둘이 한방을 썼는데...바로 그 이틀째인 밤에 다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진의 팔을 물어버렸다.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지만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구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너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야.”

다희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결혼 앞둔 배우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고. 공주하고 스캔들이 나면 얼마나 위험한...”

“위험한?”

구진이 늘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물린 부위를 묶은 후 대꾸했다.

“진짜 위험한 게 어떤 건지 가르쳐줘?”

“무슨 말이야.”

“경인양이 널 살인자로 몰았다는 거 몰랐나?”

“...무슨...”

“왕한테 가서 그랬다더군. 당신이 총애하는 여배우는 살인녀입니다. 간지용의 사건의 살인범입니다. 하고.”

“......”

그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흥. 감싸주려는 생각이라면...”

  구진의 말에 다희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

“아니. 널 옹호하려고 한 게 아니야.”

“...네가 그렇게 이어주려고 애쓰는 두 사람 사이는 이제 끝이야...우린 돌아갈 수 없어.”

“뭐?”

“공주가 시길이를 눈에 들어했어.귀족이니 결혼 상대로는 딱이지.더더군다나 경인양이 힌트를 왕한테 줘버렸어.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공소시효가 사라질 때까지 다른 곳에서 연기를 좀 더 닦을 수 밖에...”

“...잠깐만, 그럼 시길이는!”
“경인양하고의 결혼은 파혼이야. 재산 상속도 끝이지. 하지만 이젠 공주의 남편으로 살 수 있어.”

“연기는! 연기는 어떡하고. 걘 왕립연극단 배우였잖아!”

“포기해야지.”

구진은 스위트룸의 꺼진 전등을 다시 켰다.
그리고 출입구의 거울 앞에 그녀를 세웠다.

“잘 봐. 나다희. 넌 배우야. 천개의 만개의 거울이 아니라 유리창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넌 그런 배우야. 하지만...그 녀석에겐 그게 없지.그 녀석은 거울앞에서만 연기를 해. 너라는 거울 앞에서만...
그런 녀석을 속칭 시민회관 배우라고 부르지...너도 알고 있었잖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없다는 거...그래서 네가 그 녀석하고 연기를 같이 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무대에도 부르지 않았던 거 내가 모를 것 같나.”

“하지만...”

막 뛰쳐나가련만 구진은 출입구를 막고 그녀를 나가게 해주지 않았다.

“틀렸어. 막을 수 없어. 공주가 임신했거든.”

“뭐?”

“개월 수야 좀 속일 수 있으니...공주는 시길이를 방패막이로 쓸 예정이야. 예쁜 방패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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